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판매금지로 이행될 가능성은 낮아"
스마트폰 업체들도 퀄컴 대체 수급 움직임은 없어
세계 최대 반도체 IP(설계자산) 기업 Arm이 미국 퀄컴에 60일 후 라이선스 종료를 통보했다. 퀄컴의 연례 행사인 ‘스냅드래곤 서밋' 기간 관련 사실이 공개되면서 양측 긴장 관계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사가 반도체 산업에서 상호 의존 관계라는 점에서 파국 보다는 극적인 화해에 도달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Arm, 퀄컴에 “60일 후 라이선스 종료" 통보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Arm은 퀄컴에 칩 설계 라이선스 계약을 60일 뒤 종료한다고 통보했다. Arm이 정확히 언제 퀄컴에 관련 사실을 공지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보가 실제 이행된다면 늦어도 올 연말 안에 둘 사이는 파국을 맞게 된다.
Arm의 이번 조치는 지난 2022년 퀄컴을 계약 위장과 상표권 침해를 이유로 고소한 게 발단이다. 앞서 2021년 퀄컴은 애플 출신들이 설립한 반도체 설계 업체 누비아를 인수했는데, Arm은 퀄컴이 누비아의 CPU(중앙처리장치) 설계를 이용하려면 라이선스 조건을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상 Arm을 비롯한 반도체 IP 회사의 라이선스 금액은 고객사 매출 규모, 시장점유율, 잠재적인 매출 성장률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Arm과 누비아 간 기존 라이선스 조건은 그동안 Arm이 퀄컴과 체결한 라이선스 조건과는 격차가 클 수 있다.
특히나 퀄컴이 누비아를 인수할 당시, 누비아는 Arm 라이선스를 이용해 서버용 칩을 설계했다. 퀄컴이 이를 일부 수정해 스마트폰용 AP로 전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Arm은 퀄컴에 재협상을 요구했으나 퀄컴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Arm은 법정 분쟁으로 대답했다.
만약 둘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당장 퀄컴은 Arm 기반으로 설계된 모든 칩을 판매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퀄컴 매출을 뒷받침하는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스냅드래곤 제품군 전체를 출하할 수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퀄컴이 출시한 ‘스냅드래곤8 엘리트'에 누비아가 설계한 ‘오라이언(Oryon) CPU가 쓰였다며 퀄컴이 Arm으로 부터 독립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오라이언 CPU는 Arm의 표준 CPU 설계가 아닐 뿐, 여전히 Arm의 ISA(명령어 세트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ISA는 반도체 칩이 OS(운영체제) 등의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데 사용하는 기본 컴퓨터 코드다. 둘 사이의 라이선스가 종료되면 스냅드래곤8 엘리트 역시 판매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퀄컴 대변인 이메일 성명에서 “법적 절차를 방해하려는 시도로 보이며 계약 해지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며 “우리는 Arm과의 계약에 따른 퀄컴의 권리가 확인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설명했다.
협상 앞두고 ‘벼랑끝 전술'
다만 양측 공방이 격화되는 것과는 별개로 판매 금지 등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Arm의 라이선스 종료 선언이 일종의 '블러핑(벼랑끝 전술)'이며, 두 회사가 종국적으로는 화해에 나설 것이란 뜻이다.
퀄컴 칩 출하가 금지되면 당장 내년 초 삼성전자 ‘갤럭시S25’를 비롯해 연간 3억~4억대에 이르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출시가 불가능해진다. 이는 삼성전자⋅샤오미⋅비보⋅오포 등 스마트폰 세트 제조사에 큰 재앙이지만 아직 이들이 퀄컴을 대체할 AP 수급에 나서는 움직임은 없다. 이번 일이 판매 금지로 비화될 가능성을 그 만큼 낮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모바일 AP 시장에서 상호 의존적인 Arm과 퀄컴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퀄컴은 AP 출하량 측면에서 근소한 차이로 대만 미디어텍에 이은 2위지만, 매출 기준으로는 압도적인 1위다. 당장 퀄컴의 칩 출하가 중단되면 퀄컴 뿐만 아니라 Arm 비즈니스 자체도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나 퀄컴은 그동안 Arm이 약점으로 갖고 있던 MS ‘윈도’ 기반 노트북PC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IP 제공 업체로서 직접 칩설계를 하지 않는 Arm 입장에서는 퀄컴 처럼 하이엔드급 SoC(시스템온칩)를 설계하는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퀄컴 비즈니스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게 되는 건 Arm으로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퀄컴 칩 출하가 중단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오히려 조용하다”며 “그만큼 둘 사이가 전면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