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람테크놀로지, 100% RISC-V 기반 칩 설계
구글⋅르네사스⋅NASA 등 해외서는 이미 저변 확대
무료 IP에 코어 설계 변경 자유도 높아

이달 상장하는 자람테크놀로지는 통신용 PON(Point to Multipoint) 칩을 만드는 반도체 회사다. 5G 이동통신은 특성상 전파 도달범위가 짧은 탓에 이동 중에는 여러 기지국을 옮겨다니며 통신하는 게 불가피하다. PON은 이 과정에서 각 기지국 신호가 충돌하지 않게 컨트롤하는 장치다. 자람테크놀로지의 PON SoC(시스템온칩)는 관련 제품 중 유일하게 광트랜시버와 일체형으로 제작돼 ‘스틱’ 형태로 공급된다. 

이 회사 PON SoC가 다른 칩셋들과 구분되는 포인트는 또 있다. 100% RISC-V(리스크파이브) 코어 기반으로 SoC를 설계했다는 점이다. 

RISC-V 기반으로 설계된 반도체. /사진=사이파이브
RISC-V 기반으로 설계된 반도체. /사진=사이파이브

 

영토 넓혀가는 RISC-V 진영

RISC-V는 2010년 미국 UC버클리에서 개발하기 시작한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er) 아키텍처다. 같은 RISC 아키텍처인 영국 Arm의 코어가 비싼 로열티를 내며 써야 하는 것과 달리, RISC-V는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오픈소스다. 

마치 OS(운영체제)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에 대항하는 리눅스 처럼, RISC-V는 Arm 코어를 대체할 경쟁 기술로 부각돼 왔다. 

그러나 이처럼 이상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출발한 프로젝트임에도 아직 RISC-V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모바일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시장에서 경쟁사 Arm의 점유율은 90%를 넘나든다. 올해 2분기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출하된 Arm 기반 칩은 2400억개에 이른다. 

이처럼 모바일 생태계 자체가 Arm을 중심으로 구축돼 있다 보니 각종 소프트웨어와 개발자를 위한 툴도 모두 Arm 코어에 최적화 된 채로 발전해 왔다. 개발자를 위한 생태계가 미약하다는 점에서 RISC-V를 이용해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가 적고, 이는 다시 개발자 생태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ARM 기반 반도체 출하량 추이. /자료=ARM
ARM 기반 반도체 출하량 추이. /자료=ARM

최근 자람테크놀로지처럼 RISC-V 코어를 이용해 상용화 된 칩을 내놓는 곳은 기존 스마트폰⋅태블릿PC 처럼 생태계가 완성된 분야 보다는 통신칩, 자동차용 반도체, AI 반도체 등 신규 시장으로 떠오르는 영역이 주를 이룬다. 

백준현 자람테크놀로지 대표는 “통신용 칩은 이미 완성된 x86이나 스마트폰 시장처럼 하드웨어에 대한 소프트웨어의 의존성이 크지 않다”며 “고객이 가장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해 공급해주면 Arm 기반인지 RISC-V 기반인지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팹리스 업체인 동운아나텍의 AF(자동초점) 드라이버IC도 RISC-V 기반으로 설계됐다. AF 드라이버IC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 위치에 따라 렌즈 모듈의 심도를 자동으로 컨트롤해주는 칩이다. 이 제품은 중국 화웨이를 비롯해 여러 스마트폰 업체에 공급됐다. 스마트폰 두뇌에 해당하는 AP라면 RISC-V로 설계하는 게 도박일 수 있지만, AF용 드라이버IC 처럼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도체는 RISC-V를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구글도 AI 반도체의 일종인 TPU(텐서프로세서유닛)를, 미국 NASA(항공우주국)는 차세대 고성능 우주선용 CPU 설계에 RISC-V 코어를 차용했다. 자동차용 반도체 3위인 일본 르네사스는 RISC-V 기반으로 설계된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제품군을 출시하기도 했다. 또 다른 MCU 공급사인 누보톤 안정모 한국지사장은 “아직은 전 제품 Arm 코어를 이용해 MCU를 설계하고 있지만 RISC-V 발전상도 유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 데이터센터 내부. 구글은 AI 반도체 일종인 TPU를 RISC-V 기반으로 설계했다. /사진=구글
구글 데이터센터 내부. 구글은 AI 반도체 일종인 TPU를 RISC-V 기반으로 설계했다. /사진=구글

 

칩리스들이 RISC-V를 선호하는 이유

 

팹리스, 혹은 칩리스들이 RISC-V 코어를 선호하는 것은 무료로 쓸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설계 자유도가 높다는 것도 크다. 

Arm 코어의 경우, 이미 정해진 설계 이외에 고객사가 이를 변경해서 쓰는 게 계약상 불가능한데 RISC-V 코어는 필요에 따라 수정해 쓸 수 있다. 코어 IP(설계자산) 처럼 SOC 설계에 쓰이는 라이선스들은 단순히 사용권한만 주거나, 구조변경을 허용하는 라이선스로 나뉜다. RISC-V는 태생부터 오픈소스이다 보니 구조변경에 대한 제약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덕분에 성능과 전력소비 등 고객사가 요구하는 특성에 맞게 코어를 개조하는 게 RISC-V 코어 상에서는 가능하다. 자람테크놀로지의 PON SoC는 업계서 유일하게 RISC-V 기반으로 설계됐는데, 전력소비량이 0.9W에 불과하다. 다른 경쟁사가 1.8~7W까지 전력소모량이 큰 것과 비교하면 기지국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다. 심지어 이 회사 SoC는 40nm(나노미터) 공정을 써 경쟁사(28nm) 대비 노드가 큰데도 전력소비량은 더 적다. 

RISC-V는 Arm에 대항하는 오픈소스 기반 CPU IP다. /자료=지멘스
RISC-V는 Arm에 대항하는 오픈소스 기반 CPU IP다. /자료=지멘스

최근 반도체 산업으로 유입된 칩리스(구글⋅알리바바⋅아마존 등 전용반도체가 있으나 생산⋅설계 역량은 없는 회사)들은 자체 클라우드 서버 사용 목적에 최적화된 반도체 수급을 위해 전용 반도체 설계에 나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반도체 최적화에는 Arm 코어 보다 RISC-V가 분명한 이점이 있다. 

백준현 대표는 “RISC-V는 이미 반도체 산업에서 저변을 넓히고 있으며 통신 분야와 자동차 반도체 분야에서 가장 먼저 점유율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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