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새 10년 프로젝트 2개 종료한 애플
팀 쿡 CEO 이후 체제 대비하나

애플은 최근 10년짜리 프로젝트를 2개 종료했다. 자율주행차에 애플 감성을 담은 ‘애플카’와 마이크로 LED로 모바일 디스플레이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사라졌다. 10년간 두 프로젝트에 투입된 비용만 17조원(애플카 100억달러 + 마이크로 LED 40억달러)이다. 웬만한 기업이라면 열두 번도 도산했을 매몰비용이다.  

모든 기업은 신사업을 추구하고, 또 중도 포기한다. 애플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최근 프로젝트 종료 과정에서 애플이 보여준 행보는 그동안의 신중함과 달리 어딘가 엉성하다. 

우선 프로젝트 철수 사실이 외부에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애플카 프로젝트 종료 사실은 사내 공지가 나오자 마자 블룸버그를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됐다. 마이크로 LED 프로젝트 취소 사실은 협력사 오스람이 사흘만에 홈페이지에 공식 게재했다. 마치 애플 담당자더러 보라고 쓴 것 같았다.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애플이 왜 이번에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지 못했을까.

일을 서두를수록 실수는 잦다. 한달 새 10년짜리 프로젝트 2개를 전격 종료한 애플은 ‘빅 배스(Big Bath)’를 단행하는 기업처럼 성급해 보인다. 빅 배스는 기업이 신임 CEO(최고경영자)를 선임하기 전 회사의 부실을 회계상에 일거 반영하는 행위다. 

평소라면 잘 내리지 못할 판단도 빅 배스를 명분 삼아 과감하게 결단한다. 신임 CEO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사내 정치적인 결정도 포함해서다. 덕분에 새로 부임한 CEO는 구체제가 벌여 놓은 수많은 고민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새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애플은 팀 쿡 다음 CEO 체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기업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인 신사업 종료건을 두고 빅 배스까지 연상하는 건 최근 애플을 둘러싼 상황이 간단치 않아서다. 모든 빅 테크 기업들이 AI(인공지능)로 내달리는 와중에 애플은 아직 출발선에도 보이지 않는다. 

항상 ‘깜짝쇼’로 신제품을 공개해왔다는 점에서 내심 뭔가를 준비했겠거니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애플 주주들 인내심은 한계에 봉착했다. 최근 MS⋅엔비디아와 애플과의 주가 괴리가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팀 쿡은 스티브 잡스 이후 13년째 애플이라는 거함을 이끌고 있다. 이미 하드웨어 분야에서 이룰 수 있는 목표는 거의 다 이뤘다. 삼성전자가 마지막 자존심으로 부여잡고 있던 ‘스마트폰 출고량 기준 1위' 타이틀조차 지난해 거머쥐었다. 팀 쿡이 CEO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어쩌면 올해가 정점에서 박수 받으며 물러날 기회가 될 수 있다.

태평양 건너 한 기업의 CEO 교체 가능성을 주시할 수 밖에 없는 건 애플이 국내 전자부품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그 만큼 지대해서다.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애플은 ‘C1’으로 통한다. 가장 중요한 고객(Customer)이라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의 ‘C2’다. LG디스플레이 중소형 OLED 사업 역시 애플을 빼놓고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LG이노텍 카메라모듈은 말할 것도 없다. 

단지 부품 뿐만 아니라 이를 구성하는 소재⋅장비를 망라해 모든 후방산업이 애플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키는 CEO가 쥔다. 만약 최근의 애플 행보가 빅 배스를 염두한 게 아니더라도 현재의 팀 쿡 체제가 영원할 수는 없다. 달도 차면 기울고, 팀 쿡 CEO도 언젠가는 교체된다. 그리고 신임 CEO는 전임자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부분부터 채워나갈 가능성이 높다. 바로 AI와 콘텐츠다. 

국내 소부장 산업은 애플의 이 같은 변신에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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