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연구소 재직 당시 국내 서플라이체인과 협업
테크엘 인수한 비에이치, 최근 자동차 분야 적극 투자

지난 2018년 전임 경영진의 배임⋅횡령 혐의가 불거지며 부침을 거듭한 테크엘(옛 바른전자)이 체질개선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FPCB(연성인쇄회로기판) 전문업체 비에이치에 인수된 이후 사명을 변경하고, 경영진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비에이치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 및 전장 부문에서 테크엘이 어떤 시너지를 낼 지 주목된다. 

아이폰14를 분해한 모습. 은색빛으로 코팅된 반도체가 EMI 차폐 처리된 것들이다. /사진=테크인사이트
아이폰14를 분해한 모습. 은색빛으로 코팅된 반도체가 EMI 차폐 처리된 것들이다. /사진=테크인사이트

 

테크엘, 애플 출신 이명호 전무 영입

 

테크엘은 27일 이사회를 열고 김재창 사업총괄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김 신임 대표는 비에이치 대표 출신으로, 현재 비에이치 고문을 겸임하고 있다. 전임 대표이자 삼성전자 출신인 조대성 사장은 이날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이현창 비에이치 연구소장이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이현창 소장은 이경환 비에이치 회장의 장남으로, 비에이치의 관계사인 디케이티에서도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 테크엘은 비에이치를 대상으로 제 3자 배정유상증자(48억원)를 실시하는 한편, 비에이치⋅디케이티에 각각 250억원⋅1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도 발행했다. 이후 테크엘 주요 경영진이 비에이치 친정체제로 물갈이되는 중이다. 

새로 영입된 인사들 중 눈에 띄는 이름이 이명호 운영총괄 전무다. 이 전무는 앰코⋅스태츠칩팩⋅TI 등 글로벌 반도체 회사를 두루 거쳤다. 특히 테크엘에 합류하기 직전에는 애플의 싱가포르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테크엘은 메모리카드, SSD 등을 공급하던 바른전자가 전신이다. 비에이치가 인수하면서 사명을 변경했다. /사진=테크엘
테크엘은 메모리카드, SSD 등을 공급하던 바른전자가 전신이다. 비에이치가 인수하면서 사명을 변경했다. /사진=테크엘

이 전무가 애플에서 주도했던 연구 중 국내 서플라이체인과 가장 연관이 깊은 분야가 스프레이 방식 EMI(전자파간섭) 차폐 기술이다. EMI는 전자제품 내 반도체에서 분출하거나 반도체로 침범하는 전기⋅자기 노이즈를 의미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해야 제품 오작동을 막을 수 있다.

현재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제품 내에서 반도체 EMI 차폐는 스퍼터 방식으로 공정이 갖춰져 있다. 차폐해야 하는 반도체를 스퍼터 장비 안에 넣고, 플라즈마로 타깃을 때려 금속막을 입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십수년간 검증된 방식이지만 느리고 공정 비용이 비싸다. 

애플은 지난 2016년쯤 이를 스퍼터 방식에서 스프레이 방식으로 전환을 시도했고, 이 연구를 이명호 테크엘 전무가 이끌었다. 스프레이로 EMI 차폐 공정을 진행하면 공정 속도가 빠르고, 투자비는 당시 기준으로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차폐가 필요한 부분에 선택적으로 금속막을 입힐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스프레이 방식은 스퍼터 방식에 비해 검증이 덜 됐고, 결정적으로 금속막 유니포미티(균질성)를 확보하기 어려운 탓에 최종 양산에 적용되지는 못했다. 

 

자동차 분야 집중하는 비에이치와 시너지 기대

 

이 때문에 비에이치⋅테크엘이 이명호 전무 영입을 통해 다시 한 번 스프레이 방식 EMI 차폐 기술을 재현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제는 한 식구가 된 비에이치는 최근 자동차용 반도체 및 전장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자동차는 갈수록 반도체 탑재량이 늘고있고, 컴퓨팅 구조가 중앙집중식으로 전환되면서 EMI 차폐 요구가 높다. 특히 스마트폰과 달리 자동차는 단 한번의 오작동에도 치명적인 교통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EMI 차폐 처리한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쓰일 전망이다. 

자동차는 한번의 오작동으로 큰 사고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EMI 차폐 성능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사진=LG CNS
자동차는 한번의 오작동으로 큰 사고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EMI 차폐 성능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사진=LG CNS

비에이치는 삼성디스플레이에 OLED용 FPCB를 공급하며 급성장했으나, 최근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LG전자 VS사업부 내 차량용 무선충전사업 인수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연결하는 전장 케이블 역시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최근 비에이치의 모든 투자는 자동차 산업을 향하고 있다”며 “테크엘 인수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보면 스프레이 방식 EMI 차폐 기술이 자동차용 반도체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