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공급 안정성 측면 고려
삼성전자도 협력사와 MR-MUF 소재 개발 착수

HBM(고대역폭메모리) 생산 과정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가장 큰 차이는 여러장의 D램을 합착하는 방식이다. SK하이닉스가 기존 MR(매스 리플로, 납땜) 기술을 응용한 MR-MUF 방식을 채택한 반면, 삼성전자는 TC(열압착) 본딩 기술을 쓰고 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자체적으로 MR-MUF용 소재를 개발 중인데, SK하이닉스는 공급사 이원화 차원에서, 삼성전자는 MR-MUF 공정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직으로 적층된  D램(주황색) 사이사이를 메워 합착하는 데 쓰는 소재가 언더필이다. /자료=SK하이닉스
수직으로 적층된 D램(주황색) 사이사이를 메워 합착하는 데 쓰는 소재가 언더필이다. /자료=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에버텍과 MR-MUF 소재 개발

 

현재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HBM용 MR-MUF용 소재는 100% 일본 나믹스가 공급한다. MR-MUF는 칩과 칩을 열로 본딩한 다음, 칩 사이 빈공간에 ‘언더필’이라는 소재를 채우는 게 핵심이다. 언더필은 납땜으로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D램을 완전하게 결합하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칩을 보호한다. 

구리 이외 부분으로 전류가 흐르는 것으로 막는 절연체 역할도 한다. 에폭시와 실리카를 섞어 만드는 것으로 추정되며, 나믹스가 독점 공급하는 소재가 이 MR-MUF용 언더필이다. 

언더필 소재는 수마이크로미터 정도에 불과한 D램 사이 공간을 빈틈 없이 메워야 하는데, 점도 높은 소재 특성상 칩 정중앙 부분까지 채우는 건 고난도 작업이다. 점도가 없는 물이 모래 사이를 침투하는 건 쉽지만, 본드가 모래에 스며들게 하는 건 어려운 것과 같다. SK하이닉스는 이를 위해 가압 장비를 쓰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는 MR-MUF 공정 개발을 나믹스와 함께 진행하면서 언더필 독점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지금은 삼성전자⋅마이크론이 나믹스로부터 언더필을 구매하고 싶어도 구매할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나믹스 소재와 별개로 최근 에버텍엔터프라이즈와도 MR-MUF용 언더필 소재 개발에 착수했다. 에버텍엔터프라이즈는 반도체 패키지용 특수접착제 생산 업체다. 지난 5월 (주)SK가 200억원을 들여 이 회사 지분 95.4%를 확보했다. 

이미 나믹스와 독점 공급계약을 체결한 SK하이닉스가 에버텍엔터프라이즈와 신규 MR-MUF용 언더필 소재를 개발하는 건 공급 안정성 확보와 더불어 경쟁사와의 차별화가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용 핵심 소재⋅장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국수주의적 방침은 전임 아베 총리에 이어 현 기시다 총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JIC(일본투자공사)를 통해 포토레지스트 제조사 JSR을 국유화하기도 했다. 

현 정부들어 일본과 유화적인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감안하면 언제까지 지금의 무드가 유지될 것이라 단언하기 어렵다. 

꼭 외교상 관점을 들지 않더라도 HBM의 핵심인 MR-MUF용 소재를 단일 공급사에 의존하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성이 크다. 한 반도체 소재 업계 전문가는 “아직 SK하이닉스와 에버텍엔터프라이즈의 MR-MUF용 소재 개발이 큰 진척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며 “향후 경쟁사들이 MR-MUF 공정을 도입할 때 차별화를 대비해서라도 신규 재료를 개발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삼성SDI도 MR-MUF 소재 개발 착수

 

HBM 생산에 TC 본딩 기술을 쓰고 있는 삼성전자 역시 삼성SDI와 MR-MUF용 언더필 소재 개발에 착수했다. 삼성SDI의 전자재료 사업부는 EMC(에폭시몰딩컴파운드)⋅SOH(스핀온하드마스크)를 생산하는데, 이 EMC의 물성을 개선한 게 MR-MUF용 언더필이다. 

삼성전자가 현재 HBM 합착 공정에 쓰고 있는 TC 본딩은 언더필을 대체하는 소재로 NCF(비전도성접착필름)를 쓴다. NCF는 열을 가하면 녹으면서 아래위 D램을 합착하고, 충격으로부터 칩을 보호한다. 

TC 본딩 개념도. NCF(빨간색)가 녹아 있는 재료 위에 열과 압력을 가해 칩을 붙이는 기술이다. /자료=PECO
TC 본딩 개념도. NCF(빨간색)가 녹아 있는 재료 위에 열과 압력을 가해 칩을 붙이는 기술이다. /자료=PECO

그러나 NCF 기반의 TC 본딩은 MR-MUF 대비 수율과 생산성 측면에서 단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삼성전자도 삼성SDI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MR-MUF 공정 도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반도체 소재 산업 전문가는 “어차피 나믹스는 SK하이닉스와 독점 계약이 체결돼 있기에 삼성전자가 MR-MUF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재료부터 개발해야 한다”며 “실제 나믹스 만큼의 성능을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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