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C, 곧 JSR 상장 폐지시킬 듯
신에츠⋅TOK⋅스미토모 등 규합하면 PR 시장 과점

JIC(일본투자공사)가 세계 최대 반도체 PR(포토레지스트) 업체 JSR 인수를 완료하면서 본격적인 몸집불리기에 나선다. JIC⋅JSR을 중심으로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통합되면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더 커지겠지만, 고객사가 되는 한국⋅대만 반도체 업계로서는 협상력 역전에 당면할 수 있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JIC가 지난 3월 시작한 JSR 주식 공개매수 작업이 이달 16일 완료됐다고 18일 보도했다. JSR 발행주식의 84%인 1억7527만주가 공개매수에 응해 최소매수량인 1억3850만주를 초과했다. 이번에 JIC가 JSR 인수를 위해 들인 금액은 부채를 포함해 총 1조엔(약 9조원)에 달한다. 

JIC가 프리미엄 지불을 각오하고 JSR 지분 100%를 확보한 건 이 회사를 상장폐지시키기 위해서다. JIC는 JSR을 중심으로 반도체 소부장, 특히 일본 내 회사들을 통섭하려는 목표를 설정했다. 재빠른 의사결정과 M&A를 실행하려면 상장 회사보다는 비상장, 특히 지분 100% 보유한 상태여야 유리하다. 

따라서 JSR이 비상장회사가 되는 즉시 관련 기업에 M&A 인수를 타진할 전망이다. 당장 예상할 수 있는 인수 대상이 일본 내 PR 회사들이다. JSR은 PR 업계 1위라고는 하지만 시장점유율은 27% 정도로 압도적이지는 않다. 일본 신에츠⋅TOK⋅스미토모화학⋅후지필름 등도 10~20%대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이들 경쟁사 중 한두곳, 혹은 PR 사업부만 떼내어 몇개 인수하게 될 경우 JSR을 중심으로 점유율 50%를 넘는 과점사업자를 만들 수 있다.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한 협상력이 단숨에 업그레이드된다.

지난해 연말 일본 PR 업체들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원재료 가격 인상분을 감안해 PR 공급가 인상을 타진했으나 관철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반도체 PR 시장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막대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대여섯개 업체가 경쟁체제인 탓이 크다. 협상력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열세다 보니 기대만큼의 수익성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인프리아의 EUV용 포토레지스트 제품. /사진=인프리아
인프리아의 EUV용 포토레지스트 제품. /사진=인프리아

JIC의 이 같은 계획은 일본 내부적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히데히토 다카하시 리조낵홀딩스 사장은 “JSR이 출구를 모색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리조낵홀딩스는 일본 간토덴카와 함께 반도체용 식각(에칭)가스 분야 점유율 50%를 넘게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리조낵은 삼성전자⋅마이크론에 HBM(고대역폭메모리) 생산용 NCF(비전도성필름)를 공급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PR 회사는 아니지만 JSR과 리조낵이 합병하거나, 적어도 사업부 간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면 역시 고객사 상대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일본 내에서도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네이치 노리아키 TOK 사장은 “경쟁이 산업 혁신의 원동력”이라며 “PR 시장에서 회자되는 통합 논의는 그저 논의로서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JIC가 일본 정부를 등에 업고 있다는 점, 일본이 래피더스를 포함해 일본 반도체 산업 재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JSR을 통한 소부장 업계 통합 작업은 성공여부와 별개로 일단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반도체 업계에서 일본이 큰 소리 칠 수 있는 분야가 장비와 소재 밖에 없다”며 “그러나 이들 기업이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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