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전반사를 위한 도파관, 고굴절 소재 필요
SiC, 인간 인지영역인 60도 이상의 FOV 구현
지난달 메타가 공개한 AR(증강현실) 기기 ‘오라이언'의 가장 놀라운 점은 VR(가상현실) 기기들 대비 가벼운 폼팩터도, 손목밴드를 이용한 신경 인터페이스도 아니다. 무려 70도에 이르는 디스플레이 FOV(Field of View, 시야각)와 그를 구현하는 도파관은 이전에 출시된 AR 기기들을 한순간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직 시제품이기는 하지만 1만달러(약 1300만원)에 이르는 오라이언 원가의 상당부분이 이 디스플레이와 도파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전반사를 위한 도파관, 고굴절 소재 필요
오라이언은 기존 VR 기기들이나 애플 ‘비전프로’ 등 MR(혼합현실) 기기와 달리 디스플레이가 안구 바로 앞에 위치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일반 안경처럼 전방 시야를 확보해야 하기에 시야를 가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 소자를 직접 렌즈에 삽입할 수는 없다. AR 기기에서 디스플레이 화상은 빔프로젝터처럼 렌즈 뒤에서 렌즈 방향으로 쏴 주어야 한다. 도파관은 디스플레이 엔진(주로 마이크로 LED)에서 출발한 화상을 최대한 손실 없이 안구 앞 렌즈에 투사하는 부품이다.
따라서 도파관으로 사용하는 소재는 ▲가시광선을 통과시킬 만큼 투명하면서 ▲안경 렌즈처럼 가벼워야 하고 ▲결정적으로 굴절률이 높아야 한다. 굴절률이 높아야 하는 건 도파관 굴절률이 높을수록 FOV, 즉 눈 앞에 투사하는 화면의 크기가 커지기 때문이다. 굴절률은 빛이 밀도가 다른 두 소재를 통과할 때, 속도차에 의해 빛의 방향이 꺾이는 정도를 의미한다.
메타 이전에 AR 기기를 선보였던 회사들은 대부분 고굴절 유리를 도파관 소재로 써왔다. 이들은 굴절률 1.8~2.0 사이의 재료들로, 이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FOV는 20~30도 안팎이다. 이는 전방시야에서 20~30도 영역에만 화면이 투사된다는 뜻으로, 마치 넓은 아파트 거실에서 20인치대 벽걸이 TV를 시청하는 것 같은 답답함을 준다.
메타가 오라이언에서 70도에 이르는 FOV를 구현할 수 있었던 건 도파관 재료로 SiC(실리콘카바이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SiC 굴절률은 2.6 정도로, 이를 이용한 도파관의 FOV는 최소 60도를 넘는다. 통상 인간이 양쪽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시야의 범위가 60도 안팎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SiC 도파관으로 구현한 FOV는 인간 인지 범위를 100% 이상 충족하는 셈이다.
유리보다 값비싼 SiC, 인간 인지영역 이상의 FOV 구현
문제는 이 SiC의 가격이다. 최근 전력반도체용 웨이퍼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SiC는 아직 대구경 성장(Growth) 기술이 안정화 되지 않았다. 12인치 공정이 일반화 된 실리콘 웨이퍼 공정과 달리 SiC는 아직 6인치 공정이 주류다. 빠르면 내년부터 8인치 공정을 도입하는 팹들이 늘고, 여기에 공급되는 8인치 잉곳⋅웨이퍼 공급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1장에 5000달러 육박하던 8인치 SiC 웨이퍼, 가격 빠지고 수급도 풀려> 참조).
6인치, 혹은 8인치 SiC 잉곳 내에서 도파관을 생산하기 위해 절삭하는 웨이퍼 두께와 면취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SiC 자체가 현재는 8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3000달러에 달할 만큼 비싼 소재다. 6인치도 1000달러에 달한다. 이를 이용해 만든 도파관이 비쌀 수 밖에 없다.
물론 SiC가 아닌 플라스틱이나 필름 등 유기물로도 도파관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빛의 굴절률은 소재의 밀도가 높을 수록 커진다. 플라스틱 도파관으로는 고굴절 유리를 능가하는 굴절률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혹은 LiNbO₃(니오비움산리튬) 처럼 투명하면서 유리 대비 굴절률 높은 소재를 쓸 수도 있다. LiNbO₃ 굴절률은 2.3으로, 대략 45도 정도의 FOV를 구현할 수 있다. SiC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유리 도파관 보다는 넓은 FOV 수치다.
다만 LiNbO₃는 변조기⋅센서 산업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소재다. 향후 제조 생태계가 성장할 여지가 크지 않다. SiC만 해도 전력반도체 산업 성장에 따라 잉곳⋅웨이퍼 생산능력이 동반성장할 여지가 크지만 LiNbO₃는 수급이 제한적이다. SiC와 마찬가지로 아직 6인치 공정이 주류다.
한 디스플레이 산업 전문가는 “FOV가 2배 넓어지면 화면 영역은 4배로 넓어진다는 점에서 AR 사용자가 체감하는 효용이 크다”며 “AR 기기가 스마트폰을 대체하려면 SiC 도파관을 싸게 조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