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수요 노렸던 부산 2공장, 너무 일렀던 투자
FC-CSP 강자 LG이노텍, FC-BGA 시행착오 불가피
삼성전기⋅LG이노텍, 글로벌 경쟁사와 큰 격차

최근 서버⋅PC용 반도체 패키지 기판으로 사용되는 FC-BGA(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지만, 국내 업계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대덕전자를 제외하면 삼성전기⋅LG이노텍 모두 추가 증설이나 사업진출 여부를 놓고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삼성전기는 과거 인텔과의 구원(舊怨) 탓에, LG이노텍은 다소 늦은 시장 진출 시점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FC-BGA는 1⋅2공장 체제로 생산하다 1공장은 MLCC 라인으로 전환하면서 2공장에서만 생산한다. /사진=삼성전기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FC-BGA는 1⋅2공장 체제로 생산하다 1공장은 MLCC 라인으로 전환하면서 2공장에서만 생산한다. /사진=삼성전기

삼성전기, 부산 2공장은 너무 이른 투자

 

삼성전기가 FC-BGA 신공장에 마지막으로 투자한 건 지난 2008년이다. 부산사업장에 3805억원을 투자해 3층 규모의 2공장을 건설했다. 삼성전기는 이미 같은 사업장 내 1공장과 대전사업장에서 월 1100만개 수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2공장 생산능력(월 1300만~1500만개)이 합쳐지면서 2400만~2600만개 생산능력을 완비했다. 

삼성전기가 투자한 3805억원은 이 회사가 단일제품에 투자한 최대 금액이며, 국내 기판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만큼 업황에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삼성전기는 세계 최대 CPU 공급사인 인텔 향(向) 수요를 보고 2공장 투자를 결정했다. 당시 삼성전기 기판사업부 임원이었던 인사는 KIPOST에 “인텔이 명시적으로 물량을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FC-BGA 투자를 독려했던 건 사실”이라며 “부산 2공장은 사실상 인텔 수요 하나만 보고 투자한 시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FC-BGA 업황은 삼성전기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았다. 부산 2공장이 건설된 2008년 이후로 삼성전기 기판사업부의 전체 가동률(HDI 등 포함)은 70%선을 맴돌았다. 특히 유일한 전략거래선인 인텔이 일본 이비덴⋅신코 등으로 수급을 다변화하면서 FC-BGA 공장 가동률은 이보다 더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BGA 기판. /사진=시에라서킷
BGA 기판. /사진=시에라서킷

이에 삼성전기는 앞서 투자했던 부산 1공장 FC-BGA 라인은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라인으로 전환했다. 단기에 FC-BGA 업황이 살아날 가능성이 낮다고 본 것이다. 한 반도체 후공정업체 임원은 “당시는 FC-BGA를 인텔만큼 대규모로 구매할 수 있는 회사가 없었다”며 “AMD⋅엔비디아 등이 주요 수요처로 부상한 건 최근의 얘기”라고 말했다.

삼성전기가 최근의 FC-BGA 활황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조심스런 이유는 당시 기억 때문이다. 특히 미래전략실에 이어 계열사 투자 여부를 저울질하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과거 전례를 들어 대규모 투자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인텔 외에도 AMD⋅엔비디아 등 수요가 다변화됐지만 이미 1공장을 MLCC로 전환한 마당에 또 새로 라인을 깔기는 부담스럽다. 

 

LG이노텍 “3년만 빨리 검토했어도…”

 

삼성전기가 과거 투자 실패 탓에 추가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면, LG이노텍은 다소 늦은 투자 시기 때문에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LG이노텍은 같은 플립칩용 기판이지만 주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사용하는 FC-CSP(플립칩-칩스케일패키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다만 FC-BGA와 FC-CSP는 업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FC-CSP는 경박단소하게 만드는 게 경쟁력이지만, FC-BGA는 크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최근 2.5D 반도체 패키지 상에서 FC-BGA 면적이 넓을수록 더 많은 종류의 반도체를 한 번에 패키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사 기반도 상이하다. LG이노텍이 잘하는 FC-CSP는 퀄컴 등 스마트폰용 반도체 업체가 고객이지만, FC-BGA는 인텔⋅AMD 등 PC⋅서버용 반도체 업계가 고객사다. 

따라서 LG이노텍이 FC-CSP 주요 공급사 중 하나라고 해도 FC-BGA 사업 진출과 함께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꾸준하게 FC-BGA 사업을 꾸준하게 유지해 온 삼성전기도 양산 가능한 FC-BGA는 50㎜ X 50㎜ 정도다. 최근에서야 60㎜ X 60㎜대 제품을 양산 테스트하고 있다. 요즘 하이엔드급 서버에는 60㎜ X 60㎜ 크기의 FC-BGA가 사용되며, 이 시장은 일본 이비덴과 대만 UMTC(유니마이크론테크놀러지) 등이 군림하고 있다. 

FC-CSP에 반도체를 패키지한 모습. /사진=SFA반도체
FC-CSP에 반도체를 패키지한 모습. /사진=SFA반도체

LG이노텍은 태스크포스를 꾸려 관련 사업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데, 이르면 하반기 결과가 나온다. 만약 투자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실제 양산은 내년 하반기가 된다. 그나마도 생산은 PC용 미들엔드 제품 공급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비덴⋅UMTC는 이미 80㎜ X 80㎜대 제품 테스트도 마친 상태로, 2023년 내 120㎜ X 120㎜대 제품을 내놓는다는 목표다(KIPOST 2021년 6월 18일자 <삼성전기, 65㎜ X 65㎜ FC-BGA 양산 테스트> 참조).

LG이노텍이 현재의 이비덴⋅UMTC 수준을 따라잡을 시기가 되면 이미 경쟁사들은 더 멀리 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LG이노텍이 안정적인 라지 바디(Large Body) 제품을 양산하려면 최소 3~4년은 필요한데, 그때는 또 FC-BGA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 지 단언할 수 없다. 현재는 시장이 극심한 공급난을 겪고 있지만, FC-BGA 산업 자체가 소수 과점력을 발휘할 만큼 플레이어 수가 적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부품업체 대표는 “LG이노텍은 경영진에서는 FC-BGA 사업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하나 실무진 차원에서는 많은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다”며 “사업진출이 3년만 빨랐어도 결단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