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플라이드, 이례적으로 고객사 이름 보도자료에 명시
"양산 연계한 투자 가능성은 높지 않아"
특허 방어 위한 기술 확보 차원으로 분석

삼성디스플레이가 종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방식의 OLED 증착 기술를 검증한다. 일본 JDI, 중국 비전옥스 등 2군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도입했던 ‘FMM-less(파인메탈마스크 없는)’ 타입의 증착장비를 우선 테스트용으로 반입하기로 했다.

이미 8.6세대는 FMM 방식으로 투자를 확정했다는 점에서, 양산 도입한다면 차세대 애플리케이션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어플라이드가 개발한 '맥스 OLED' 장비. /자료=어플라이드
어플라이드가 개발한 '맥스 OLED' 장비. /자료=어플라이드

 

어플라이드 “삼성디스플레이, 맥스 OLED 알파기 도입”

 

미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이하 어플라이드)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디스플레이가 자사 ‘맥스(MAX) OLED’ 설비를 검증용으로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장비 회사가 고객사 이름을 외부 발표 자료에 직접 언급하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어플라이드가 보도자료 배포 이전에 삼성디스플레이측과 관련 내용 협의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어플라이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맥스 OLED 설비 알파기를 도입할 것이라고만 밝혔을 뿐, 언제 어떤 규모로 반입할 예정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맥스 OLED는 삼성디스플레이가 6세대(1500㎜ X 1850㎜), 8.6세대(2290㎜ X 2620㎜) 투자에 적용한 FMM 방식과는 화소(서브픽셀)를 패터닝하는 원리가 완전히 다르다.

기존 방식은 FMM을 유리기판에 붙인 채, 고열로 끓인 유기재료를 증착시킨다. FMM에는 십수μm(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작은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는데, 이 구멍을 통해 유기재료가 침투해 화소를 구성하는 원리다. 이 같은 기술은 지난 6세대 이전부터 확립돼 가장 최근의 8.6세대 라인에까지 폭넓게 도입된 바 있다.

애플 '비전프로'의 픽셀(왼쪽)과 '아이폰15 프로맥스'의 픽셀. 맥스 OLED를 이용하면 왼쪽 사진처럼 높은 밀도의 화소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어플라이드의 설명이다.
애플 '비전프로'의 픽셀(왼쪽)과 '아이폰15 프로맥스'의 픽셀. 맥스 OLED를 이용하면 왼쪽 사진처럼 높은 밀도의 화소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어플라이드의 설명이다.

이번에 어플라이드가 공개한 맥스 OLED는 FMM을 쓰지 않는 FMM-less 방식이다. FMM 없이 유기재료를 증착하면 기판 전면에 고르게 유기재료 박막이 입혀진다. 대신 노광⋅식각 기술을 이용해 필요 없는 부분을 긁어낸다. 이를 통해 적색⋅녹색⋅청색 화소를 종전 방식 대비 더 미세하고 높은 개구율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어플라이드의 설명이다.

이전 FMM 방식은 FMM 자체가 가지는 한계 탓에 유리기판 크기를 넓히는 것도, 1인치 당 화소밀도(PPI)를 높이는 것도 어려웠다. 어플라이드는 맥스 OLED가 8.6세대 대응이 가능하고, 1인치 당 픽셀 수를 2000PPI까지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FMM으로 구현 가능한 1인치 당 픽셀 수는 600~700PPI 언저리에 불과하다. 또 패널 밝기는 기존 대비 3배, 수명은 5배 늘리면서 패널 소비전력은 30% 절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방식은 이미 JDI가 ‘eLEAP’, 비전옥스가 ‘ViP(Visionox Intelligent Pixelization)’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바 있다. 이들은 맥스 OLED와 같은 기술로, 각자의 마케팅 용어로서 eLEAP과 ViP를 명명했다. 관련 파일럿 장비는 모두 어플라이드가 공급했다.

기존 OLED(왼쪽)와 eLEAP의 개구율 비교. /자료=JDI
기존 OLED(왼쪽)와 eLEAP의 개구율 비교. /자료=JDI

 

“삼성디스플레이, 특허 방어용으로 도입할 듯”

 

다만 이번 알파기 도입이 삼성디스플레이의 FMM-less 방식 양산 투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은 드물다. 길게 봐서 삼성디스플레이가 ‘G-VR(글래스 VR)’ 프로젝트 같은 신규 애플리케이션용으로 FMM-less 투자에 나설 수 있겠지만 가시성은 낮다는 의미다. 

당장 삼성디스플레이의 G-VR만 해도 기존 A2 내의 5.5세대(1300㎜ X 1500㎜) 설비들을 재활용하며, 이는 처음부터 FMM을 쓰지 않는 WOLED(화이트 OLED) 방식이다(<삼성디스플레이 G-VR, 마이크로 OLED팀 아닌 중소형 사업부가 맡는다> 참조). FMM이냐 FMM-less냐를 논할 차원이 안 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G-VR 프로젝트에 최대한 투자비 지출을 억제한다는 방침이어서, 당장 이 프로젝트에 FMM-less 양산 투자를 일으킬 가능성은 낮다.

삼성디스플레이의 8.6세대 OLED 투자는 이미 FMM 방식으로 확정됐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전경.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의 8.6세대 OLED 투자는 이미 FMM 방식으로 확정됐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전경. /사진=삼성디스플레이

따라서 당장 양산을 연계해 맥스 OLED 검증용 설비를 반입한다기 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8.6세대를 FMM 타입으로 확정한 상황에서, 경쟁사들이 FMM-less 방식으로 대거 돌아설 경우를 대비한 특허 확보 차원이라고 보는 시각이 주류다. 

아직 FMM-less 방식 양산 투자를 결정한 회사는 없고, 중국 비전옥스 정도만 8.6세대 투자 대안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비전옥스가 FMM-less 기술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다른 중국 내 경쟁사들까지 가세하면 시장 무게추가 FMM-less로 기울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삼성디스플레이로서는 우선 알파기 도입을 통해 관련 특허를 확보해 놓고, 후발 주자들이 FMM-less 기술로 치고 나갈 때 견제구를 던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성디스플레이가 보험용으로 맥스 OLED 알파기를 도입한다는 견해다. 

어플라이드 역시 이 같은 배경을 모를리 없다. 그러나 비전옥스가 8.6세대 투자용 증착장비 선정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삼성디스플레이의 알파기 도입은 비전옥스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투자 방식놓고 고민 깊어지는 비전옥스...안전한 FMM이냐, 고효율 ViP냐> 참조). 이 때문에 삼성디스플레이 양해를 얻어 알파기 도입 보도자료를 배포했을 거란 관측이다. 

한 디스플레이 산업 전문가는 “당초 FMM-less 방식이 투자비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었으나 증착 이후 노광-식각 공정이 반복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큰 이점은 없다”며 “양산 구현 측면에서도 아직은 검증이 덜 된 기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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