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단일 최대 주주주와 지분 인수 관련 계약 체결
베인측, 공개매수 후 상장폐지 추진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베인캐피털이 일본 거대 전자업체인 도시바 인수에 나섰다. 베인캐피털은 지난 2017년 SK하이닉스와 함께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인 도시바메모리(현 키오시아홀딩스)를 인수한 PEF다. 그동안 행동주의 펀드 등 해외 자본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던 도시바는 얼마전 기업 분할안도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면서 경영 재건에 어려움을 격어왔던 터다. 오랜 업력을 자랑하면서 영욕의 세월을 보냈던 도시바의 향후 진로가 주목된다. 

지난 1일 니혼게이자이‧요미우리 등 일본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베인캐피탈은 도시바 단일 최대 주주주인 에피시모 캐피털 매니지먼트와 지분 인수 관련 계약을 체결했다. 베인캐피탈이 도시바 주식공개매수(TOB)에 나서면, 에시피모가 보유하고 있는 도시바 보유 지분 전량을 넘겨준다는 일종의 사전 계약이다. 지난 3월31일 베인캐피털이 도시바 주식공개매수(TOB)를 제안했는데, 에피시모 캐피털이 주주 가운데 최초로 이에 응한 것이다.

주식공개매수는 주식시장에서 미리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매수하겠다고 주주들에게 공개 제안하는 것이다. 에피시모 캐피탈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행동주의 펀드로 현재 도시바 지분 9.91%(2021년도 결산보고서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나아가 이번 계약에는 베인 이외의 투자자가 제안하는 공개매수에는 응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함께 담아 경쟁 PEF들이 도시바 인수전에 뛰어드는 것도 차단했다.

베인은 상장폐지를 전제로 이번 인수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기업가치를 극대화한뒤 적절한 시점에 재상장, 재매각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베인측은 인수전와 관련 “확정된 사실은 없다”면서도 “도시바를 상장폐지시키기까지는 해결할 과제가 많다”고 밝혔다.

에피시모는 앞서 지난달 24일 도시바 임시 주주총회에서 회사측이 제안한 기업 분할안을 무산시켰다. 도시바는 회사를 하드디스크와 파워반도체 제조사업을 하는 디바이스 부문과 나머지로 나눠 재상장하는 분할안을 추진해 왔다. 에피시모를 비롯해 도시바 지분 약 25%를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 주주들은 분할안에 반대하는 동시에 도시바의 통매각을 주장해 왔다.

이보다 앞서 도시바는 지난해 11월에도 사업 분야를 3개로 나눠 분사시키고 상장폐지한 뒤 오는 2023년 하반기 재상장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역시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기업 스스로 구조조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사모펀드 매각 수순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베인캐피털은 이미 도시바 메모리(현 키오시아)지분 일부를 갖고 있다. 베인은 2017년 SK하이닉스 등과 함께 한미일 연합 펀드를 구성해 도시바 메모리 지분을 인수했다. 이번에도 다수의 연합군들을 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바가 원전 등 국가 기반산업도 거느리고 있어,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 일본 정책금융회사, 일본계 자금 등도 컨소시엄 형태로 대거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외환법은 해외 자본이 일본 주요 기업의 지분을 1% 이상 사들일 때마다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도시바는 경제안보상 중요한 사업인 원자력 발전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도시바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31일 기준 2조엔(약 20조원)가량으로, 상장폐지와 최종 인수를 위해선 막대한 인수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바는 일본 첫 수차발전기 제작사인 다나카제작소(1875년 설립)와 일본에서 백열전구를 처음 만든 백열사(1890년)라는 두 회사가 모태다. 지난 1939년 두 회사가 합병됐고, 1984년부터 현재의 도시바라는 사명을 쓰고 있다.

도시바는 1980~90년대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 선두를 달리고,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 하우스를 인수하면서 원전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었다. 전성기였던 당시 직원수만 21만명(현재 약 12만명)에 달하는 일본 대표 기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영진의 잇따른 투자 오판에 분식회계(2015년 발각) 사태까지 터지면서 상장폐지 수준의 극심한 경영난을 겪게 됐다. 자금 수혈을 위해 알짜 사업인 도시바 메모리 지분 59.8%를 베인캐피털, SK하이닉스 등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에 매각하고, 대규모 증자를 통해 외국계 자본을 대거 받아들여 구사일생하기는 했으나, 이로 인해 주주들의 경영 개입도 한층 커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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