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화웨이가 일본 지사를 통해 국내 OLED 재료 회사들과 접촉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화웨이는 그동안 국내외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로부터 OLED를 구매하는 입장이었으나, 앞으로는 재료와 공정, 협력사까지 후방산업을 관장하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
화웨이재팬, 1월 한국 방문
20일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화웨이 일본 지사 연구진들이 지난달 중순 한국으로 들어와 다수의 OLED 재료 업체들을 방문했다”며 “패널 업체들을 뛰어 넘어 직접 서플라이체인을 관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화웨이가 방문한 회사로는 삼성SDI⋅LG화학⋅SFC 3사가 거론된다.
삼성SDI는 녹색 발광층과 p도판트(노발레드), SFC는 청색 발광층 재료에 특화된 회사다. LG화학은 원래 공통층 재료를 주로 공급했으나 최근 적색⋅녹색⋅청색 발광층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SDI 독점 품목이던 p도판트도 자체기술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화웨이는 이들 3사 외에 지난해부터 다양한 중소 OLED 재료회사들까지 폭넓게 접촉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OLED 패널 회사도 아닌 화웨이가 기초 소재에 해당하는 유기재료 업체들과 협업을 모색하는 건 애플식의 타이트한 SCM(서플라이체인매니지먼트)을 모방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애플은 삼성⋅LG디스플레이로부터 OLED를 구매하면서도 패널 안에 들어가는 각종 소재⋅부품, 심지어 이를 생산하는 장비까지 직접 승인한다.
이는 디스플레이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반도체⋅PCB(인쇄회로기판)⋅케이스⋅카메라 등 자사 세트에 장착되는 모든 소재⋅부품도 망라된다. 이를 통해 안드로이드 진영 경쟁사들이 쉽사리 따라할 수 없는 하드웨어 우수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후방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향후 협력사들과의 단가 협상에도 유리해지는 점은 부수적인 이득이다. 화웨이도 이 같은 애플의 전략을 추종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화웨이의 애플 따라하기, 성공할 수 있을까
다만 자체 SCM을 구축하려는 화웨이의 의지와 별개로, 이 같은 시도가 관철될 수 있을지 여부는 두고 봐야 한다. OLED 패널과 관련해 자체 SCM을 구축하자면 삼성⋅LG디스플레이, 혹은 BOE에 자사가 승인한 재료를 써서 패널을 생산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널 업체 관점에서는 생산품 다양성을 줄일수록 생산원가도 낮아지는데, 화웨이만을 위해 특정 디바이스를 개발하는건 비용효율적이지 않다.
애플만 해도 한해 프리미엄급으로만 2억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전체 OLED 시장에서 구매액 점유율만 50%를 넘을 정도로 구매력이 높다. 패널 업체가 애플만을 위해 디바이스를 개발하자면 비용이 수반되지만, 그 이상의 매출⋅영업이익을 뽑아낼 수 있다.
이에 비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작년 기준 4000만~5000만대까지 빠진 상태다. 지난 2019년 2억4000만대를 판매한 적도 있지만, 그해 미국 상무부 제재가 시작되면서 2022년에는 3000만대까지 판매량이 줄었다. 그나마도 메이트(대화면 플래그십)⋅P(플래그십)⋅G(대화면 중저가)⋅노바(중저가)⋅Y(보급형)로 라인업이 파편화 되어 있다. 한 해 1개 시리즈만 내놓은 애플과는 패널 생산에 따르는 규모의 경제 격차가 크다.
재료업체 입장에서도 선뜻 화웨이의 손을 잡는 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패널 업체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상황에서 고객사를 뛰어 넘고 그 위의 고객사와 소통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자칫 OLED 패널 회사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액션이다. 삼성⋅LG디스플레이는 매년 신규 OLED 패널을 개발하면서 유기재료 공급사를 재선정하는데, 불이익을 받지 말란 법도 없다. 한 유기재료 업체 대표는 “갑을 관계가 명확한 B2B 부품산업 관례상 ‘갑의 갑'과 직접 거래 관계를 트는 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화웨이가 자체 SCM을 구축하려면 애플에 버금가는 구매력을 갖춘 다음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