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 EAR 지침
"한국산도 미국 기술⋅SW 25% 이상 포함되면 미국산 재수출로 간주" 제재
화웨이, 작년 국내서 7조3400억원어치 부품 구입

5세대(5G) 이동통신 주도권 경쟁으로 촉발된 미국 정부와 화웨이 간의 갈등이 스마트폰 사업으로까지 옮겨 붙었다. 화웨이가 미국 상무부 제재 대상(Entity list)에 등재됨에 따라 당장 미국 산 부품 구매에 차질을 빚겠지만, 미국 외 지역 부품이라고 해서 즉시 대체재로 갖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 상무부의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라 미국산이 아니더라도 미국 기술⋅소프트웨어(SW)가 일정 비율 이상 사용됐다면 전체를 미국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화웨이 스마트폰. /사진=화웨이 홈페이지
화웨이 스마트폰. /사진=화웨이 홈페이지

미국 기술⋅SW 25% 이상 사용되면 미국산

 

EAR은 미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이 운영하는 전략물자 관리지침이다. 미국의 국가안보, 대외정책, 대량파괴무기(WMD) 확산방지를 위해 특정 품목의 수출 및 재수출을 제한한다.

EAR이 기업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건, 이 지침이 미국 회사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등 동맹국 내 업체들까지 폭넓게 적용되는 탓이다. 예컨대 부품 혹은 완제품 생산지가 미국이 아니어도 내부에 사용된 기술이나 SW가 미국산일 경우, 전체를 미국산의 ‘재수출’로 판단한다. 만약 제재 대상 국가나 기업에 미국산 기술⋅SW를 재수출할 경우 벌금 및 과징금, 제재대상자 등재, 자산몰수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물론 극히 일부분에 미국산 기술⋅SW가 사용됐다고 해서 이를 미국산의 재수출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최종 도착지 국가별로 미국산 기술⋅SW이 포함될 수 있는 한도(최소편입비율, de minimis rule)를 규정해놓았다(KIPOST 5월 21일자 <미국 상무부 EAR 최소편입비율 가이드라인> 참조).

이란⋅수단 등 미국의 적성국은 10%, 그 외 지역의 제재대상에는 25%를 최소편입비율로 적용한다. 예컨대 화웨이에 판매하는 1000원짜리 부품을 생산하는데, 250원 이상의 미국산 기술⋅SW가 사용된다면 이는 제재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앞서 지난해 4월 미국 상무부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았던 중국 중싱통신(ZTE)은 이란과 북한에 최소편입비율을 초과한 미국산 부품⋅SW를 수출한 혐의를 받았다. ZTE는 조단위의 벌금을 납부하고서야 3개월만에 제재 대상에서 풀려났다.

도착지 국가별 최소편입비율. /자료=전략물자관리원
도착지 국가별 최소편입비율. /자료=전략물자관리원

이서진 전략물자관리원 연구원은 “화웨이가 지난해 ZTE처럼 ‘Entity list’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동일한 규제를 받게 된다”며 “국내기업의 미국산 품목 수출은 EAR 규정상 재수출에 해당하여 미국 상무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특히 국내기업은 미국산의 상품⋅기술⋅SW가 최소편입비율 기준을 초과하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외 지역 부품 대체 어려울수도

 

이 때문에 미국산 부품 수급이 불가능해진 화웨이가 미국 외 지역에서 우회해 구매하는 것도 기대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밖에서 생산된 부품이라도 최소편입비율 기준을 충족하는지 까다롭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편입비율에 대한 기준은 미국 상무부 홈페이지(www.bis.doc.gov/index.php/regulations) 상에서 확인해야 한다.

독일 반도체 업체 인피니언이 20일 일부  제품에 한해 화웨이에 공급을 중단한다고 밝힌 것도 EAR 지침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 역시 일단은 제품을 공급하겠으나 계속 주시하겠다고 밝히기기도 했다.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장비 상당수가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KLA텐코 등 미국 회사 제품이라는 점에서 미국 기술 사용 비율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화웨이 스마트폰. /사진=화웨이
화웨이 스마트폰. /사진=화웨이

지난해 화웨이가 전 세계에서 사들인 소재⋅부품은 총 700억달러(약 83조원)어치다. 이 중 확실한 미국산은 110억달러어치 정도다. EAR 지침대로라면 나머지 590억달러어치 역시 원활하게 수급할 수 있을거라는 보장이 없다. 화웨이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구매한 부품은 7조3400억원어치다.

지난해 4월 미국 상무부 제재 리스트에 3개월 등재됐던 ZTE의 스마트폰 판매량이 3분의 1로 꺾인 것도 소재⋅부품을 수급하지 못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부품 구매가 막힌 화웨이가 우리나라 등 다른 국가에서 수급 방안을 타진할 수 있으나, 이를 무조건 수혜로 볼 수는 없다”며 “수출 기업들은 EAR 상 최소편입비율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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