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인력 현장 대응 어려움 가중
전기차 사고 관련 민관 시스템 모두 '미비'

전기차 화재 우려에 대한 불씨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올초 국토교통부와 현대자동차가 발표한 리콜 대상 외 전기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하는가 하면, 지난 14일에는 그동안 화재 사고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SK이노베이션 배터리 탑재 차량에서 연소가 발생했다. 

전기차 구매의 가장 큰 허들로 꼽히는 화재는 현재까지 정부·민간 등 어느 곳에서도 그 원인을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배터리 셀 업체 간 책임 소재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산업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탓에 당사자 모두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사고 안전 주관 부처인 국토교통부 역시 배터리 결함에 무게를 둘 뿐 확실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고 진압 가이드라인 테슬라 30페이지 vs 현대차 ‘없음’

고전압 케이블 절단 방법. /자료=테슬라 모델S 긴급 대응 가이드라인

글로벌 전기차 1위 업체 테슬라는 지난 2016년 '모델S 긴급 대응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최초 사고는 2008년 발생했지만 이 업체가 긴급 사고 대응을 위한 공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건 8년 뒤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사고를 가장 처음 마주하는 소방관 등 사고 진압 당사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차량 내부 구조가 그림 등으로 상세하게 표현돼 있고 고압 배터리 팩 오픈·이동시 화재예방협회(NFPA) 전문가 수준에 상응하는 인력만이 해체를 하도록 권고한다. 배터리팩 오픈 위치와 해체 작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고전압 케이블을 절단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그럼에도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모든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화재 1차 대응 매뉴얼이 불충분하다(inadequacy)고 적시했다. 고전압 케이블 또한 사고 발생시 종종 심하게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 해당 매뉴얼이 제대로 활용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NTSB 측은 1차 사고 대응 인력들이 일반적으로 전기차·배터리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이와 같은 예외 상황시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저전압 배터리 위치. /자료=테슬라 모델S 긴급 대응 가이드라인

국내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사고 발생시 화재 진압 인력들을 위한 매뉴얼은 따로 마련해두지 않고 있다. 지난 14일 대구 북구에서 발생한 '포터 일렉트릭(EV)' 화재 사고 당시 진압을 담당한 대구 서부소방서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소방 인력들은 차량내 비치된 일반 차량 취급설명서를 참고해 화재를 진압했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인 안내 책자를 참고해 배터리 전원선을 자르고 주수(注水)를 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화재 진압 및 사후 조사, 아직까지 시스템 못 갖춰

상용화 초기 단계인 전기차의 경우 화재 대응·처리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포터 전기차 화재 사고의 경우 화염이 아닌 내부 연소로 인한 연기만이 발생한 것이 특징인데, 이에 소방 인력들은 배터리 전압 케이블을 차단하지 않은 상태로 물을 뿌리는 소화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이후 '펑'하는 내부 폭발음이 들리고 연기가 심해지자 이후 케이블을 절단했다. 전기차 및 배터리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까지 부재해 소방당국이 현장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자동차 전기트럭 포터EV
현대자동차 전기트럭 '포터2 EV'

또다른 소방당국 관계자는 화재 감식 당시를 설명하며 이번 화재는 특히 현대차 측의 보안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지난 코나 전기차 화재와는 달리 이번에는 현대자동차 측에서 통제를 강하게 했다"며 "사진도 찍지 못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화재 감식에는 현대자동차, SK이노베이션 등 30여명의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포터 전기차 탑재 배터리를 제조한 SK이노베이션 관계자들 역시 10여명 이상이 참석했다. 

국토부 산하 자동차안전연구원에 따르면 전기차 안전에만 특화된 정부 지침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전기차 관련 사고는 기존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혹은 자동차 관리법을 근거로 사고 조사 및 리콜이 결정된다. 자동차안전연구원 결함조사실 측은 "보통 안전에 관한 규칙을 세부적으로 특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자동차 관리법을 근거로 비정형적인 사고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사고' 강조해 온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시험대 오르나

한편 이번 포터 전기차 사고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가 SK이노베이션 제작 배터리라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그간 사고 없는 배터리를 강조하며 제품 경쟁력을 홍보해왔다. 아직까지 사고 원인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합동 감식 당시 배터리 팩 내부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당시 배터리 팩 안에 몇 번째 셀에서 화재가 발생했는지 모두 함께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 사고는 오전 9시30분 경 발생해 2시간 가량의 소방 진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1차 진화 작업을 마친 차량은 현대차 측에 인계돼 인근 서비스센터로 옮겨졌다. 이후 오후 7시 정도까지 추가 주수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완전 소화되었다. 서부소방서 측은 "2시간 주수는 이례적이고 특이한 케이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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