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이달 중 결정...2천~3천억원 투자 전망
병행 개발하던 FO-PLP는 힘 잃을듯

삼성전자가 그동안 투 트랙으로 검토해오던 첨단 패키지 기술 중 FO-WLP(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에 힘을 싣는 방안을 놓고 막판 고심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대만 TSMC의 InFO(Integrated Fan Out) 기술에 대항하기 위해 FO-WLP와 FO-PLP(팬아웃-패널레벨패키지) 기술을 병행 개발해왔다. 

이번에 FO-WLP에 대규모 투자하면 향후 첨단 패키지 기술 방향성이 FO-PLP 보다는 FO-WLP로 쏠릴 전망이다.

애플 A15 칩이 아이폰 보드 위에 실장된 모습. 애플 AP는 TSMC의 FO-WLP 기술인 InFO로 패키지된다. /사진=애플
애플 A15 칩이 아이폰 보드 위에 실장된 모습. 애플 AP는 TSMC의 FO-WLP 기술인 InFO로 패키지된다. /사진=애플

FO-WLP에 2000억~3000억원 투자 전망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등 하이엔드 반도체용 후공정을 위해 FO-WLP 양산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이르면 이달 중 의사결정이 날 예정이며, 투자가 확정되면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사업장 내 LCD 공장 중 하나의 공간을 할애해 관련 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설비투자 금액은 2000억~3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달 중 투자가 결정되면 장비 발주와 반입 시간 등을 감안해 내년 하반기 중에 양산에 들어갈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FO-WLP 투자 여부를 지난해 하반기부터 검토해왔는데, 최근 투자를 집행하는 것으로 기류가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FO-WLP에 투자하기로 사실상 확정했다”며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의 최종 결단만 남았다”고 말했다. 

FO-WLP는 표준 WLP처럼 패키지 사이즈와 두께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도 신호가 오가는 I/O(Input/Output)를 칩 바깥으로 확정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빠른 전송속도 확보는 물론, 기존 표준화된 볼 레이아웃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반도체 패키지를 위해 사용되는 별도의 PCB(인쇄회로기판)가 필요 없기에 원가도 절감된다. 

FO-WLP는 재배선층(RDL)이 PCB 기판을 대신해 생산원가가 싸다. I/O를 칩 바깥으로 배치할 수 있어 데이터 전송속도 역시 빠르다. /자료=네패스
FO-WLP는 재배선층(RDL)이 PCB 기판을 대신해 생산원가가 싸다. I/O를 칩 바깥으로 배치할 수 있어 데이터 전송속도 역시 빠르다. /자료=네패스

먼저 웨이퍼를 칩 크기로 잘라낸 뒤에 패키징 한다는 점에서 확인된 양품칩(Known Good Die)만 패키징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한 PCB 소재 업체 임원은 “FO-WLP는 일부 설비 투자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별도 PCB 없이 후공정을 진행해 오히려 생산원가가 싸다”고 설명했다. 

 

FO-PLP는 힘 잃을듯

 

TSMC는 이미 지난 2016년 FO-WLP 기술인 InFO 양산 체제를 갖췄다. 덕분에 이전까지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공동 수주했던 애플 AP 물량은 2016년부터 TSMC 독점 공급 체제로 전환됐다. 

삼성전자는 TSMC와 동일한 FO-WLP 대신 FO-PLP 기술 개발로 맞섰다. FO-WLP와 FO-PLP는 반도체 완제품 측면에서 보면 특성은 동일하다. 대신 공정을 진행하는 지지기판(몰딩)이 FO-WLP는 12인치 웨이퍼 크기, FO-PLP는 이보다 큰 사각형 패널을 이용한다. 넓은 사각형 패널에서 패키지를 진행하는 만큼, 한번에 더 많은 양의 패키지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L/S(라인앤드스페이스)와 수율이 안정적으로 확보됐을 때 가능한 얘기다. L/S는 후공정 정밀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첨단 반도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L/S가 2μm(마이크로미터) 정도는 확보되어야 한다. 삼성전기가 삼성전자에 FO-PLP 사업을 넘기던 지난 2019년을 기준으로 L/S는 아직 10μm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L/S를 줄이거나 생산성 확보를 위해 기판 사이즈를 늘리면 역으로 수율은 떨어지기에 기술개발이 극히 까다롭다. 기존 웨이퍼를 기반으로 한 장비들을 활용할 수 있는 FO-WLP과 달리 FO-PLP는 삼성전자가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기술인 탓에 후방 생태계 확보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FO-PLP 공정을 진행하는 모습. 사각형 기판 위에서 공정이 이뤄진다. /사진=네패스
FO-PLP 공정을 진행하는 모습. 사각형 기판 위에서 공정이 이뤄진다. /사진=네패스

이번에 삼성전자가 FO-WLP에 대규모 투자하면 FO-PLP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리거나 사장될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 두 기술 모두에 투자하기에는 삼성전자 내부 인력 운용 면에서 부치기 때문이다. FO-PLP 초창기 삼성전기에서 개발과 사업화를 담당했던 강사윤 부사장이나 조태제 전무 등도 이제는 모두 회사를 떠났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 대표는 “FO-PLP는 이론적으로만 우월한 기술”이라며 “L/S와 수율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생산성 지표는 아무 의미가 없다. FO-PLP는 장기적으로 사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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