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E, '신속투자'에서 투자비 절감 모드로
LG디스플레이에는 나쁠 일 없는 행보

내달 8.6세대(2250㎜ X 2600㎜) IT용 OLED 라인 착공을 추진 중인 BOE가 핵심인 증착장비 공급사로 선익시스템을 캐논도키와 병행 검토하고 있다. BOE는 지난 2017년 이후 6세대(1500㎜ X 1850㎜) 투자 국면에서 100% 캐논도키 증착장비를 도입했으며,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8.6세대 장비로 캐논도키 외 대안을 생각하지 않았다. 

/사진=캐논도키
/사진=캐논도키

 

BOE, 캐논도키-선익시스템 동등선상 비교

 

선익시스템에 대한 BOE의 시각이 바뀐 건 올해 여름 전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7월과 9월 최소 두 차례 이상 BOE 8.6세대 투자 실무진들이 방한, 선익시스템과 장비 도입 논의를 가졌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BOE의 입장은 8.6세대 라인에 투자하되, 증착장비는 캐논도키와 선익시스템을 동등선상에서 비교하겠다는 것”이라며 “선익시스템이 거론조차 되지 않던 상반기와는 크게 달라진 분위기”라고 말했다. 

BOE가 그동안의 태도를 바꿔 선익시스템을 8.6세대 증착장비 대안으로 검토하는 건 투자비 절감을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올해 초 BOE의 8.6세대 투자 기조는 ‘최대한 빨리’였다.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를 포함한 3사가 동시에 투자에 나서면서 캐논도키가 공급할 수 있는 증착장비 생산능력에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BOE는 급행료를 써서라도 캐논도키 증착장비 슬롯을 할당받겠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2분기를 넘어서며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 LG디스플레이가 투자 템포를 늦추고, 증착장비도 선익시스템을 낙점하면서 캐논도키 생산능력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더불어 BOE에 8.6세대 투자자금을 대기로 한 중국 정부의 예산절감 압박도 컸다. 

BOE는 8.6세대 원판 투입 기준 월 3만장 투자시 약 690억위안(약 12조4400억원)을 산정했다가, 최근 이를 630억위안 안팎까지 낮췄다. 중앙정부가 투자금이 과도하다며 예산 규모 축소를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증착 시스템의 얼개. 가운데 물류 챔버를 중심으로 공정 챔버가 둘러싸는 형태다. /자료=선익시스템
증착 시스템의 얼개. 가운데 물류 챔버를 중심으로 공정 챔버가 둘러싸는 형태다. /자료=선익시스템

따라서 이제 BOE의 투자 기조는 최대한 빨리가 아니라 ‘적당한 투자비로 신속하게’로 바뀌었다. LG디스플레이가 캐논도키 증착장비 슬롯을 방출함으로써 더 이상 급행료를 낼 이유는 없어졌고, 선익시스템까지 경쟁사로 끌어들이면 추가 단가 인하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디스플레이 업계서는 캐논도키의 8.6세대 증착장비 공급가격을 2대(월 1만5000장) 기준 1조5000억원 정도로 본다. 선익시스템이 LG디스플레이에 제안했던 증착장비 가격은 캐논도키의 절반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디스플레이 산업 전문가는 “BOE 입장에서는 실제 선익시스템에 장비를 발주하지 않더라도 캐논도키에 경쟁사를 들이밀 수 있는 것만으로 협상력을 얻을 수 있다”며 “실제 8.6세대 장비를 선익시스템이 수주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도 손해 볼 건 없어...사활 거는 선익시스템

 

BOE와 선익시스템의 협력은 LG디스플레이에도 손해볼 건 없는 행보다. LG디스플레이는 애플 향 OLED 패널 생산에 선익시스템 증착장비를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애플을 설득하는 중이다. 상반기 애플과의 논의를 통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BOE까지 선익시스템 설비를 도입해 양산 공급을 추진한다면 애플을 설득하기가 더 쉬워진다. 디스플레이 핵심 협력사 3곳 중 2곳(LG디스플레이⋅BOE)이 사용하는 장비라면 애플도 더 적극적으로 승인 작업에 임해야 한다. 

BOE가 선익시스템 장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LG디스플레이로부터 허락을 득해야 하는 점도 주목된다. 선익시스템의 8.6세대 증착장비는 처음부터 LG디스플레이와의 협력을 통해 개발됐다. 특허의 상당 부분이 LG디스플레이에 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BOE-양사간 거래가 성사되면 향후 LG디스플레이가 BOE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M1 칩을 탑재한 맥북 프로. /사진=애플
M1 칩을 탑재한 맥북 프로. /사진=애플

선익시스템으로서는 BOE와의 거래 성사에 생사를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8.6세대 투자와 관련해 유일한 고객사였던 LG디스플레이가 속도를 늦춘 탓에 올해와 내년 실적 압박이 극심해졌다. BOE에 8.6세대 증착장비를 공급하게 된다면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 투자가 실종된 상황에서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디스플레이 산업 전문가는 “아직 현실화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비전옥스 등 중국 내 8.6세대 투자 후보들도 선익시스템에 대한 눈높이가 달리질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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