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C⋅FCCL 사업에서 뼈아픈 실패

최근 전자재료 시장에서 두 번 고배를 마신 SK이노베이션이 폴더블 스마트폰용 투명 폴리이미드(PI) 사업에 도전하면서 업계 관심을 끌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앞서 LCD용 트리아세틸셀룰로오스(TAC)와 연성동박적층판(FCCL) 라인에 투자했다가 관련 사업에서 쫓기듯 철수한 바 있다.

그나마 FCCL 사업은 매각에는 성공했으나 TAC 라인은 매각도 하지 못하고 손실처리 수순을 밟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한 투명 PI.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한 투명 PI. /SK이노베이션 제공

 

시장 트렌드 못 읽었던 TAC 투자

 

SK이노베이션의 투명 PI 공장은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용 분리막 공장 부지를 활용한다. 우선 충북 증평 공장에 400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짓고, 파일럿 라인을 올해 초 들여 놓을 예정이다. 본격적인 양산 장비는 올해 연말까지 갖춘다. SK이노베이션은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북미 소비자가전쇼(CES)에 투명 PI 샘플 제품을 전시한다.

투명 PI의 목표 시장은 물론 폴더블 스마트폰용 커버 윈도다. 투명 PI의 브랜드명도 ‘플렉서블 커버윈도(FCW)로 정했다.

정유⋅화학 사업이 주력인 SK이노베이션이 전자재료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다만 분리막을 제외하면 전자재료 시장에서의 앞선 시도들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TAC과 FCCL이다.

TAC은 LCD용 광학필름의 일종인 편광판을 만드는데 쓰이는 소재다. LCD 모듈 안에는 2장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안에는 1장씩 편광판이 필수로 포함된다. SK이노베이션이 TAC 양산을 시작한 2012년 전까지 TAC 시장은 일본 후지필름과 코니카가 과점 체제를 구축했다. 수급도 원활하지 않고 가격도 비쌌다.

문제는 2012년을 전후로 LCD 시장이 변화하면서 TAC 시장의 경쟁양상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LCD용 편광판. TAC이 사용된다. /LG디스플레이 제공
LCD용 편광판. TAC이 사용된다. /LG디스플레이 제공

우선 LCD 시장이 공급 과잉 국면에 접어들면서 TAC 물량 역시 남아돌기 시작했다. 후발주자로서 원가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에 LCD 업체들이 TAC 대신 아크릴로 만든 편광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결정타가 됐다.

TAC은 습기와 온도변화에 민감한데, 아크릴은 주변 환경 변화에 강했다. LCD가 배에 실려 TV 세트 공장으로 이송되는 한달여간 TAC이 습기에 노출되면서 패널이 변형되기 일쑤였다. 32인치 등 패널 사이즈가 작을때는 크게 상관 없지만, 55인치⋅65인치 등으로 패널 사이즈가 커지면 TAC이 다량의 수분을 흡수⋅배출하면서 패널까지 변형됐다.

지난해 기준 패널 업체들의 비(非) TAC 계열 편광판 사용 비중은 30% 안팎으로 추정된다. 특히 국내 패널 업체인 삼성⋅LG디스플레이의 비 TAC 편광판 도입 비중은 60%를 넘는다. 결국 2016년 SK이노베이션의 TAC 사업은 매각 절차에 들어갔으나, 끝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청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FCCL 사업 역시  SK이노베이션이 전자재료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사례다. FCCL은 연성인쇄회로기판(FPCB)용 기초소재다. 유색 PI 양면에 동박을 얇게 합착해서 생산한다. FCCL에 각종 패턴을 그리고 구멍을 뚫어 FPCB를 완성한다.

SK이노베이션의 FCCL 사업 역시 지난해 사모펀드(PEF)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됐다. 2011년 관련 사업에 진출한 이래 연 900만㎡의 생산능력을 갖췄으나, 역시 선두 업체와의 양산 경쟁에서 밀렸다. SK이노베이션이 FCCL 사업에 진출하기 이전에 이미 두산전자·LS엠트론·LG화학·이녹스 등이 경쟁적으로 투자하면서 공급 과잉 체제로 접어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과점 시장인 정유 산업과 달리 전자재료 사업은 한 순간이라도 시장의 흐름을 놓치면 경쟁에서 낙오한다”며 “SK이노베이션이 전자재료 산업의 빠른 속도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FCCL의 구조. /SK이노베이션 제공
FCCL의 구조. /SK이노베이션 제공

 

투명 PI 사업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이 투명 PI 연구개발(R&D) 추진하면서도 결국에는 SKC로 관련 사업을 일원화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유색 PI이기는 하지만 SKC가 그동안 PI 제조 경험을 축적해왔고, 투명 PI 생산을 위한 코팅 기술 역시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전자재료 사업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광학필름이나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노하우도 SKC 대비 일천하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이 투명 PI 사업을 독자적으로 투자하기로 하면서 업계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비록 FCCL을 통해 스마트폰 산업을, TAC을 통해 광학필름 제조 기술을 학습했다 해도 투명 PI 사업과는 결이 다르다. 더욱이 현재는 FCCL⋅TAC 모두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

한 필름 업체 임원은 “유색 PI를 다뤘던 경험이 많다고 해도 투명 PI 생산은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SK이노베이션은 사업 초기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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