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대거 영입
상하이 푸동에 거점 잡을 듯
SMIC, 2000년대 초 D램 파운드리로 성장 경험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가 자회사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사업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서 세계 최고 역량을 보유한 중국은 메모리 분야 만큼은 여전히 불모지에 가깝다. 

앞서도 중국 내 메모리 자립 시도는 많았으나, 이번에는 최근 7nm(나노미터) 칩 양산으로 제조 기술을 검증받은 SMIC라는 점에서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SGS세미,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대거 영입

 

최근 중국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엔지니어들을 가장 열심히 영입하는 회사는 SMIC 자회사 SGS세미(盛吉盛, 셩지셩)다. 이 회사는 지난 2018년 SMIC와 중국의 반도체 정책자금인 ‘빅 펀드', 트리플코어테크놀러지 3사가 합작 설립했다. 

당초 설립 취지는 반도체 장비 기술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들을 영입하면서 D램 양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SGS세미는 상하이 푸동, 저장성 닝보에서 D램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며 “실제 거점은 푸동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SGS세미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은 한 인사는 “한국 출신들은 우선 닝보에서 근무하다가 푸동 내 연구시설이 완비되면 근무지를 이전하는 조건을 제안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SGS세미에는 한국인 엔지니어 20~30명 정도가 소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SGS세미의 모회사 SMIC에게 D램 사업은 낯설지 않다. 2000년대 초 SMIC가 D램 파운드리 사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근래 D램 사업은 설계⋅생산이 한 회사에서 이뤄지는 IDM(종합반도체회사) 체제가 일반적이다. 

하이케이메탈게이트(HKMG) 공정이 적용된 DDR5 D램. /사진=삼성전자
하이케이메탈게이트(HKMG) 공정이 적용된 DDR5 D램. /사진=삼성전자

그러나 반도체 ‘치킨게임’이 한창이던 2010년 이전까지는 D램 역시 고정비 절감을 위해 외주생산을 맡기기도 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SMIC는 독일 인피니언, 일본 엘피다의 D램 외주 생산물량을 다량 수주했다. 이후 인피니언⋅엘피다가 D램 사업을 접거나 도산하면서 SMIC 역시 D램 파운드리 물량이 크게 줄었다. 

다년간의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통해 제조 기술을 습득한 SMIC로서는 설계 기술만 확보하면 ‘맨땅에 헤딩'하는 CXMT(창신메모리)보다는 유리한 고지에서 D램 사업에 착수할 수 있다. 이는 중국 정부도 환영하는 바다. 미국 상무부 제재 탓에 장비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CXMT는 지난 2017년 이후 현재까지 10나노급 1세대 제품(D1x)에 묶여 있다. 

SMIC가 D램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중국 내 D램 사업 저변이 넓어지면 그 만큼 자립 시점도 앞당길 수 있다. 이는 D램 시장에서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D램 업계에는 위협 요소다.

 

SMIC 당장 20nm급은 양산 가능

 

그동안 SMIC의 미세공정 수준은 14nm(나노미터) 핀펫 공정이 한계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화웨이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양산한데서 확인했듯, 멀티패터닝 기술로 7nm 칩을 생산할 수도 있다. 

통상 로직반도체의 14nm 기술은 D램의 20nm 디자인룰, 7nm 기술은 D램의 18nm 디자인룰과 비견된다. 따라서 SMIC의 14nm 기술에 설계만 붙이면 20nm급 D램은 조기에 양산할 수도 있다. 현재 시장에서 팔리는 최신 D램이 10나노급 4세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4개 세대 뒤처지는 수준이다. 

삼성전자가 EUV 노광장비를 10나노급 3세대, SK하이닉스는 10나노급 4세대 제품부터 도입했다. EUV를 도입할 수 없는 SMIC도 ArF(불화아르곤) 기술만으로 10나노급 2세대까지는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 플러스'. /사진=화웨이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 플러스'. /사진=화웨이

관건은 사업의 지속가능 여부다. 시스템반도체는 성능으로 차별화 할 수 있는데 비해, 메모리 반도체는 단가 경쟁이 치열하다. 10나노급 4세대를 넘어 5세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SMIC의 20nm급 제품으로 원가 싸움은 불가능하다. SMIC가 D램 3사(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를 따라잡기 전까지는 뒤처지는 성능의 제품을 비싸게 사줄 내수 고객사가 필요하다. 

초기에는 중국 정부가 기업들을 독려해 자국산 D램 구입을 유도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지속될 수는 없다. 조기에 시장성 있는 제품을 출하하지 못하면 최근 도산한 CHJS(청두가오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D램 사업이 어려운 건 가격 말고는 차별화 할 수 있는 요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며 “중국 정부가 SMIC 제품에 보조금을 태워 싸게라도 공급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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