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개발 기간 줄이고, 단가 낮추는 SiP
OSAT 업계, 애플 SiP 도입 비중 30% 추정

최근 애플과 삼성전자 MX(스마트폰)사업부의 반도체 전략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SiP(시스템인패키지) 도입 속도다. OSAT(반도체외주가공) 업계가 “애플은 반도체 2개만 모여도 SiP로 묶을 생각을 한다”고 할 정도지만, 삼성전자는 SiP 도입 속도가 느리다. 

이는 세트 제조를 100% 외주화한 애플과 아직 생산의 상당부분을 자체 관장하는 삼성전자의 내재화 전략에 따른 차이에서 비롯된다.

아이폰13 프로에 적용된 로직보드. /사진=아이픽스잇
아이폰13 프로에 적용된 로직보드. /사진=아이픽스잇

 

개발 기간 줄이고 단가 낮추는 SiP

 

SiP는 단일 패키지 안에 여러 종류의 반도체를 담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낸 것을 뜻한다. 각 반도체들이 마치 같은 시스템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SiP라는 이름이 붙었다. 5G 안테나와 여러 칩들을 합친 AiP(안테나인패키지)도 SiP의 한 종류다.

SiP로 여러 반도체를 한 번에 패키지하면, 개별 반도체를 제각기 처리하는 것에 비해 이점이 많다. 우선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 디자인을 경박단소화 할 수 있다. 각각의 반도체 패키지에 붙어 있는 배선과 절연소재 등을 하나의 패키지에 담아 공유하기에 그 만큼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미국 SiP 기술업체 옥타보시스템즈에 따르면 SiP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반도체 패키지에 필요한 공간의 최대 64%가 절감된다. 

저항⋅인덕터⋅캐패시터 등 수동소자들은 프로세서와 접속거리가 가까울수록 효율이 높아지므로, SiP로 붙이면 전기적 특성이 좋아진다. 애플⋅삼성전자처럼 세트 업체 입장에서는 컨트롤해야 하는 부품 수가 줄어들어 완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검증 절차가 간단해진다. 개발 기간이 단축되는 것이다. 이는 모두 비용 절감으로 돌아온다. 

SiP 도입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간 절약이다. /자료=옥타보시스템즈
SiP 도입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간 절약이다. /자료=옥타보시스템즈

SiP는 SoC(시스템온칩)과 종종 비교된다. SoC가 단일 실리콘 칩 위에서 여러 기능을 구현한 것인 반면, SiP는 이종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칩을 한 패키지 안에 욱여 넣는다는 점이 다르다. 전자가 성능 면에서 우월하지만 개발 기간이 길고 복잡하며, 다품종 소량생산이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SiP는 개발 단가가 저렴하고, 다양한 규격을 조금씩 양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스마트폰은 물론, PC⋅통신기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SiP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욜디벨롭먼트에 따르면 ASE⋅앰코테크놀로지⋅JCET 등 OSAT 3사의 지난해 SiP 매출은 전년 대비 10~20%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SiP 시장은 2020년 138억달러(약 18조원)에서 2026년 190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다만 스마트폰 업계 양대 산맥인 애플과 삼성전자의 SiP에 대한 전략은 온도차가 크다. 애플이 인접 반도체들을 묶어 적극적으로 SiP를 도입하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 여전히 일부 반도체에만 SiP 기술을 적용한다. OSAT 업계 추정을 종합하면 애플은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약 30%에, 삼성전자는 약 5% 정도에만 SiP를 적용했다. 앞으로 이 같은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OSAT 업체 임원은 “애플은 OSAT가 제안하기 전에 먼저 SiP 적용 가능성을 타진해오는 반면, 삼성전자는 좀처럼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며 “몇 년 후에는 두 회사 사이의 SiP 적용 비중이 더 크게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체 생산 인프라 버릴 수 없는 삼성전자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SiP 기술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수 없는 건 자체 생산 인프라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이미 개별 칩 단위로 패키지된 반도체를 기판 위에 SMT(표면실장)하는 방식의 생산 인프라가 국내외 공장에 구비돼 있는데, SiP를 도입하면 이들 설비가 무용지물이 된다. 서플라이체인 내 공급사들 역시 이에 맞춰 인프라를 투자해놓은 탓에 쉽사리 SiP로의 전환을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SiP 1개를 늘리면 SiP 내부에 포함된 SMT 물량은 모두 OSAT 회사로 넘어간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보면 부품 주도권이 사내, 혹은 1차 협력사에서 글로벌 OSAT로 이동하게 되는 셈이다. 한 패키지 기판업체 임원은 “스마트폰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을 때는 이처럼 잘짜여진 인프라가 원동력이 됐겠지만, 제조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통신칩 주변의 수동소자들은 SiP로 묶으면 전기적 특성이 더 좋아진다. 사진은 갤럭시S 시리즈의 내부. /사진=아이픽스잇
통신칩 주변의 수동소자들은 SiP로 묶으면 전기적 특성이 더 좋아진다. 사진은 갤럭시S 시리즈의 내부. /사진=아이픽스잇

이에 비해 애플은 아이폰을 비롯해 모든 제품의 제조 부문을 외주화 했다는 점에서 내부 설계 변경에 따른 부담이 적다. 그때그때 가장 최신의 방식을 택하기에 설비 투자에 대한 부담은 수 많은 협력사로 분산돼 배분된다. 한 스마트폰 부품업체 대표는 “애플은 기술이 전이되는 과정에서 후방 서플라이체인에 대한 파급력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문화”라며 “덕분에 최신의 기술을 가장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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