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안드로이드XR' 공개 이후 성장 기대
디스플레이 없는 타입부터 시작
풀컬러 LEDoS로 진화할 전망
구글이 10여년만에 스마트 글래스 시장 재진입을 천명한 이후 산업 생태계가 들썩이고 있다. 후방산업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HMD(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 타입 기기들과 달리, 스마트 글래스는 가벼운 폼팩터에 AI(인공지능) 기능을 결합해 스마트폰을 대체할 플랫폼으로의 성장도 기대된다.
스마트 글래스는 스마트폰 시장 초창기처럼 핵심 기능 측면에서 일정한 발전 단계를 밟아나갈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 와 있는 1세대 스마트 글래스
그런 관점에서 메타가 선글래스 브랜드 레이밴과 함께 출시한 ‘레이밴-메타’는 스마트 글래스 1세대 제품이라 할만 하다. 레이밴-메타는 자체 마이크와 스피커가 내장돼 AI 모델에 음성명령을 내릴 수 있다.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도 실시간 번역, 통화, 음악감상 등의 기능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렌즈 옆에 장착된 카메라로는 사용자가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각 정보를 LLM(거대언어모델)도 공유하기 때문에 구글 ‘프로젝트 아스트라’처럼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묻고 대답을 들을 수도 있다.
다만 레이밴-메타는 디스플레이가 장착돼 있지 않다. 촬영한 사진을 확인하려면 여전히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AI 에이전트의 대답도 스피커를 통해서만 확인 가능하다. 아직 스마트 글래스에 장착 가능한 배터리 용량이 크지 않기에 디스플레이까지 탑재하기에는 사용시간이 지나치게 짧아지는 탓이다.
현재 레이밴-메타의 최장 사용시간은 4시간이며, 충전기가 내장된 케이스를 활용하면 최장 32간을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적어도 4시간에 한 번은 스마트 글래스를 벗어서 충전해야 할 만큼 사용 시간이 짧다.
따라서 2세대 스마트 글래스는 초보적인 수준이라도 저전력 디스플레이가 장착되고, 이에 따라 배터리 용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2세대 제품 역시나 대규모 양산 수준은 아니지만 초기 제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븐리얼리티가 내놓은 ‘G1’, 띵크AR이 선보인 ‘AI렌즈’ 등이 2세대 스마트 글래스 범주에 들어간다. 두 제품 모두 마이크로 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녹색 LED만 단색으로 적용한 타입이다. 마이크로 LED는 아직 적색 칩의 수명⋅효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풀컬러 적용시 전사(Transfer) 공정 난이도가 급격하게 높아진다.
녹색칩은 휘도(밝기) 구현 측면에서 청색보다 유리해 청색 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2세대 제품이 출시되고 있는 셈이다. 레이밴-메타도 내년쯤 차세대 버전으로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버전 출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녹색 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짜 스마트 글래스 경쟁은 2027년 이후부터
1세대 스마트 글래스가 이미 양산품으로 출시되고, 2세대가 소량 출하되는 수준이라면 3세대 스마트 글래스는 아직 프로토타입으로 공개되는 수준이다. 지난해 메타가 ‘커넥트’ 행사에서 공개한 ‘오라이언(Orion)’이 전형적인 3세대 스마트 글래스다.
오라이언에는 풀컬러 LEDoS(LED on Silicon) 디스플레이가 탑재돼 있고, SiC(실리콘카바이드) 도파관 렌즈를 장착했다. 덕분에 70도 정도의 FoV(Field of View)를 구현했다. FoV는 전방 시야에서 화면이 차지하는 영역을 나타내는 수치로, 인간이 육안으로 한 번에 조망하는 FoV가 60도 안팎이다. 따라서 오라이언의 풀컬러 LEDoS와 FoV 70도는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관점에서 최고 스펙을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스마트폰이 세대를 거듭하며 이전 세대 제품들이 단종된 것과 달리, 스마트 글래스는 사용 목적에 따라 1~3세대 제품이 시장에 공존할 가능성이 크다. 3세대 제품이 사용자 관점에서 가장 편리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무겁고 비싼 가격에 출시될 수 있는 만큼, AI 에이전트 가능을 강조한 2세대 제품이 주류로 각광받을 수도 있다.
구글은 최근 연례 개발자 회의에서 스마트 글래스를 공개하면서 디스플레이를 ‘선택적(Optional)’이라고 표현했다. 하드웨어 제조사 전략에 따라 디스플레이를 양쪽 렌즈 모두에 넣을수도, 한쪽에만 넣을 수도 있고, 아예 빼버릴 수도 있게 OS(운영체제) 상에서 지원한다는 뜻이다.
구글의 이러한 전략은 스마트 글래스용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계에 주는 함의가 크다. 구글은 스마트폰 산업이 성장하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스마트 글래스 시장에서도 ‘안드로이드XR’이라는 OS를 개발하고, 제조사들로 하여금 안드로이드XR을 탑재한 제품을 출시하도록 독려한다는 전략이다.
한 LED 산업 전문가는 “아직 3세대 제품을 양산하기에는 LEDoS 기술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며 “일단 1~2세대 제품이 시장에서 경쟁하며 2027년 이후 3세대 기술이 성숙해지기를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