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예정이던 신코 지분 공개매수 시작도 못해
미국의 중국 때리기 돕는 일본, 정치적으로도 불리

일본 정부가 반도체 패키지 기판 업체 신코전기공업을 국유화 하려는 움직임에 중국 정부의 승인 여부가 변수로 떠올랐다. 신코 인수 컨소시엄에 DNP(다이니폰프린팅)⋅미쓰이화학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경쟁당국이 민감하게 볼 여지가 적지 않아서다. 

DNP는 반도체용 포토마스크 분야에서, 미쓰이화학은 반도체 기판용 초극박 시장에서 각각 과점⋅독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용 패키지 기판. /사진=신코
반도체용 패키지 기판. /사진=신코

 

JICC-04, 신코 지분 공개매수 내년으로 연기

 

지난해 12월 JIC(일본투자공사)⋅DNP⋅미쓰이화학은 신코 공동 인수 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 8월 신코 지분 공개매수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3사 컨소시엄(JICC-04)이 확보한 신코 지분은 후지쯔로부터 인수할 50.02%다. 나머지 주식 49.98%는 도쿄증시에 상장돼 있는데 JICC-04는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100%를 확보하기로 했다. 이후 신코는 도쿄증시에서 자진 상장 폐지된다. 

그러나 JICC-04는 9월 말로 향해가는 현 시점까지 신코에 대한 공개매수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후지쯔측은 최근 공시를 통해 “중국⋅베트남 경쟁 당국 승인이 지연되면서 공개매수 절차가 미뤄지고 있다"며 “내년 1월 말쯤 관련 절차를 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JICC-04의 신코 인수 완료와 상장 폐지 절차는 빨라도 내년 상반기로 순연된다.

후지쯔가 말하는 경쟁 당국 승인은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에 해당하는 절차를 뜻한다. JICC-04에는 DNP 지분 15%와 미쓰이화학의 지분 5%도 들어와 있다. JICC-4가 신코 지분 100%를 확보하게 되면 DNP⋅미쓰이화학 역시 주주로서 신코에 대한 지배력을 갖게 된다. 

만약 중국⋅베트남 경쟁 당국 승인이 더 지연되거나 끝내 승인이 나지 않는다면 이 부분에서 문제가 제기됐을 가능성이 크다. DNP는 미국 포토닉스, 일본 도판홀딩스와 더불어 포토마스크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과점사업자다. 다만 포토마스크는 신코의 패키지 기판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는데 최근 DNP가 TGV(글래스관통전극)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글래스 코어 기판의 수직면. 가운데 절구 형태의 원통이 TGV다. /사진=LPKF
글래스 코어 기판의 수직면. 가운데 절구 형태의 원통이 TGV다. /사진=LPKF

TGV는 반도체 업계가 차세대 기판 솔루션으로 꼽고 있는 GCS(글래스 코어기판)를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DNP는 무기물 식각 기술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코의 패키지 기판 사업과 높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신코와 미쓰이화학과의 연결고리는 더 직접적이다. 미쓰이화학은 반도체 기판에서 미세 회로를 구현하는데 필수적으로 쓰이는 초극박 시장을 95% 이상 독점하고 있다. 초극박은 두께 1~2μm(마이크로미터) 정도로 얇은 동박이다. 현재 반도체 패키지 기판의 회로 빌드업시 50피치(L/S 기준 25/25) 이하는 ‘mSAP’ 공정이 사용되는데, 초극박은 mSAP 구현에 필수다. 

일본 이비덴, 대만 UMTC와 함께 하이엔드 패키지 기판 시장 선두권인 신코가 DNP⋅미쓰이화학과 지분으로 엮이면 향후 독과점에 따른 지배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이는 앞서 JIC가 국유화한 PR(포토레지스트) 회사 JSR과의 사례와도 다르다. JSR은 JIC가 타 기업과 연합하지 않고 단독으로 지분 100%를 인수했다. 따라서 기업결합에 따른 경쟁 제한 논란에서 자유로웠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 돕는 일본, 정치적으로도 불리

 

더욱이 일본은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기술 제재 국면에서 일방적으로 미국 편을 들어왔다. 중국 정부로서는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 산업 육성 움직임에 찬성해 줄 유인이 크게 떨어진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7월 첨단 반도체 분야 23개 품목을 수출규제 대상에 추가한 ‘외환 및 외국 무역법’ 성령(시행령)을 시행했다. 

도쿄일렉트론 평택기술지원센터. /사진=도쿄일렉트론
도쿄일렉트론 평택기술지원센터. /사진=도쿄일렉트론

시행령에 따른 수출규제 대상은 반도체 회로 패턴을 새기는데 사용하는 노광장비 및 검사에 사용하는 장비 등 23개 품목이다. 특히 14nm(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핵심 장비들은 대부분 규제 품목에 포함됐다. 시행령 개정에 따라 한국·미국과 같은 우방국 등 42개 국가·지역을 제외하고는 품목마다 수출할 때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의 경우 절차가 상당히 길어지거나 수출이 아예 불가능해졌다.

미국에 맞서 반도체 기술 자립을 추진하던 중국 입장에서는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불의의 일격이 됐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중국 정부는 JIC 컨소시엄의 신코 인수를 빌미로 다른 딜을 얻어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를 허용해 줄 이유가 전혀 없다”며 “JIC가 JSR을 통해 반도체 소재 업체들을 규합하려는 노력도 모두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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