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인수해도 배타적 운용은 불가능
모바일 산업 초창기 Arm-구글 협력 사례 구현해야

ARM 기반 반도체 출하량 추이. /자료=ARM
ARM 기반 반도체 출하량 추이. /자료=ARM

# Arm을 인수한다는 건 해(解) 없는 방정식을 푸는 과정처럼 난해하다. Arm의 반도체 IP(설계자산)는 누구나 라이선스료만 내면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다. 공공재에 가까운 접근성이 회사 철학이다. Arm을 인수한다고 해서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IP를 비밀스럽게 쓰거나, 더 밀착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Arm 인수 후 폐쇄형 IP로 전환할 게 아닌 다음에야 당장 Arm 인수에 따른 실익을 독점할 수는 없다.

# 그렇다고 Arm 인수 주체가 배타성을 띨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 이 회사를 인수하는 게 불가능하다. Arm 인수를 위해 단기필마로 400억달러를 베팅했다가 좌절된 엔비디아 사례처럼, Arm이 특정 누군가에게 귀속되는 걸 바라는 이는 없다. ‘n분의 1’씩 지분을 잘게 쪼개어 가지는 형태가 아니면 아무리 많은 금액을 지불한들, 해외 경쟁당국 승인을 득하지 못할 것이다. 

# 독점하는 건 불가능하고, 독점하지 않으면 인수에 따른 실익이 불투명한 회사가 바로 Arm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계획대로 Arm을 IPO(기업공개)한 뒤, 불특정 다수의 금융자본 지배로 남기는 게 반도체 산업의 모든 플레이어가 내심 바라는 시나리오다. 

# 최근 공개 석상에서 Arm 인수 추진 가능성을 내비친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의 공언은 이 같은 점에서 여러 의문을 낳는다. Arm을 품기 위해 조달해야 할 자금(소프트뱅크는 IPO시 Arm 값어치를 최소 600억달러로 산정)을 어떻게 모을지도 의문이지만, Arm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그림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 SK하이닉스는 Arm IP와는 관련성이 옅은 메모리 반도체 회사다. SK 그룹사를 통틀어 봐도 Arm IP에 종속된 회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 따라서 SK가 Arm을 인수하려는 의지가 진지하다면, SK가 그리는 그림은 현재 Arm이 지배하는 모바일 산업보다는 앞으로 성장하는 영역에서의 상호 시너지에 무게가 실릴 것이다. 이는 모바일 산업 태동기, Arm과 구글(안드로이드)이 협력을 통해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 2013년 스마트폰용 CPU 시장에서 Arm의 ‘빅리틀’ 솔루션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이전에는 CPU 위에 모두 같은 종류의 코어가 올라갔다. 빅리틀 솔루션은 게임처럼 부하가 크게 걸리는 작업을 할 때는 빅코어가, 인터넷 서핑 같은 가벼운 작업에는 리틀코어가 개입하는 방식으로 전력을 절감했다. 굳이 덩치 큰 코어를 매번 동원해 쓸데 없는 전력 소모를 방지한 것이다.

# 이 같은 빅리틀 솔루션은 안드로이드 OS를 제공한 구글의 조력 없이는 안착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Arm은 사전에 구글에 빅리틀 솔루션 로드맵을 공유하고, OS가 이 기능을 무리 없이 구동할 수 있게 사전 조율했다. 이전까지 같은 종류의 코어만 다뤘던 OS가 상이한 코어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구글이 미리 준비한 것이다(<반도체 제국의 미래> 정인성 저. 참고). 

# 빅리틀 솔루션이 히트를 치면서 Arm은 모바일 산업 초기 인텔 등 잠재적 경쟁사를 완전히 제압했고, 구글 역시 스마트폰 OS 시장의 맹주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SK는 향후 Arm이 지배할 새로운 시장에서 구글(협력자)의 위치를 넘보는 것은 아닐까.

# 최근 Arm을 필두로 한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진영의 화두는 기존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er) 진영의 데스크톱과 서버 시장 진입이다. 그동안 RISC는 단순히 저전력 설계에 특화된 구조로 평가절하돼 왔다. 이제는 성능에서도 CISC 못지 않음을 애플이 ‘M1’ 칩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 

# 모바일 산업을 천하통일하고도 아직 데스크톱・서버 시장에서 만큼은 경쟁사들에 열세인 Arm에게 기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모바일 시장에서 확고부동한 위치에 오르기 위해 구글이 필요했던 것 처럼 SK가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SK 입장에서 Arm 인수에 따른 시너지가 차고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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