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자 수명 3배, 투자비는 절반 수준
이상적이지만 첫 투자 리스크 커
이미 6세대 1개 라인 FMM-less로
8.6세대(2290㎜ X 2620㎜) 라인 투자를 전격 발표한 중국 비전옥스가 어떤 방식의 증착 기술을 양산에 적용할 지 관심사다. 앞서 8.6세대 투자에 나선 삼성디스플레이⋅BOE는 단지 장비 공급사 선택의 문제였으나, 비전옥스는 아예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증착 기술을 도입할 가능성이 대두된다.
비전옥스는 ‘ViP(Visionox Intelligent Pixelization Technology)’라고 명명한 자체 증착 기술을 진지하게 검토해왔다.
비전옥스, 첫 FMM-less 8.6세대 투자 나서나
아직 비전옥스의 8.6세대 투자 방안에 대해 공개된 정보는 많지 않다. 이 회사는 지난 28일 중국 허페이시 정부와 MOU(양해각서)를 교환하면서 ▲목표 생산능력은 8.6세대 원판투입 기준 월 3만2000장 ▲투자금액은 550억위안(약 10조3600억원)이라고만 밝혔다. 허페이시는 이번에 비전옥스가 8.6세대 라인을 짓기로 한 장소며, 기존 6세대 OLED 라인인 V3 근거지이기도 하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비전옥스가 내달 더 구체적인 투자 방안을 공개하고 3분기 본격적인 장비 발주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디스플레이 업계서 6세대는 물론 8.6세대까지 FMM(파인메탈마스크)을 이용해 적색⋅녹색⋅청색 화소를 패터닝하는 게 대세다. 앞서 투자를 집행한 삼성디스플레이⋅BOE 모두 이 방식을 택했다.
다만 비전옥스가 8.6세대 증착 기술로 경쟁사들처럼 FMM을 쓰게 될 지, 아니면 업계 처음으로 FMM-less(파인메탈마스크 없는) 방식을 택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FMM-less는 적색⋅녹색⋅청색 화소 구분시 FMM을 쓰지 않고 포토리소그래피 공정을 이용해 패터닝하는 기술이다.
패널 전면에 특정 색상의 유기재료를 증착하고, 화소가 아닌 부분은 노광⋅식각 공정으로 긁어내는 것이다. FMM 없이 반도체 공정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이를 ‘FPM(Fine Photo Mask)’ 기술로 명명하기도 한다.
OLED 양산 투자를 FMM-less로 집행했을 때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소자 수명 연장과 투자비 절감이다. FMM-less로 생산한 OLED 패널의 소자 수명은 종전 대비 최대 3배(JDI 추정)에 달하며, 투자비는 같은 조건에서 최저 55% 수준으로 절감(옴디아 추정)할 수 있다.
FMM-less가 이전 FMM 보다 소자 수명이 늘어날 수 있는 건 높은 개구율 덕분이다. 개구율이란 OLED 단위 면적 안에서 화소가 차지할 수 있는 면적의 비율을 뜻한다. FMM은 특성상 개구율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는데, FMM-less는 개구율을 60%까지 확보할 수 있다.
개구율이 크다는 건 개별 화소 크기가 크다는 것이고, 같은 밝기를 내는데 화소 내 유기재료가 받는 스트레스가 그 만큼 적다는 뜻이다. FMM-less로 생산한 패널이 더 긴 수명을 확보할 수 있는 이유다.
투자비를 절감할 수 있다면 향후 양산 과정에서 감가상각비를 줄임으로써 상대적으로 쉽게 BEP(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 이번에 비전옥스가 투자금으로 제시한 550억위안은 앞서 BOE가 공개한 630억위안 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위험 무릅쓰고 FMM-less 강행할 수도
이처럼 이상적인 조건임에도 아직 디스플레이 업계에 FMM-less가 양산 도입되지 못한 건 첫 투자에 대한 리스크 때문이다. 앞서 양산 투자한 회사가 있다면 신기술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첫 투자는 그 위험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잉크젯 프린팅처럼 이론상 우수한 기술이라도 실제 양산 과정에서는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다만 비전옥스는 여러 이유에서 이번에 업계 최초로 FMM-less 방식 양산 투자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비전옥스는 이미 허페이시 V3에 FMM-less 방식의 6세대 투자(페이스3)를 단행했다. 아직 이 라인은 본격 양산하기 전이지만, 이를 통해 FMM-less 기술에 대해 최소한의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8.6세대 FMM-less의 예행연습이 되는 것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허페이시로부터의 보조금 확보 비결이 ViP, 즉 FMM-less 기술이었을 거란 관측도 있다. 비전옥스는 기투자한 V2(구안), V3(허페이) 라인에서의 가동률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자금난에 빠진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자금난 탓에 회사 운영이 어렵게 되자 생산라인이 위치한 각 지방정부에 지분매입을 요청하기도 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비전옥스가 허페이시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을 이끌어 낸 건, FMM-less로 경쟁사들과 차별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시 당국에 심어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전옥스는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는 물론, BOE 대비해서도 기술⋅생산능력⋅고객기반 어느 하나 유리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경쟁사들이 시도하지 못하는 새로운 기술이라도 도입해야 한다.
한 디스플레이 산업 전문가는 “FMM-less 기술을 들이밀지 않았다면 허페이시로부터 보조금을 수령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첫 라인부터 바로 FMM-less을 도입하느냐, FMM 방식과 섞어서 하느냐의 결정만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