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태계 미드필더로 역할 격상된 디자인하우스
공정거래법상 두산그룹 편입은 안 될 듯

두산그룹이 삼성전자 DSP(디자인솔루션파트너) 소속인 세미파이브 추가 지분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두산은 지주사 차원에서 이미 세미파이브 소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번 거래를 통해 최대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서 디자인하우스가 ‘미드필더' 역할로 격상됐다는 점에서 향후 반도체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활용할 전망이다. 

 

두산그룹, 세미파이브 최대주주 된다

 

두산그룹은 최근 두산테스나를 통해 미국 사이파이브가 보유한 세미파이브 지분 전량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사이파이브는 세미파이브 지분 17.8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양측은 이미 SPA(주주간매매계약)를 주고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해 3월 두산그룹은 (주)두산 차원에서 세미파이브 우선주 지분 4.07%, 보통주 지분 0.68%를 각각 인수한 바 있다. 두산테스나 역시 작년 4월 세미파이브 지분 2.36%를 확보했다. 사이파이브와의 딜이 완료되면 두산그룹 전체로는 지분율이 25%로 뛴다. 세미파이브 최대주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두산이 세미파이브 인수에 나서는 건 최근 반도체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그룹 전략에 주춧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디자인하우스는 파운드리 기업이 발주하는 설계 용역을 2차 수주하는 것으로 역할이 제한됐다. 파운드리 기업과 퀄컴⋅AMD⋅미디어텍 등 대형 팹리스 간 직거래가 관례화 된 시장에서 디자인하우스가 자생력을 갖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AI(인공지능) 붐과 함께 시장 판도가 달라졌다. 기존 대형 팹리스 뿐만 아니라 NPU(신경망처리장치) 스타트업과 그동안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지 않던 기업들도 자사 비즈니스에 특화된 칩 디자인을 추진하면서다. 이처럼 시스템반도체 시장에 신규 유입된 기업들을 상대하는 회사가 디자인하우스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서 디자인하우스들의 역량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에서 디자인하우스들의 역량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디자인하우스들은 ‘턴키' 수주를 통해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능동적으로 연결할 뿐만 아니라 OSAT(외주패키지테스트) 업체에 일감을 발주하는 등 반도체 출하와 관련한 전 과정을 관리한다. 이전 용역 사업에서 비즈니스의 중심은 파운드리였으나, 턴키 사업의 중심 키는 디자인하우스가 쥐고 있다. 

상장회사로서 용역과 제품 매출을 분리 발표하는 가온칩스(삼성전자 DSP 소속)만 해도 올해 상반기들어 제품 매출 비중이 80%로 늘었다. 제품 매출은 가온칩스가 반도체 설계 프로젝트를 턴키 수주한 것을 뜻한다. 지난해까지 용역과 턴키 매출 비중은 각각 절반을 차지했다.  

두산그룹이 세미파이브를 인수하면 향후 세미파이브 수주 프로젝트 중 테스트 일감은 두산테스나에 맡기는 그림도 고려할 수 있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디자인하우스가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관리하기에 반도체 사업 경험이 적은 두산그룹 내에서 청사진을 그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계열사 편입은 안 될 듯

 

다만 두산그룹이 세미파이브 최대주주로 등극하더라도 두산그룹 내로 편입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미파이브 지분 인수 주체인 두산테스나가 (주)두산의 손자회사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를 갖기 위해서는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 

두산그룹은 계열사 내 반도체 캡티브 수요도 많은 편이다. 사진은 두산로보틱스가 생산한 산업용 로봇. /사진=두산로보틱스
두산그룹은 계열사 내 반도체 캡티브 수요도 많은 편이다. 사진은 두산로보틱스가 생산한 산업용 로봇. /사진=두산로보틱스

현재 세미파이브에는 조명현 대표를 포함한 주요 주주 5인 외에도 기타 주주가 56.7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지분 100%를 모두 사들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손자회사가 단순히 타 법인 지분을 보유하는 건 금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두산테스나는 세미파이브의 최대주주로 등극하되 세미파이브를 독립 회사로 남기게 될 전망이다. 

또 다른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세미파이브가 두산그룹 밖에 있는 게 다른 팹리스들 설계 일감을 수주하는 데 훨씬 유리할 것”이라며 “두산그룹으로서는 지분 투자를 통해 소유권만을 가져오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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