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으면 4분기 양산 목표... 월 300㎜ 웨이퍼 투입량 3만장 규모
TSMC보다 투자·양산 결정 항상 늦어.. 추가 투자도 기다려봐야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5나노 설비 투자를 시작했다. 

이미 노광 스캐너는 반입이 끝났고 나머지 장비도 발주(PO)가 나오고 있다. 이르면 3분기 초도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지만, 이달 양산에 들어가는 대만 TSMC보다 6개월 이상 더디다.

투자 결정부터 늦었다. TSMC는 지난해 3~4분기 5나노 증설 투자에 들어갔다. 장비 업계는 TSMC의 양산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한참 바쁜 상황이다. 물량도 TSMC가 훨씬 많아 상대적으로 삼성전자를 위한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까지 말썽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5나노 설비 투자 개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장/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장./삼성전자

반도체 장비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5나노 생산 라인 구축을 위해 증설 투자를 시작했다. 이미 1분기 ASML의 노광 스캐너가 수 대 반입됐다. 1차 투자로 인한 생산량 증가분은 300㎜ 웨이퍼 투입 기준 월 3만장이다. 

목표 양산 시점은 2분기 말이지만 이제서야 발주가 나오고 있어 사실상 일정을 맞추기는 불가능하다. 통상 장비 발주부터 반입까지 5~6개월이 걸린다. 

게다가 TSMC의 양산 일정이 이달부터라 상대적으로 장비 업계의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 TSMC는 지난해 3분기부터 5나노 설비 투자를 시작했는데, 생산량을 300㎜ 웨이퍼 투입량 기준 3만장에서 6만5000장으로 늘리면서 업계는 추가로 장비를 반입, 구축하고 있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장비 업체들이 TSMC 대응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삼성전자 투자가 한발 늦은만큼 장비 업계의 대응 또한 느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탓에 해외 장비 업체 엔지니어가 국내에 들어와 삼성에 실시간 대응하기가 어려워졌다. 일본, 싱가포르 등은 한국 방문자를 입국 금지하고 있고 중국과 대만 등에서는 한국 방문자에 대해 입국 제한 조치(격리)를 취하면서 한국을 방문한 엔지니어들은 최소 보름간 업무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메모리는 국내 장비 공급사들이 더러 있지만 파운드리는 아직 외국계 기업들이 대부분의 장비를 공급한다. 당분간은 국내 지사가 대응할 수 있지만, 장비 반입이 되기 시작하는 9~10월까지도 여파가 계속되면 일정을 맞추는 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한 외국계 장비 업체 대표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부품(Parts)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장비를 만드는 것조차 지연된 업체들도 있다”며 “중국 내 우한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이 주(3일)부터 정상 운영에 들어간 업체가 대부분이라 곧 해소되겠지만, 문제는 한국”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왜 한발 늦었을까

사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증설 투자는 지난해, TSMC보다 한발 빨리 이뤄져야했다. 삼성전자의 7나노 생산용량(Capacity)은 TSMC보다 1.5배 가량 크지만 수율이 낮아 실질 생산량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사의 7나노 공정(삼성전자는 6나노 포함)의 사양이 엇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예 7나노 공정의 실질 생산량을 TSMC보다 늘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게 첨단 공정 주도권을 잡는 길일 수 있었다. 7나노 생산라인을 5나노로 전환(Migration)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내부에서도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7나노 양산을 시작한 지난해 중순, 하반기 투자를 검토했지만 당시 결정권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 법정에 서게 되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부회장의 2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삼성전자 V1 라인(EUV 전용 라인) 전경./삼성전자
삼성전자 V1 라인(EUV 전용 라인) 전경./삼성전자

당시로서는 수요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도 투자를 지체한 이유 중 하나다. 

반도체 업계에서 첨단 공정을 활용하는 업체는 매우 제한적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모뎀,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정도가 첨단 공정의 메인 제품이고, 나머지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 인공지능(AI) 가속기, 가상화폐 채굴용 전용 반도체(ASIC) 등으로 시장이 크지 않다.

지난해 중순 삼성전자가 7나노 양산을 막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선단 공정의 수요가 많지 않았다. TSMC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현재 가동률 100%를 기록하고 있는 건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하이실리콘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6개월, 1년치 물량을 한 번에 주문하는 한편 작년 말 가상화폐 채굴기 시장도 반짝 커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TSMC의 생산용량이 넘쳤고, 넘쳐흐른 물량이 삼성전자로 넘어왔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는 여러 종류의 기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요 예측이 쉽지만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종류가 워낙 많아 보수적으로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며 “7나노 생산 초기부터 100% 가동률을 이어왔던 TSMC가 올해 들어서야 생산용량을 늘리기로 한 건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말 추가 투자? 아직 판단은 이르다

삼성전자는 일부 장비 업체에 연말 추가 투자 가능성도 내비쳤다. 

연말이면 평택 2기가 가동에 들어간 시점이다. 평택 2기는 1, 2층으로 동쪽 라인과 서쪽 라인이 나뉘어있어 총 4개의 생산 라인을 구축할 수 있다. 각 라인 당 생산용량은 300㎜ 웨이퍼 투입량 기준 월 10만장 정도인데, 이 중 한 개 라인이 파운드리에 배치될 예정이다.

하지만 장비 업계는 연말 투자의 성사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본다.

 

▲TSMC 로고. /TSMC 제공
TSMC 사무실 전경./TSMC

공급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5나노 공정이 TSMC의 5나노 공정에 비해 밀도 등이 한참 떨어지는데다, 내년이면 중국 SMIC도 7나노 양산 대열에 합류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고객사는 제한돼있는 상황에서 경쟁사가 늘어나면 굳이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 SMIC는 연내 7나노 시생산을 시작한다.

수요도 예측은 여전히 어렵다. 연초까지 반도체 업계는 올해 시황이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도쿄올림픽 등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도 겹쳐있는 짝수년도인데다 미-중 무역전쟁도 어느 정도 소강 상태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금은 어느 누구도 수요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버 등 B2B 시장 수요는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낮지만 일반 소비자(B2C) 시장 기기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은 코로나-19 탓에 1분기 판매량이 실제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국계 장비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설비 투자와 양산은 항상 TSMC보다 한발 늦다”며 “좀처럼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를 꺼리는 건 이해하지만, TSMC와의 격차를 좁히려면 과감한 결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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