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개런티 없이 프로젝트 시작하던 관행도 사라져
후반부 설계 맡는 디자인하우스 일감에도 타격

최근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고점을 찍었다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달리, 파운드리 공급부족 현상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노드를 불문하고 전(全) 공정 위탁 계약이 2023년까지 가득차면서 팹리스 업체들이 신제품 설계 스케줄도 연기할 정도다. 

설계해 봐야 생산할 기회도 잡지 못할 판이니 프로젝트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장/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장/삼성전자 제공

파운드리, 2023년까지 ‘풀 부킹’

19일 삼성전자 DSP(디자인솔루션파트너) 소속 디자인하우스 임원은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2023년까지 생산 계획이 가득 잡혀 있다”며 “이 때문에 신규 설계 과제를 수주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스마트폰용 반도체 팹리스 대표도 “기존 제품 추가 주문도 쉽지 않은터라 신제품 설계 스케줄은 일단 연기해 뒀다”고 설명했다.

통상 팹리스들이 칩 설계를 마치면, 디자인하우스가 이를 받아 파운드리 공정에 맞게 후반부 설계를 완료한다. 디자인하우스들은 지난해 하반기 파운드리 업계가 공급부족 국면에 들어간 이후 후반부 설계 일감을 따내기가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이미 2023년까지 파운드리 생산 스케줄이 가득 차 있는 탓에, 파운드리가 과제 수주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올해 초까지만 해도 양산 개런티 없이 설계를 시작하고, 디자인하우스를 통해 후반부 설계도 진행했다. 

기약이 없긴 하나 수급이 풀리면 곧장 생산할 수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다. 후반부 설계만도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파운드리 공급 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올 하반기 들어서면서는 이처럼 생산 기약 없는 프로젝트 수주도 받지 않고 있다. 사정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뿐만 아니라 생산능력이 가장 많은 대만 TSMC나 UMC, 중국 SMIC와 미국 글로벌파운드리(GF) 모두 마찬가지다.  

생산 스케줄을 잡지 못하는 팹리스도 난감하지만, 일감을 줄어든 디자인하우스도 사정은 좋지 않다. 파운드리가 프로젝트를 많이 받아줘야 후반부 설계 일감이 많이 생기는데, 신규 프로젝트가 유보된 탓에 설계 물량도 그 만큼 줄었다.

한 VCA(Value Chain Aggregator) 소속 디자인하우스 임원은 “우리 같은 디자인하우스는 요즘 같은 파운드리 호황이 반갑지 않다”며 “2023년 이후 수급이 풀릴때까지 일감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VCA는 TSMC 소속 디자인하우스 연합이다. 

반도체 웨이퍼./ENGINEERS GARAGE
반도체 웨이퍼./ENGINEERS GARAGE

스마트폰 업체들의 가수요, 파운드리 공급 부족 해소하나

일각에서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 쯤에는 일부 노드에서 파운드리 수급이 풀릴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파운드리 업계 호황에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가수요 거품이 상당 부분 끼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행정부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 된 이후 후발주자인 비보⋅오포⋅샤오미, 이른바 VOX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부품 재고를 쌓았다. 2019년 스마트폰 판매량 세계 2위(2억4000만대)까지 올랐던 화웨이가 반토막 이하로 판매량이 줄어들 것이 예상된 만큼 VOX가 필요 이상으로 부품을 선주문 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이는 파운드리 업계 전반적으로 공급부족을 초래했다. 그러나 거칠것 없던 VOX의 스마트폰 판매량 확대는 2분기 들어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전년 대비 6% 감소했다. 

한 TSMC 협력사 관계자는 “스마트폰 업황이 둔화되면 VOX가 부킹했던 칩 물량을 일부 연기할 것”이라며 “그동안 생산 스케줄을 잡지 못했던 팹리스들도 내년 하반기 쯤이면 가수요가 빠진 생산 슬롯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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