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최고치 이후 줄곧 내리막
내년은 올해 절반 수준으로 급감 예상

디스플레이 장비 업계가 내년에 최악의 매출 공백에 시달릴 전망이다. 내년 중 장비가 출하되고 매출로 잡히기 위해서는 올해, 늦어도 내년 1분기까지 신규 발주를 받아야 하는데 최근 가시화된 신규 프로젝트가 거의 없어서다. 

업계 전반적인 실적이 2017년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내년에는 업체별로 재무적인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도 크다. 

DSCC 설비 시장 전망(반입 기준). /자료=DSCC
DSCC 설비 시장 전망(반입 기준). /자료=DSCC

내년 설비투자액, 올해의 절반

 

시장조사업체 DSCC(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트)에 따르면 내년에 전 세계 디스플레이 설비 투자액(반입기준)은 53억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올해 120억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서 절반 이하로 투자금액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 회사가 집계한 디스플레이 설비 투자액은 지난 2017년 약 240억달러를 기록한 이후 줄곧 내리막이다. DSCC는 내후년에야 설비 투자 수준이 올해 정도로 회복할 걸로 봤다.

설비투자액이 53억달러에 그친다는 건, 전 세계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보완투자 정도만 진행할 뿐 더 이상 신규 생산능력 확대에 나서지 않는다는 의미다. 로스 영 DSCC 대표는 “당초 내년으로 예정된 일부 설비투자 계획이 연기되거나 취소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후 2024~2025년에는 디스플레이 설비투자액이 다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진=LG디스플레이
/사진=LG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 장비 업계, 캐즘에 빠지다

 

디스플레이 설비 투자액이 내년에 사상 최저 수준으로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건 기존 기술로 형성된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반면, 신기술 시장은 아직 무르익지 않은 탓이다. 특정 산업에서 신기술 채용이 지연되며 수요가 정체되는, 이른바 ‘캐즘(Chasm)’의 함정에 디스플레이 장비 산업이 빠진다는 의미다. 

그동안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을 이끌던 6세대(1500㎜ X 1850㎜)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는 더 이상 큰 규모의 신규투자가 필요 없을 만큼 포화 상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의 스위치라 할 수 있는 TFT(박막트랜지스터)를 기존 LTPS(저온폴리실리콘)에서 LTPO(저온폴리실리콘옥사이드)로 업그레이드 하는 정도의 업그레이드를 단행할 뿐이다. 실제 OLED 생산능력과 직결된 유기물 증착 공정 투자는 지난 2018년 아산캠퍼스 A4(옛 L7-1) 투자 이후 멈췄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중소형 OLED 생산능력 확장에 3조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는데, TV용 대형 OLED 투자는 뜸하다. 이미 중국 광저우 OLED 공장은 설계용량이 가득 찼고, 경기도 파주사업장도 당장 8.5세대(2200㎜ X 2500㎜) LCD의 OLED 전환투자가 예정돼 있지 않다. 최근 TV용 LCD 판가 하락에 따라 TV용 OLED 역시 가격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공격적으로 TV용 OLED 투자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OLED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에이수스 '젠북'. /사진=삼성디스플레이
OLED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에이수스 '젠북'.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이처럼 업계 선두가 투자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신규 시장을 이끌 새로운 규격과 기술에 대한 검증은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규격은 8.5세대 IT용 OLED 라인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일본 알박과는 수직형 증착설비를, 캐논도키와는 수평형 증착설비를 개발 중이다. LG디스플레이는 원래 국내 업체인 선익시스템과 수평형 증착설비를 개발해왔으나, 최근 캐논도키측과도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LCD가 주류인 IT용 디스플레이 시장에 OLED가 침투해 들어가면 과거 스마트폰 시장에서처럼 대규모 설비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8.5세대 라인에서 IT용 OLED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증착설비 뿐만 아니라 FMM(파인메탈마스크)과 소스(유기물을 끓이는 설비), 봉지장비 등 다양한 생태계가 동시에 준비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당장 올해와 내년 중에 8.5세대 IT용 OLED 발주가 나올 것으로 보기는 무리다. 

IT업계가 신규 플랫폼으로 기대하고 있는 AR(증강현실) 및 VR(가상현실)용 디스플레이 시장도 아직은 먼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AR⋅VR 기기 출하량은 1120만대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난 수치지만, 아직 스마트폰에 이은 강력한 플랫폼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애플⋅삼성전자가 AR⋅VR 기기를 내놓을 올해 연말 이후에나 향후 성장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R 및 VR 헤드셋 출하량. /자료=IDC
AR 및 VR 헤드셋 출하량. /자료=IDC

한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임원은 “2017년 이후 설비 투자가 잦아들 것으로 보고 제각기 신사업을 준비는 하고 있었으나 가시화된 성과를 거둔 회사는 극히 일부”라며 “내년에 사상 최악의 보릿고개를 넘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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