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실리콘+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 방식
열증착 기술에도 활로 열어

선익시스템이 한화솔루션으로부터 페로브스카이트 솔라셀 생산용 증착장비(Evaporation)를 수주했다. 주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를 포함해 디스플레이 업계 전반에 투자가 실종됐다는 점에서 사업 돌파구를 마련해줄지 주목된다. 

OLED를 제외하면 용처가 마땅치 않았던 열증착 기술에도 활로가 될 전망이다.

폴리실리콘 +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 /사진=한화솔루션
폴리실리콘 + 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 /사진=한화솔루션

 

선익시스템, 한화솔루션에 증착장비 1대 공급

 

한화솔루션은 최근 선익시스템에 페로브스카이트 생산용 열증착 장비를 1대 발주했다. 선익시스템은 증착시스템 전반에 대한 설계와 생산을 맡게 되며, 장비 내에서 유기물을 고열로 끓여주는 모듈인 소스는 야스가 따로 공급한다. 장비 공급 시점은 내년 초다.

수주 금액은 선익시스템을 기준으로 약 70억~80억원 내외로 추정돼 크지는 않다. 그래도 페로브스카이트가 차세대 솔라셀 기술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이번에 선익시스템이 수주한 증착장비는 폴리실리콘 솔라셀 위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증착하는 ‘탠덤셀' 방식이다. 폴리실리콘 기판으로 만든 솔라셀의 광변환효율(태양광을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비율)은 양산품이 최고 23% 정도다. 

한화솔루션은 이 폴리실리콘 솔라셀을 기판 삼아 그 위에 페로브스카이트층을 증착시키는 탠덤셀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상부의 페로브스카이트는 자외선⋅가시광선 등 단파장 빛을 흡수하고, 하부 폴리실리콘은 적외선처럼 장파장 빛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위아래 층에서 서로 다른 파장대 빛을 흡수함으로써 전반적인 광변환효율을 높여줄 수 있다. 

한화솔루션이 솔라셀을 만드는 모습. /사진=한화솔루션
한화솔루션이 솔라셀을 만드는 모습. /사진=한화솔루션

탠덤셀의 이론적인 광변환효율 한계는 44%로, 폴리실리콘만을 사용했을때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태양광 발전소 건설시 같은 부지매입 비용을 들이고도 훨씬 많은 양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태양광 발전 사업성이 그 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다만 현재 폴리실리콘+페로브스카이트 탠덤셀의 광변환효율은 이론상 한계에 크게 못미친다. 한화솔루션이 지난해 연구실에서 구현한 최고치가 28.7%였다. 한화솔루션은 이번에 선익시스템 설비 도입을 계기로 양산 수준에서 광변환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 솔라셀 업계 관계자는 “페로브스카이트층을 추가로 증착하려면 솔라셀 생산설비 투자비용이 더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광변환효율이 오른다면 투자비 회수 기간을 단축시켜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갈 곳 잃은 열증착 기술, 페로브스카이트 만나 부활할까

 

솔라셀 업계가 페로브스카이트 양산 기술로서 열증착 방식을 검토하면서 관련 기술이 활로를 모색할지도 관심을 끈다. 

열증착은 OLED가 스마트폰⋅TV용 디스플레이로 채택되면서 꽃피운 기술이다. 유기물을 고열의 도가니 속에서 끓인 뒤, 증발하는 힘을 빌어 박막을 형성한다. 물이 끓는 주전자 주둥이에 책받침을 갖다 대면 수증기가 맺히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그러나 2020년 이후 OLED 투자 국면이 마무리되면서 열증착 기술은 사실상 길을 잃었다. 국내와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더 이상 6세대(1500㎜ X 1850㎜) OLED 투자를 하지 않고, 8.6세대(2250㎜  X 2600㎜)는 삼성디스플레이 정도만 투자를 확정했다. LG디스플레이⋅BOE도 8.6세대 라인에 투자하겠지만, 2~3개 라인(월 1만5000~2만2500장)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 8.6세대가 타깃하는 IT용 디스플레이 시장 자체가 크지 않아서다. 3사 투자분만 잡아도 이미 공급 과잉이다.

열증착은 PECVD(플라즈마기상화학증착)⋅ALD(원자층증착) 등과 달리 반도체 공정에는 쓰지 않는 기술이다. 

캐논도키가 공급하는 OLED 증착장비. /사진=캐논도키
캐논도키가 공급하는 OLED 증착장비. /사진=캐논도키

이런 상황에서 페로브스카이트 솔라셀의 등장은 열증착 기술 전용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 한화솔루션은 기존 폴리실리콘 솔라셀을 이용한 탠덤 기술을 연구 중이지만, 유리기판이나 플라스틱 기판 위에 페로브스카이트 단독 셀로 패터닝하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다만 잉크젯 프린팅 기술과의 경쟁은 열증착이 넘어서야 할 산이다. 역시 페로브스카이트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일본 기업들(세키스이화학⋅JGC 등)은 열증착 보다는 잉크젯 프린팅이나 롤투롤 같은 값싼 공정으로 솔라셀을 만드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잉크젯 프린팅, 롤투롤 모두 진공장비가 동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투자비가 싸고 생산속도가 빠르다. 

진공장비를 쓰지 않으면 파티클 유입과 함께 재현성이 나빠질 수 있는데, 디스플레이와 달리 솔라셀은 약간의 퀄리티 저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는 불량 화소 하나 때문에 제품을 출하하지 못하지만, 솔라셀은 B급 제품도 충분히 출하될 수 있다. 이는 잉크젯 프린팅 진영에 유리한 점이다. 

김범수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OLED도 산업 초창기 열증착과 잉크젯 프린팅 기술이 경쟁하다 열증착 우세로 마무리됐다”며 “페로브스카이트는 OLED 산업 초창기처럼 두 기술이 산업을 놓고 경쟁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