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맥스, 2017년 오큘러스와의 VR 소송에서 승소
애플이 프라임센스 인수로 AR 기술 획득한 것에 비견

마이크로소프트(MS)가 대형 게임 개발사들을 자회사로 거느린 제니맥스미디어(이하 제니맥스)를 인수했다. 이번 인수로 자사 게임 콘솔 ‘엑스박스'용 독점 게임 콘텐츠를 크게 늘릴 계획이다. 넷플릭스가 자체제작 영화⋅드라마로 가입자 이탈을 방지하듯, 게임 콘솔도 독점 게임이 플랫폼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에 제니맥스의 강점인 가상현실(VR) 기술이 MS가 이 회사를 인수한 또 다른 포석으로 풀이된다. 

베데스다의 RPG 엘더스크롤. /사진=베데스다
베데스다의 RPG '엘더스크롤'. /사진=베데스다

틱톡 인수 실패한 MS, 제니맥스 인수

 

MS는 21일(현지시간) 제니맥스를 75억달러(약 8조74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제니맥스는 산하에 베데스다 게임스튜디오, 이드 소프트웨어, 아케인 스튜디오, 머신게임스, 탱고 게임웍스 등 다양한 게임 개발사를 거느리고 있다. MS는 제니맥스 사무실과 2300명 안팎의 직원도 모두 승계하기로 했다. 

이번 거래는 MS가 게임 분야에서 단행한 인수합병(M&A) 중 최대 규모다. MS는 지난 2014년 ‘마인크래프트'를 개발한 모장AB를 25억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MS는 모장AB 인수 이후 닌자 시어리,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등도 사들였다. 제니맥스 인수로 MS 산하 게임 개발사는 15개에서 23개로 늘어나게 됐다. 

MS가 이처럼 게임 개발사들을 공격적으로 사들이는 것은 자사 게임 콘솔인 엑스박스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다. 콘솔에서 플레이하는 게임들은 타사 콘솔이나 PC에서 호환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자사 콘솔에서만 독점적으로 돌아가는 게임도 있다. 독립 스튜디오들은 최대한 다양한 플랫폼에서 호환되는 게임을 개발하지만, MS나 소니(플레이스테이션) 산하 개발사들은 독점작을 주로 개발한다. 

이를 통해 자사 게임 콘솔에 사용자를 묶어 두는 ‘락인(Lock in)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넷플릭스나 애플이 콘텐츠를 자체 제작해 동영상 스트리밍(OTT) 회원을 늘리는 것과 같은 모델이다. 

특히 게이머들은 이번 MS의 제니맥스 인수로 베데스다 게임스튜디오가 한 식구가 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베데스다는 1994년부터 제작된 엘더스크롤 시리즈와 2008년부터 제작된 폴아웃 시리즈로 유명한 제작사다. 둘 다 수천만장 이상 판매된 초대형 롤플레잉게임(RPG)이다. 

엑스박스 시리즈X. /사진=MS
엑스박스 시리즈X. /사진=MS

그동안 독점 콘텐츠 다양성은 MS의 엑스박스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 비해 다소 약하다는 평이었으나, 이번 제니맥스 인수로 전세가 역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MS가 제니맥스 인수를 발표한 시점도 절묘하다.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 인수에 실패한 지 불과 일주일만에 대형 M&A 건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MS와 소니가 각각 차세대 게임 콘솔인 ‘엑스박스 시리즈X’와 ‘플레이스테이션5’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사전에 세력확장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엑스박스 시리즈X는 11월 10일, 플레이스테이션5는 11월 12일로 출시 시점이 불과 이틀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VR, MS가 제니맥스를 인수한 또 다른 이유

 

여기에 제니맥스가 보유한 VR 기술이 MS가 이 회사를 인수한 또 다른 목적으로 풀이된다. 제니맥스는 지난 2017년 페이스북 산하의 오큘러스가 자사 VR 기술을 무단도용했다며 소송을 제기, 5억달러 규모의 손해배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 승소 이후 제니맥스는 삼성전자의 ‘기어 VR’ 역시 오큘러스 기술을 이용한 만큼, 자사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에 나선 바 있다. 

VR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고가의 헤드마운트 장비가 필요하다. 이는 VR 게임 보급이 지체되는 이유다. /사진=오큘러스
오큘러스의  VR 기기. 오큘러스는 지난 2017년 제니맥스와의 소송에서 패소했다. /사진=오큘러스

제니맥스는 게임에 VR 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접목해 온 회사다.  베데스다의 엘더스크롤은 5편 ‘스카이림'이 VR 버전으로 출시됐으며, 폴아웃도 4편이 VR 버전으로 출시된 바 있다. MS도  마인크래프트 VR 버전을 출시하는 등 기존 게임을 VR 기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번 MS의 제니맥스 인수로 향후 대작 게임들의 VR 버전 출시도 크게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애플이 프라임센스 인수를 통해 증강현실(AR) 기술을 획득했듯, MS의 제니맥스 인수에는 VR 기술 확보라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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