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나노 선단 공정 매출 비중 52% 넘겨, 총이익률 57.8%
예약 매출 반토막난 ASML과 대조
최근 고객사 엔비디아와 힘겨루기도

▲TSMC 본사 전경/TSMC 제공.
▲TSMC 본사 전경/TSMC 제공.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1위인 대만 TSMC가 갈수록 뜨거워지는 AI 붐을 타고 지난 3분기 시장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반도체 업황의 선행 지표로 여겨지는 ASML의 3분기 예약 매출이 시장 전망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나 삼성전자·인텔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부진한 것과 대조적인 나홀로 독주다. TSMC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갈수록 장악력을 강화하면서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와도 힘겨루기를 벌이는 등 이른바 ‘슈퍼을’로 등극한 모양새다.

TSMC는 17일 올해 3분기 순이익이 3253억대만달러(약 13조 8300억원)으로 전년 동기(2110억대만달러·약 8조 9700억원) 대비 54.2%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조사업체 LSEG가 집계한 애널리스트 22명의 평균 전망치인 3002억대만달러를 크게 웃도는 실적이다. 매출은 7천596억9000만 대만달러(약 32조3000억원)로 39% 증가하며, 역시 시장 예상치를 넘었다.

TSMC의 이같은 호실적은 최근 AI 반도체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흐름과 TSMC의 지배력이 더 공고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2~3분기 TSMC 매출의 절반 이상은 AI 가속기 등 고성능 컴퓨팅(HPC) 분야에서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 등을 고객으로 둔 TSMC는 AI 수요 급증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했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콘퍼런스콜(실적 설명회)에서 “AI 수요는 강력하고,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일부 고객사에서는 ‘AI 수요가 미쳤다(insane)’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이같은 어닝 서프라이즈 덕분에 TSMC 주가는 이날 뉴욕 증시에서 급등해 시가총액 1조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TSMC와 대조적으로 반도체 시장의 선행지표 격인 ASML은 크게 저조한 성적표를 전날 받았다. ASML의 3분기 예약 매출은 26억유로(약 3조8600억원)로 시장 전망치(56억유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ASML은 실적 부진 이유로 반도체 시장내 AI 분야를 제외한 PC·스마트폰 등 다른 부문의 침체를 들었다. 푸케 CEO는 “지금 AI조차 없다면 시장은 매우 슬플 것”이라면서 “업계는 모두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TSMC의 실적 상승세에서 눈여겨봐야할 부분은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3분기 TSMC의 매출 총이익률은 57.8%, 영업이익률은 47.5%, 순이익률은 42.8%에 달한다. 이는 현재 최선단 공장 시장에서 TSMC의 지배력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TSMC의 전체 웨이퍼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올해 양산이 시작된 3나노 2세대 웨이퍼 매출이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5나노 웨이퍼 매출은 전체의 32%에 달한다. 반면 7나노의 경우 17%로 비중이 감소했다. 3나노, 5나노 등 현재 업계에서 최첨단 공정으로 간주되는 분야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7나노를 포함한 첨단 공정 매출 비율은 69%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3분기 59%보다 10%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3나노·5나노 등 최선단공정 시장만 놓고 보면 TSMC는 무려 92%에 달하는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TSMC는 공정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첨단 공정 가격을 크게 올리고 있다. 3나노 공정에서 가격을 20% 올렸으며, 내년 본격 양산할 2나노 공정은 또 배 이상으로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TSMC는 가장 최신 공정인 2세대 3나노 공정에서 앞선 경쟁력으로 빅테크 고객사 주문을 잇따라 수주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에 주춤하면서 TSMC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랜 단골 고객인 애플 외에도 엔비디아·퀄컴·AMD·미디어텍 등 미국과 대만의 칩 설계 업체들이 TSMC 최신 3~4나노 공정을 이용하고 있다. 파운드리 경쟁자인 인텔마저도 AI PC용 칩인 ‘루나레이크’ 생산을 위해 자사 파운드리 대신 TSMC 파운드리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같은 여세를 몰아 해외 공장 확장과 설비 증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 3곳에 650억달러(약 89조원)를 투자했고, 지난 8월에는 독일 드레스덴에 109억달러(약 14조9300억원)를 투입해 유럽 첫 공장을 착공했다. 웨이 CEO는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 공장은 점차 성과를 내고 있으며, 애리조나 공장이 단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올해 설비 관련 투자도 계속 이어간다. TSMC는 올해 투자 액수가 300억달러(약 41조1000억원)를 약간 상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AI 반도체 시장에서 갈수록 지배력이 강화하자 최근 TSMC는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와도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선단 공정의 주문이 쇄도하다 보니 고객사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갑’이 된 모습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각) 정보기술(IT) 매체인 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TSMC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슈퍼칩인 ‘블랙웰’ 생산 차질을 놓고 최근 책임 공방을 벌였다. 엔비디아는 올 3월 블랙웰을 발표한 직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TSMC가 납품한 반도체가 고장 난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곧 ‘네탓’ 공방으로 번졌다. 블랙웰은 엔비디아 제품 가운데 처음으로 두 개의 반도체를 하나로 결합하는 구조로 설계 난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TSMC에 고장 이유를 문의했지만, TSMC는 책임을 엔비디아의 설계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반도체 패키징 기술 오류로 의심했다.

갈등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6월 TSMC를 방문해 엔비디아 전용 패키징 라인을 구축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TSMC 임원들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간 신경전이 거세지자 웨이저자 TSMC 회장이 중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TSMC 매출의 10%를 차지해 애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고객사다. 문제는 AI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TSMC가 엔비디아 생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 있다. TSMC가 계속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수요를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현재 두 회사는 모두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문전성시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의 95%를 장악하고 있고, TSMC는 선단공정 반도체 시장점유율 92%를 차지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없더라도 TSMC로서는 애플을 비롯한 고객사들이 즐비해 있는 것이다. 올 6월 TSMC가 가격을 인상했을 때도 엔비디아는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자 엔비디아는 TSMC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삼성전자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해석이다. 더인포메이션은 “AI 반도체가 아닌 게임용 GPU를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정에서 생산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다만 TSMC의 같은 세대에 비해, 20~30% 낮은 가격으로 생산하는 것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