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점 온 반도체 소재 혁신
"교수진 90% 이상은 업계에 관심 없어"

급격히 발전하는 반도체 기술에도 불구하고 성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 소재에 대한 국내 연구개발 환경은 녹록치 않다. 이 분야 전통 강호인 일본 소재 기업들은 여전히 국내 반도체 생산에 핵심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고 미국·영국 등에서는 각종 스타트업들이 잇따라 신소재들을 선보이고 있다. 

EUV(극자외선)용 소재 등 진화하는 글로벌 소재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국내 연구개발 환경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이점 온 반도체 소재 혁신...삼성전자 "소재가 반도체 좌지우지" 

EUV 공정이 적용된 반도체 칩. /사진=삼성전자

소재가 반도체 기술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지는 오래다. 지난 5월 'SMC(Strategic Material Conference) KOREA 2021'에서 김윤호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소재기술그룹장은 "소재가 반도체 업체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움직임은 2010년 이미 시작됐다"고 말하며 미세 공정에서 소재가 갖는 중요도를 강조했다. 최근 인텔·TSMC·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EUV 광원을 이용한 3nm(나노미터) 초미세 공정 경쟁에 돌입했다. 

미국 인프리아(Inpria)는 EUV용 포토레지스트(PR) 개발 스타트업이다. 현재 양산에 주로 적용되는 폴리머 기반 PR이 아닌 메탈 옥사이드 기반의 무기물 PR을 생산하고 있다. 향후 미세공정이 더욱 진화할 경우 공정상 성능이 더 우수한 인프리아의 제품 채택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부터 투자를 진행해 온 삼성전자 역시 공급선 다변화를 위해 연내 인프리아의 제품을 적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프리아는 2007년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분사한 업체다. 학내 벤처로 시작해 오랜 기간 무기물 기반 PR을 연구했다. 국내 EUV 연구 권위자인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인프리아의 포토레지스트는 나노 입자를 넣어 해상도를 높이고 식각 특성을 높였다"며 "지금 당장 기존 일본 제품들을 대체한다기보다 향후 선폭이 더욱 좁아지게 될 경우 이 회사의 제품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3nm 이하 공정 본격화와 함께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수진 90% 이상은 업계 요구사항 알려하지도 않아" 

인프리아의 EUV용 포토레지스트 제품. /사진=인프리아
인프리아의 EUV용 포토레지스트 제품. /사진=인프리아

인프리아 뿐 아니라 최근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각광받는 EUV 소재 관련 기업 중에는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스핀오프된 이레지스터블 머티리얼(Irresistable Materials)도 있다. 2010년 설립된 이 업체 역시 EUV용 포토레지스트와 하드마스크 소재를 생산한다. 아직까지 인프리아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으나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두 업체 모두 대학에서 성장을 시작해 업계에서 주목할 만한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업계와 이론적 연구에 집중하는 학계가 양분화된 국내와는 사정이 다르다. 이병훈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또한 나노 연구를 많이 하고 있는 편에 속하지만 주로 학술적 이야기에 집중돼 있다"며 "산학과제들 역시 인력 양성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큰 원인은 연구개발 당사자인 교수진들이 반도체 산업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대부분 대학의 교수평가 시스템은 논문 등을 포함한 연구 실적에 치중돼 있다. 대개 자신이 저술한 논문이 어느 정도 인용되었는지의 여부와 저널 영향도를 의미하는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 등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는다. 산학협력이 비교적 활발한 서울대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학과장은 "산학협력은 주로 응용 학문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반면 연구 실적이 높게 평가되는 것은 주로 순수 학문 쪽"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소재 역시 순수학문 쪽에 가까워 학계 연구가 이론에 치중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대표 공과대학인 한양대학교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도체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마지막 연구개발 세대가 60대 중후반에 달할 정도다. 최근 몇 년간 EUV 시장 주목으로 인해 그나마 분위기가 나아졌으나 지난 15~20년 가량 연구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안 교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국내 소재 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년간 글로벌 화학 업체들이 해당 시장을 독점하고 정작 국산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하이엔드 제품을 제외한 소재들이 주로 대체된 까닭이다. 


산학 연계 부서 따로 존재하는 글로벌 기업들... 교수진과 소통 가능한 인력 있어야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현장. /사진=삼성전자

인텔의 경우 산학 협력에 특화된 부서가 별도로 존재한다. 학교에서 개발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 발견될 경우 집중 지원을 통해 최대한 실제 적용을 추진하기 위함이다. 실제 인프리아가 시작된 오리건대 역시 인텔의 근거지에 위치해 있다.  

미국 현지에서 산학 협력 관련 시스템을 연구한 이병훈 교수는 "국내에서는 현장 엔지니어들은 학교랑 어떻게 이야기하는지조차 모른다"며 "글로벌 업체들처럼 업계에 꼭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사용이 가능하도록 학계 대응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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