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일감 줄면서 VDP 낙수효과도 줄어
DSP도 양산 매출에 타격

반도체 업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한때 극심한 인력 부족 문제를 토로했던 디자인하우스들이 이제는 인력이 남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설계를 용역하는 VDP(Virtual Design Partner) 전문업체들은 일감이 크게 줄면서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EUV 공정이 적용된 반도체 칩. /사진=삼성전자
EUV 공정이 적용된 반도체 칩. /사진=삼성전자

 

일감 떨어진 VDP 디자인하우스들

 

최근 3~4년간 디자인하우스 업계서 벌어진 M&A(인수합병)는 국내 인력풀이 한정된 상황에서 단기간에 숙련된 인재를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세미파이브의 새솔반도체⋅하나텍 인수, 에이디테크놀로지의 SNST⋅아르고⋅파인스 인수 등이 엔지니어 확보의 일환이었다. 

5nm(나노미터) 칩 설계 프로젝트를 수주하려면 최소 100여명의 설계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덩치 키우기’는 사업을 고도화하는 필수 작업으로 여겨졌다. 실제 세미파이브⋅에이디테크놀로지 등 선두권 디자인하우스들은 M&A를 통해 인력 규모를 수백명 수준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반도체를 포함한 IT 수요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고객사인 팹리스들의 설계 수요가 줄면서 디자인하우스들의 일감도 감소한 것이다. 한 삼성전자 소속 디자인하우스 임원은 “작년 하반기부터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반도체 수요까지 줄어든 탓에 VDP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DSP 소속 디자인하우스들./자료=삼성전자
DSP 소속 디자인하우스들./자료=삼성전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소속 디자인하우스의 일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디자인하우스가 직접 팹리스 프로젝트를 수주해 파운드리와 연결해주는 DSP(Design Solution Partner) 매출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디자인하우스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외에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수주한 프로젝트의 후반부 설계를 용역하는 VDP 업무도 있다. 

디자인하우스 관점에서 보면 DSP는 고객사가 팹리스며, VDP는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고객사다. DSP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와 연결된 RBS(원격업무시스템)를 사내에 갖춘 반면, VDP는 삼성전자가 용인시 기흥구 ‘테라타워’에 마련한 공용 RBS를 이용한다.

현재 삼성전자에 소속된 DSP는 9개 뿐이다. 나머지 디자인하우스들은 모두 VDP다. VDP 업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미처 후반부 설계를 감당하지 못할 때 일부 블록에 한해 용역을 맡기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VDP 매출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얼마나 많은 파운드리로부터 외부생산 물량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DSP 소속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고객사(팹리스)를 찾아나설 수 있는 반면, VDP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프로젝트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VDP들을 위한 공용 RBS가 마련된 기흥테라타워.
VDP들을 위한 공용 RBS가 마련된 기흥테라타워.

또 다른 디자인하우스 임원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입장에서도 최근 업황을 감안해 외부에 설계를 맡기기보다 자체 인력으로 완수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며 “이 때문에 VDP로의 낙수효과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DSP도 고객사 양산 줄어

 

DSP 소속 디자인하우스들이 VDP 대비 사정이 낫다고는 하지만 DSP들 역시 최근 업황 하락의 여파를 감내하고 있다. DSP들은 팹리스들로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한 뒤, 실제 양산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대규모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다. 그러나 스마트폰⋅TV⋅PC 등 IT 세트 수요가 줄어들면 팹리스들 역시 양산 규모를 줄이거나 양산 시점을 늦춘다. 이는 DSP들의 기대 매출 하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IT 세트 수요가 살아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3분기 이후는 되어야 DSP들의 매출도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장/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장/사진=삼성전자

다만 최근의 시스템반도체 업황 하락이 DSP들에게 주는 이점은 있다. 파운드리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생산 슬롯을 확보하기는 수월해졌다. 파운드리 공급부족이 극심했던 2020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생산 슬롯을 잡지 못해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삼성전자 생산라인이 비어 가는 상황에서는 프로젝트를 수주만 하면 생산을 맡기기는 용이하다.

한 DSP 소속 임원은 “요즘처럼 반도체 산업에 전반적으로 침체됐을 때가 필요한 인력을 확충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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