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온, 알파웨이브세미와 600억원 규모 계약
합병 과정에서 제품군 통폐합하면 테이프아웃 안 갈수도
사피온이 리벨리온과의 합병을 결정함에 따라 이 회사가 개발해 온 차세대 NPU(신경망처리장치) 개발 프로젝트가 유지될 지 관심이 모인다. 사피온의 한국법인인 사피온코리아는 올해 초 TSMC VCA(밸류체인얼라이언스) 중 한 곳인 알파웨이브세미와 디자인서비스 용역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사피온⋅리벨리온이 합병하면 제품군을 통합하고 ‘선택과 집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프로젝트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사피온-알파웨이브, 600억원 규모 용역 계약
올해 2월 사피온코리아는 영국 디자인하우스 알파웨이브세미와 X430 개발을 위한 디자인 서비스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596억원으로, 계약에 따라 알파웨이브세미는 사피온의 X430 후반부 설계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알파웨이브세미는 TSMC VCA 소속 디자인하우스다. 팹리스가 개발한 칩 설계도를 TSMC 공정에 맞게 변환하는 후반부 설계 작업을 맡는다.
사피온코리아는 기존 ‘X330’ 후반부 설계는 국내 디자인하우스인 에이직랜드에 일감을 맡겼다가 X430으로 넘어가면서는 알파웨이브세미로 협력업체를 바꿨다.
X430은 TSMC의 2.5D 패키지 기술인 CoWoS(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 기술이 적용되며, 사피온 제품으로는 처음 HBM(고대역폭메모리)가 처음 탑재된다. 사피온은 종전 X330까지는 HBM이 아닌 GDDR6 메모리를 사용했다.
다만 X430이 디자인 작업을 마치고 팹에서의 생산 직전 단계를 의미하는 ‘테이프아웃(Tape out)’까지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리벨리온과의 합병 작업을 앞두고 포트폴리오 통폐합이 이뤄진다면 중복되는 제품을 굳이 실제 생산까지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리벨리온은 이미 삼성전자 5nm 공정을 통해 서버용 NPU ‘아톰'을 양산한 바 있다.
20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자금조달을 중단한 사피온으로서는 600억원에 이르는 용역 금액이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사피온코리아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16억원이다.
최근 SK그룹 전반적으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고, 비주력 사업에 대한 정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회사로부터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스타트업인 사피온코리아는 지난해 기준으로 260억원 정도의 적자 상태다. 영업 현금흐름을 통해 개발비를 뒷받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X430의 테이프아웃은 연말로 예정돼 있는데, 알파웨이브세미와의 협의를 거쳐 프로젝트를 중단하면 자금 지출을 절감할 수 있다. 디자인하우스의 용역 계약은 프로젝트 진도를 나아가면서 단계적으로 자금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두 회사의 합병 명분은 인적⋅물적 자원을 하나로 합쳐 세계적인 NPU 회사로서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며 “두 회사 제품을 모두 유지해 자원이 분산된다면 굳이 합병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나 합병 후 경영의 키는 리벨리온 경영진이 쥐게 된다는 점에서 기존 사피온측 프로젝트들은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미 류수정 사피온코리아 대표를 비롯해 주요 경영진들은 회사측에 사의를 밝히고, 일부는 회사는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반도체 산업 관계자는 “SK그룹이 NPU 제조 사업에 의지를 갖고 있다면 경영권을 내주는 전제의 합병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며 “사피온의 기존 프로젝트들은 동력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