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 2013년 HBM 도입 추진하며 SK하이닉스 낙점
HBM3만 놓고 보면 SK하이닉스 점유율 95%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HBM(고대역메모리) 시장점유율은 40%로, SK하이닉스(50%)에 10% 포인트 처진다. 전체 D램 시장에서 ‘더블스코어’ 가까운 차이로 앞서가는 것에 비하면 HBM 분야에서의 상대적 부진이 도드라진다. 

이는 과거 AMD가 자사 외장 GPU(그래픽처리장치) 성능 향상을 위해 SK하이닉스와 처음으로 HBM 도입을 추진하면서 SK하이닉스가 먼저 경험치를 쌓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HBM3 D램.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HBM3 D램. /사진=SK하이닉스

 

HBM, 시작은 AMD-SK하이닉스

 

현재 HBM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회사는 미국 엔비디아다. 그러나 이를 시장에 먼저 도입한 곳은 AMD다. AMD는 지난 2015년 출시된 게임용 외장 GPU ‘피지(Fiji)’를 출시하기에 앞서 HBM 양산 도입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를 위해 D램 회사들과 2013년부터 접촉했는데, 최종 파트너로 선정된 회사가 SK하이닉스다. 내부적으로 HBM 도입 필요성을 판단한 건 그보다 5년 앞선 2008년쯤으로 전해진다. 

당시 AMD는 게임용 GPU 성능에 맞추기 위해 메모리 대역폭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면 GPU가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하게 되고, 이는 GPU 성능 저하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찾아낸 기술이 HBM이었다. AMD는 실제 2015년 SK하이닉스가 공급한 HBM(1세대)에 자사 GPU를 붙여 피지 시리즈를 출시했다. 2.5D 패키지는 미국 OSAT(외주패키지⋅테스트) 앰코테크놀러지가 맡았다. 덕분에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마이크론 대비 훨씬 이른 시점에 HBM 시장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  

AMD는 2017년에 출시한’베가’ 시리즈 역시 SK하이닉스의 HBM2를 적용해 출시하면서 HBM 리더십을 이어갔다. 

AMD가 지난 2015년 선보인 GPU '피지'. 처음으로 HBM이 적용됐다. /사진=AMD
AMD가 지난 2015년 선보인 GPU '피지'. 처음으로 HBM이 적용됐다. /사진=AMD

다만 게이밍 PC용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HBM의 파괴력은 최근의 AI 서버 시장에서만큼 강력하지 않았다. HBM 도입에 따른 GPU 가격 상승분 대비 성능 개선폭이 크지 않았던 탓이다. 이에 AMD는 베가 이후 시리즈부터는 HBM을 버리고 비교적 저렴한 GDDR6로 메모리 스펙을 낮췄다. 대신 GPU 캐시메모리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GDDR6의 낮은 대역폭 한계를 극복한다.

이후 지금까지 AMD는 물론 엔비디아 모두 게이밍 PC용 그래픽카드에는 모두 GDDR6를 쓰고 있다. 

 

HBM, 기술 과실은 엔비디아-SK하이닉스

 

공교롭게도 AMD가 앞서 양산 검증해 준 HBM의 과실은 경쟁사 엔비디아가 수확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2016년 서버용 GPU ‘P100’을 내놓으며 처음 HBM을 자사 제품에 적용했다. 엔비디아는 PC용 그래픽카드는 건너 뛰고, 서버 시장부터 HBM을 데뷔시켰다. 

최근 엔비디아가 ‘A100’⋅’H100’ 등 소위 AI 서버용 GPU에 HBM을 대량으로 구매해 탑재할 수 있는 건, AMD와 SK하이닉스가 제품 컨셉트를 고안하고 양산 검증한 덕분이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AMD가 HBM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기술과 인프라들을 경쟁사 엔비디아가 가장 활발하게 쓰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라며 “HBM을 PC 제품보다 서버 시장부터 적용한 게 주요했다”고 설명했다.

HBM(왼쪽 파란색 블럭)이 적용된 GPU 모듈 단면도. FC-BGA를 이용해 GPU와 2.5D 방식으로 패키지된다.
HBM(왼쪽 파란색 블럭)이 적용된 GPU 모듈 단면도. FC-BGA를 이용해 GPU와 2.5D 방식으로 패키지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 고객사가 바뀌기는 했지만 SK하이닉스로서는 HBM 시장에서 만큼은 삼성전자에 앞서가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시장조사업체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가장 최신 버전인 HBM3 공급량만 놓고보면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95%에 이른다. 사실상 시장에서 독점력을 구가하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6월 업계서 처음 HBM3를 양산했다. 상용화된 HBM3는 최고 8단 적층 제품인데, 곧 12단 적층 제품까지 양산할 전망이다. 역시 업계 최초다. AMD의 AI 서버용 최신 GPU ‘MI300X’와 엔비디아 H100 신규 버전에 채택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역시 HBM 생산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지만,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만큼 기술 리더십까지 되찾지는 못했다. 최근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이 “삼성전자의 HBM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다”고 밝힌 건, HBM2 등 이전 세대 제품까지 합쳐서다. 아직 HBM3 분야에서 SK하이닉스와의 격차는 아득하다. 삼성전자의 HBM3 본격 양산은 올해 하반기 중이다. 

/사진=마이크론
/사진=마이크론

3위 마이크론은 HBM 경쟁에서 더욱 헤매고 있다. 마이크론은 원래 HMC(Hybrid Memory Cube)라는 독자 3D 패키지 D램 규격을 개발해오다 2018년 들어서야 HBM으로 개발 방향을 선회했다. CPU 및 GPU 제조사들이 HBM을 3D 패키지 D램 표준으로 각각 채택하자 독자 규격으로는 시장을 창출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전체 HBM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10% 남짓인 것으로 추정된다. 20%를 상회하는 마이크론의 전체 D램 시장점유율과는 격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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