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덴카+리조낵 시가총액, 머크의 20분의 1
JSR도 듀폰의 5분의 1 수준
"일본, 반도체 핵심 소부장 국유화 지속할 것"

인프리아의 EUV용 포토레지스트 제품. /사진=인프리아
인프리아의 EUV용 포토레지스트 제품. /사진=인프리아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소재⋅장비 생산 업체에 대해서는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노출되지 않게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내에서 설파되고 있다. 과점적 지위를 보유한 회사라 할지라도 일본 자본시장 특성상 주가가 높지 않은 탓에 해외 기업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리호 나가오 일본 닛케이아시아 수석기자는 16일 기고를 통해 “많은 일본 반도체 소재⋅장비⋅부품 회사들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미만에 형성돼, 미국⋅유럽 경쟁사 대비 낮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이 때문에 해외 기업이나 펀드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에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PBR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숫자다. PBR이 1이라는 건, 회사의 주가가 정확하게 순자산 만큼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PBR이 1보다 낮으면 사업가치는 고사하고, 자산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예컨대 지난 6월 30일을 기준으로 스미토모화학의 PBR은 0.6, 리조낵은 0.8에 불과했다. 간토덴카는 0.9다. 식각(에칭)가스 분야만 놓고 보면 간토덴카와 리조낵의 글로벌 점유율은 50%를 넘는다. 그러나 두 회사의 시가총액 합은 독일 머크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머크의 식각가스 분야 점유율은 20% 안팎으로, 일본 경쟁사들 대비 낮다. 

물론 식각가스는 머크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공급하는 수많은 소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머크의 높은 시가총액은 이 회사가 공급하는 다른 제품들 경쟁력까지 모두 합산한 결과다. 그러나 이를 고려하더라도 일본 기업들에 대한 가치 평가가 지나치게 박하다고 리호 나가오 수석기자는 설명했다. 

그는 최근 일본 정부가 JIC(일본투자공사)를 통해 국유화하기로 한 JSR 역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왔다고 주장했다. JSR은 전 세계 포토레지스트 시장 점유율 20%로, 특히 EUV(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회사 시가총액은 8월 말 기준 8500억엔(약 7조6600억원) 정도다. 경쟁사인 미국 듀폰의 5분의 1 수준이다. 듀폰의 포토레지스트 시장 점유율은 10%로 JSR의 절반이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이 제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건, 일본 주식시장이 전통적으로 투자 매력도가 낮게 평가되면서 상장 기업으로의 자금 유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가 지난 2021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상장 기업들의 평균 PBR은 1.6으로, 미국(4.6)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미국 기업은 시가총액으로 순자산의 4배 넘게 평가받는데 비해, 일본 기업들은 1.6배 정도 밖에 인정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같은 조사에서 중국은 2.3, 인도 3.4, 브라질 2,2, 대만 2.8 보다 일본의 평균 PBR이 더 낮았다. 조사 대상 중 일본 보다 낮은 PBR을 기록한 국가는 우리나라(1.3)가 유일했다. 

기업가치가 낮게 평가되면 자금조달 측면에서 불리할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적대적 M&A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게 리호 나가오 수석기자의 주장이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에서 국수주의적인 시각은 지난 2021년 불거진 공급망 사태가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당시 일본 도요타⋅혼다⋅닛산 등 자동차 회사들은 1달러짜리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를 자급하지 못한 탓에 자동차 조립 라인을 하염없이 놀려야 했다. 

2022년 하반기들어 공급망 위기는 잦아들어지만, 위기를 교훈 삼아 일본도 정부 주도의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일본이 자국 기업도 아닌 대만 TSMC에 수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세금을 들여 파운드리 업체 래피더스를 설립한 건 이 같은 여론의 뒷받침이 있었던 덕분이다. 

JSR 국유화 역시 같은 맥락인데, 반도체 업계는 JSR을 시작으로 핵심 소부장 기업에 대한 일본 정부의 국유화 작업이 더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공급망 사태 이후 일본에서는 반도체 산업을 밀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하다”며 “그러나 이처럼 정부가 민간 기업을 사들였을때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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