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개발하는데 3~4년, 최소 150억원 소요
신생업체 공급망 진입 엄두 못 내
도판트류 제외하고도 대부분 소수 업체가 아성 구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용 유기재료 시장에서 소수 업체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과점화가 굳어지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중소업체가 신제품을 개발해 공급사로 등극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특정 업체가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고 독자적 아성을 구축했다.

공급망이 그만큼 안정화됐다는 의미면서 패널 업체들이 선택할 여지가 줄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UDC 연구원들이 유기재료를 테스트하는 모습. /사진=UDC 홈페이지
UDC 연구원들이 유기재료를 테스트하는 모습. /사진=UDC 홈페이지

재료 개발에 최소 150억원...중소 업체 발 못 붙여

 

삼성디스플레이에 HTL(정공수송층)을 공급하는 덕산네오룩스는 지난 22일 코스닥 시장에서 시가총액 1조원을 돌파했다. 2014년 12월 덕산하이메탈 OLED 재료사업부에서 분사한지 불과 6년여 만이다. 분사 당시 시가총액은 3000억원 정도였다. 이제는 모태인 덕산하이메탈 시가총액(약 2700억원)의 네 배로 덩치가 커졌다.

덕산네오룩스의 사세 확장은 주력 품목인 HTL 메인 공급사 자리를 굳건히 지킨 덕분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새로운 레시피의 HTL(모델명 3336)을 개발해 삼성디스플레이에 독점 공급했다. 기존 제품(모델명 211)은 솔루스첨단소재와 공동 공급했으나 3336만큼은 덕산네오룩스 솔벤더 체제다. 

덕분에 3336은 211 대비 단가가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덕산네오룩스가 지난해 HTL로 거둔 매출만 1100억원을 상회한다.

솔루스첨단소재의 A-ETL 역시 삼성디스플레이 공급망에서 독점 입지를 굳혔다. A-ETL은 정공(Hole)이 발광층을 넘어서지 못하게 막아주는 소재다. 정공을 막아준다는 의미로 HBL(Hole Blocking Layer)로도 불린다. 

OLED용 유기재료. /사진=머크
OLED용 유기재료. /사진=머크

이처럼 적색⋅녹색 도판트(유니버설디스플레이)나 p도판트(노발레드)처럼 자연 독점일 수 밖에 없는 재료들을 제외하고서도 이제는 대부분의 재료가 소수 회사를 중심으로 한 과점 체제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 2015년 전후만 해도 글로벌 OLED 생산량이 많지 않았고, OLED 기술 역시 성숙하지 않았다. 삼성디스플레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OLED 라인은 파일럿 수준에 불과해 새로운 업체 재료를 평가하는데 부담도 적었다.

그러나 2018년 이후로는 신생 회사가 관련 시장에 진입하기가 극히 어려워졌다. 선발 업체들의 특허 장벽이 갈수록 촘촘해지고, OLED 패널 업체도 생산량이 늘면서 재료 교체에 보수적 분위기가 팽배해진 탓이다.

통상 OLED 재료 하나를 개발하는데는 최소 3~4년이 소요되는데, 개발비만 1년에 40억원 안팎이 들어간다. 기타 매출이 하나도 없다면 150억~200억원의 종잣돈이 있어야 재료 개발에 도전해 볼 체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나마도 패널 업체 진입에 실패하면, 이 돈은 허공으로 날릴 공산이 크다.

한 OLED 재료업체 대표는 “이제는 소재 업체들이 굳이 200억원을 들여서 새로 OLED 재료 시장에 뛰어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며 “OLED 재료 시장이 기존 업체들을 중심으로 과점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선발 업체 특허 탓에 신규 업체가 진입하고도 퇴출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에 캐핑레이어(CPL)를 공급했던 L사가 대표적이다. L사는 연초 CPL 공급에 성공했다가 1년도 안 돼 벤더사에서 탈락했다. 일본 업체와의 특허 분쟁 때문이다. L사 CPL 레시피는 고굴절 소재로 OLED 효율 제고 효과가 컸으나 선발 업체 특허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SK머티리얼즈는 일본 JNC와의 합작을 통해 OLED 재료 시장에 진출했다. /사진=SK머티리얼즈
SK머티리얼즈가 일본 JNC와의 합작을 통해 OLED 재료 시장에 진출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높은 특허 장벽 때문이다. /사진=SK머티리얼즈

국내 전자재료 업체 중 업력이 긴 동진쎄미켐 역시 수년째 OLED 재료 시장을 노크하고 있으나 양산 공급 실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동진쎄미켐 관계자는 “OLED 재료는 패널 업체와 긴밀하게 붙어서 개발하는데 개발 과정에서 특허 장벽을 높게 쳐두는 게 일반적”이라며 “후발 주자가 진입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이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존 회사 인수가 그나마 효과적...선택 폭 줄어들 것

 

지난해 SK머티리얼즈가 JNC와의 합작을 통해 OLED 재료 시장에 진입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JNC가 붕소 기반의 새로운 발광재료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기존 양산 이력도 갖고 있는 회사라는 점에서, 합작시 비교적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실제 SK와 JNC의 합작사 SK JNC는 LG디스플레이에 이어 삼성디스플레이와도 거래를 틀 예정이다(KIPOST 2021년 3월 10일자 <SK JNC, 삼성디스플레이와 거래 다시 튼다> 참조). 

이처럼 시장이 안정화되면 공급사 입장에서는 긍정적이나, OLED 패널 업체는 장기적으로 선택의 폭이 줄어들 수 있다. 재료 업체들의 ‘셀링 파워(Selling Power)’가 패널 업체의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디스플레이는 한 업체당 최다 공급제품 수를 2개로 제한하고 있다. 덕산네오룩스가 적색 프라임 재료를 공급하면서 적색 호스트 재료 공급권은 미국 다우케미칼에 빼앗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한 롤러블 OLED 패널. /사진=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피에이치엔테크, LT소재 등 국산 업체를 전략적으로 육성해 공급망을 다원화하고 있다. /사진=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전략적으로 국산 재료 업체를 발굴해 OLED 재료 공급사를 다원화하고 있다. 최근 기술특례상장에 성공한 피엔에이치테크는 LG디스플레이가 육성 중인 대표적인 OLED 재료 업체다. 현재 LG디스플레이에 고굴절 CPL을 공급하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 매출 비중만 60%에 달한다. 지난 2018년부터 LG디스플레이로부터 상생기술협력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는 대체로 독일 머크와 일본 이데미츠코산 의존도가 높다”며 “피엔에이치테크⋅LT소재 등 국산 업체를 키워야 소수 업체들의 셀링 파워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