국내 배터리 장비사들 해외 수주 선호 현상
"마진 높고 불합리한 계약 조건 없어"

국내 배터리 장비 업체들의 영업 우선순위에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뒤로 밀리고 있다. 국내 3사 생산능력이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국내가 해외 업체 대비 발주 단가가 지나치게 낮거나 해외에는 없는 불합리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는 게 원인이다.

 

수주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국내 배터리사들  

CATL의 배터리 셀

배터리 전공정 장비업체 A사는 최근 해외 업체와의 거래 가능성을 이유로 SK이노베이션 입찰 경쟁에서 중도 하차했다. 회사의 장비 생산능력 한계 탓에 두 회사 물량을 모두 만드는 건 불가능한데, SK이노베이션 대신 해외 업체를 선택한 것이다. A사 임원은 "배터리 시장이 활짝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가능성을 고려해 입찰 중간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점차 해외사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매출 가운데 40%가 유럽향 판매에서 비롯됐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장비사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배터리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비 업체들이 3사 구도로 굳어진 국내 시장에서 해외로 점차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나친 경쟁 수주로 인한 매출 불안, 오랜 기간 반복된 불합리한 결제 관행 탓에 고객사 다변화에 대한 필요가 증대했다.  

삼성SDI는 지난 2017년 국내 생산기지용 전극공정 일부 장비를 3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제시한 한 신생 업체에 발주했다. 배터리 가격 경쟁력을 위한 생산 비용 절감은 국내외 공통 추세다. 그러나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당시 입찰에 참여했던 기존 협력사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3사 중 유일하게 일부 결제 대금을 어음으로 치른다. LG에너지솔루션의 특수한 결제 관행은 오래전부터 협력사들에게 부담이 되어 왔다. 결제 대금의 일부(약 30%)를 장비 공급 후 1년 뒤에 지급하는가 하면, 설비 유지·관리를 위해 파견된 인력에 대한 비용 처리도 깔끔하지 못하다. 통상 장비 유지·관리에 필요한 인력 규모는 사전 계약을 통해 정하는데, 도중에 파견 기간이 늘어났음에도 이에 대한 부담을 협력사에 미룬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 협력사 B사 관계자는 "작업이 모두 끝난 이후 실질적 작업 일수를 계산해보니 계약 기간보다 6배 이상 많았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경험 부족한 해외 배터리사들, 당분간은 高마진 유지할 듯  

SK이노베이션의 파우치형 배터리. /사진=KIPOST

국내 장비사들이 해외 배터리 업체와의 거래를 늘리는 주요 이유는 국내 3사 대비 높은 마진율에, 이 같은 불합리한 관행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배터리사 대비 유럽 등 신생 배터리 업체들의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국내사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보통 마진율이 10% 이하"라며 "노스볼트 등은 이제 막 파일럿 라인을 완성하고 양산 공정에 들어가는 중이라 상대적으로 높은 마진을 준다"고 말했다. 

조립공정 장비업체 C사에 따르면 국내 대비 해외 수주 마진율은 2~3배 가량 높다. 이 업체 관계자는 "국내사 마진율은 대략 5~7%정도인 반면 해외 업체들의 경우 해당 비율이 10~15%까지 된다"고 말했다. 국내 3사는 이미 오랜 배터리 제작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 장비들을 턴키로 수주받는 대신 공정별·장비별로 개별 수주를 받는다. 경쟁 수주로 인해 장비 가격은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해외 배터리사들은 턴키 수주를 통해 전반적인 생산 비용과 시간을 단축시키는 전략을 추구한다. 원하는 기술력을 가진 장비 업체에 그에 상응하는 프리미엄을 얹어줄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C사 역시 수익성 제고를 위해 향후 고객사 다변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2차전지 시장조사전문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장비 시장은 2030년 320억달러(약 3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양·음극재 등 배터리 소재 대비 수익성이 약한 장비 산업 또한 수익성 제고를 위해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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