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 착공, 양산은 2024년 하반기
애플 빠진 엔비디아⋅퀄컴⋅AMD 물량 확보 진력해야
TSMC는 애플 물량 깔고 유리한 고지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선단 파운드리 라인 부지로 확정했다. 테일러시 공장은 지척에 위치한 오스틴 공장과 함께 미국 내 팹리스 업체들을 위한 파운드리 라인으로 활용된다.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사진 왼쪽),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투자 부지 발표 후 악수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사진 왼쪽),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투자 부지 발표 후 악수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23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 존 코닌 상원의원 등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테일러시를 신규 파운드리 공장 부지로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테일러시에 지을 공장에는 인프라와 내부 설비 등을 합쳐 총 170억달러(약 20조원)가 투입된다. 이는 삼성전자가 미국에 투자한 금액중 최대 규모다. 테일러시는 향후 20년간 삼성전자에 10억달러(약 1조1900억원) 상당의 세금 감면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이는 기존 공장이 있는 오스틴 대비 30% 많다.

신공장은 내년 상반기 착공에 들어가 오는 2024년 하반기 양산 가동된다. 삼성전자는 테일러 공장에 어떤 공장을 어떤 규모로 지을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업계는 투자 금액을 고려할 때 7nm(나노미터) 이하 공정으로 300㎜ 웨이퍼 월 10만장(2만5000장 X 4) 규모로 예상한다. 

웨이퍼 투입량만 놓고 보면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S1 라인이나 오스틴 공장과 비슷하다. 다만 테일러시 공장은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가 들어오는 등 미세 공정 수준이 높은 제품들이 생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스틴 공장은 EUV가 필요 없는 14nm 공정이 주력이다. S1 역시 10nm 이전의 구세대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삼성전자 화성 캠퍼스 EUV 전용라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 캠퍼스 EUV 전용라인 전경.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측은 “이번 신규 라인에는 첨단 파운드리 공정이 적용될 예정으로 5G, HPC(High Performance Computing), AI(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가 생산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TSMC와 고객사 유치 경쟁

 

삼성전자에 앞서 TSMC는 일찌감치 애리조나주를 첨단 파운드리 공장 후보지로 확정했다.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이며,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2024년 양산에 들어간다. 

따라서 투자 결정이 확정된 지금부터 두 회사 사이의 치열한 물량 확보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현재는 미세 공정 수준을 막론하고 모든 파운드리 공장이 풀캐파 수준으로 가동되고 있지만, 2024년 이후의 시황은 예단하기 어렵다. 

특히나 이번에 삼성전자가 투자하는 7nm 이하 선단공정은 고객사 후보가 애플⋅엔비디아⋅퀄컴⋅AMD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가장 큰 고객사 후보인 애플은 전략적 이유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IT 기기 수요가 큰 폭 증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파운드리 산업이 활황인 적이 없다. 오히려 팹리스 고객사 물량을 유치해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기에 바빴다. 이미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의 미국 내 신규 공장 설립설이 나왔음에도 1년 이상 결단이 미뤄진 것도 미래 시황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애플 '아이폰6S'용 AP 'A9'. A9 이후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애플 협력사 명단에서 빠졌다. /사진=애플
애플 '아이폰6S'용 AP 'A9'. A9 이후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애플 협력사 명단에서 빠졌다. /사진=애플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출신의 한 인사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2015년 애플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공급사에서 탈락했던 경험이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며 “이후 중요한 순간마다 TSMC 대비 반박자 느린 의사결정을 해 왔다”고 말했다.

애플은 지난 2015년 출시한 ‘아이폰6S’ 시리즈에 탑재된 A9 위탁생산은 삼성전자⋅TSMC 양측에 맡겨왔으나, 이후로는 오직 TSMC 파운드리만을 이용하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14nm 공정이 TSMC의 16nm 대비 성능이 떨어지고, TSMC만 첨단 패키지 공정인 FO-WLP(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를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부문 경쟁사라는 측면도 작용한다. 

애플이 급작스레 고객사 명단에서 빠지자 삼성전자 비메모리 부문은 이듬해 1조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고, 당시 파운드리 사업부 수뇌가 대거 물갈이됐다.

앞으로도 애플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고객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없다면 엔비디아⋅퀄컴⋅AMD 등 3사 물량을 최대한 확보할 수 밖에 없다. 이와 달리 TSMC는 애플 AP 물량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는 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체 임원은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파운드리 사업이 시황을 타지 않는다고 하지만, 특정 고객사에 물량을 크게 의존한다는 게 큰 리스크”라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진짜 고민은 이제부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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