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이후 국내 5개 업체 수주
美 상무부 제재 기준 '모호'..."덤핑 마진처럼 자의적"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중국 푸젠진화반도체(JHICC)로부터의 수주가 이어지고 있다. 2018년 미국 상무부가 JHICC를 수출금지 대상으로 지정한 이후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빈 자리를 국내 장비사들이 채운 것으로 풀이된다(KIPOST 2020년 6월 23일자 <JHICC, 2년 만에 D램 장비 발주 재개> 참조).

그러나 JHICC에서 받은 수주가 실제 납품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자국 수출입 제한 조치를 타 국가까지 직간접적으로 포함시킨 바 있다. 국내 장비업체라 해도 반도체 산업 특성상 미국 기술⋅소프트웨어가 편입되지 않은 장비는 드물다. 실제 제재가 가해질 경우, 국내 업체들의 장비 수주가 반사이익이 아닌 유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상무부 계산법, 덤핑마진과도 같아"

EUV 장비 내부 모습. /사진=ASML
EUV 장비 내부 모습(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ASML

지난해 중국 JHICC로부터 장비를 수주받은 국내 업체는 5곳이다. PSK가 지난해 11월과 12월 식각 장비 2종을, 10월 원익IPS가 PECVD(플라즈마기상화학증착장비) 1종을 수주했다. 그 외에도 넥스틴⋅주성엔지니어링⋅AP시스템 등이 JHICC로부터 장비를 수주했다.

국내 장비 업체들은 ‘최소편입비율(de minimis)’이 10% 미만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미 상무부는 실제 제재가 이뤄질 경우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라 최소편입비율을 따져 본다. 미국산 제품이 아니더라도 완제품 안에 미국 기술⋅소프트웨어(SW)가 10~25% 이상 사용됐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넘는다면 미국산으로 간주된다. 

JHICC에 장비를 수주한 한 국내업체 관계자는 "장비에는 소프트웨어⋅기술⋅부품 등 다양한 모듈이 들어가기 때문에 몇 % 미만이라고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미국산 부품이 10% 미만 들어가기 때문에 상무부의 제재조치와는 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규제를 내리는 주체가 미국 상무부이기 때문에 제재 여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은 쉽지 않다. 전략물자 제도조사를 담당하는 이성종 한국전략물자관리원 선임연구원은 KIPOST와의 통화에서 "최소편입비율을 판단하는 주체가 미국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제재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미 상무부 제재 대상이면 국내에서 거래 상대방을 고려해 허가가 나지 않을 변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내 장비 업체들이 JHICC로부터 수주한 내역. /자료=KIPOST
지난해 국내 장비 업체들이 JHICC로부터 수주한 내역. /자료=KIPOST

상무부가 밝힌 기준 역시 모호하다. 미 상무부 산업보안국 산업수출정책분석원인 수잔 크레이머는 KIPOST에 보낸 이메일에 "최소편입비율 판단 시 물품⋅소프트웨어⋅기술이 합쳐진 품목의 경우 물품⋅소프트웨어⋅기술의 최소편입비율을 각각 계산한다"며 "하드웨어에 딸려오는 전용소프트웨어(Bundle Software)를 하드웨어 가액에 합산하여 계산한다"고 회신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의 경우 이미 판매된 전용소프트웨어 뿐 아니라 판매가 예상되는 소프트웨어(업데이트용) 가격까지 고려한다는 것이다. 계산 결과는 미 상무부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미 상무부 계산법이 덤핑마진처럼 자의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병서 중국경제연구소 소장은 "덤핑마진 계산과 같다고 보면 된다. 우리의 10%의 기준과 미국의 10% 기준은 계산법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며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JHICC 막겠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데 10%라는 기준에 매달리기보다 왜 규제를 하는가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시범케이스로 제재를 당할 경우 피해가 클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EAR을 심사할 때 미 상무부의 판단 기준은 자의적일 것"이라며 "미국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범케이스로 한 곳을 제재하게 될 것인데 미국의 판단 기준도, 제재 여부도 누구도 명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변수될까

▲식각 장비 위 반도체 웨이퍼./램리서치
식각 장비 위 반도체 웨이퍼./사진=램리서치

바이든 행정부 출범도 변수다. 바이든 역시 미 기술패권을 위협하는 중국 제재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중 기술경쟁 구도를 감안해 전략적 경쟁 노선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첨단 공정 쪽은 기존 기조대로 규제하되 미국의 기술 패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 28nm(나노미터) 이전 레거시 공정 쪽은 허용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 대표는 "미 상무부에서 이미 28nm 이전 레거시 공정 쪽은 허가를 내 주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며 "SMIC도 거래제한명단(Entity list)에 올라갔지만 레거시 쪽은 허가를 해 주고 있기 때문에 바이든 출범 이후 정책 방향성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장비 분야에서는 EUV(극자외선) 스캐너, 식각, 이온임플란트 등이 첨단 장비로 분류된다. 이에 비해 레거시 공정에 많이 쓰이는 구형 CVD⋅PVD 등은 바이든 출범 시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 업체가 JHICC로 부터 수주받은 장비는 식각, 다크필드 검사장비, PECVD, 고유전(High-K)층 증착, 스파이크 어닐 (Spike Anneal), RTO(Rapid Thermal Oxidation) 장비 등이다.  전병서 중국경제연구소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것을 제재하겠다는 것이면 바이든은 기술력에 따라 제재 범위가 달리할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는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바이든 출범 뒤 제재수위를 확인하고 계약하는 것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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