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 경제 악화에 발목 잡혀 미팅 건수 40% 뚝… 하반기에야 풀려
올해 세미콘코리아 행사장의 분위기는 작년과는 확연히 달랐다. 작년에는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가득했지만, 올해는 불황이 어느 정도로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 들어찼다.
세미콘코리아는 세계 유일 반도체 산업협회인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의 한 해 첫 행사다. 1월 한국을 시작으로 중국, 동남아, 북미, 유럽, 일본에서 차례로 세미콘이 열린다. 즉, 세미콘코리아는 그 해의 반도체 시장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다.
행사 첫날, 반도체를 테스트할 때 반도체(chip)를 테스트 장비에 연결하는 프로브 카드(Probe card) 제조사 관계자는 “올해 반도체 시장이 워낙 안좋을 것 같아 카메라 모듈 테스트용 프로브 카드도 들고 나왔다”며 “모바일 시장이 안좋다지만, 진짜 안 좋은 건 반도체 같다”고 말했다.
반도체 중고 장비 업체 대표는 “상황이 예상보다 정말 안 좋다”며 “작년보다 부스는 2배 더 크게 냈는데, 들어오는 미팅 건수는 40% 줄었다”고 설명했다.
행사를 주최한 SEMI도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SEMI가 예측한 올해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595억8000만달러(67조3254억원)로, 지난해 620억9000만달러(70조1617억원)보다 소폭 줄어든 수치다.
불황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지목된 건 거시경제다.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짐 펠드한(Jim Feldhan) 세미코리서치 대표는 중국,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더 낮은 수준일 것이라 전망했다.
미국의 국채 금리 또한 0%에 수렴하고 있다. 미국의 국채 금리가 떨어진다는 건 돈이 시장에서 도는 게 아니라 가장 안전한 자산인 국채로 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미-중 무역 분쟁의 무기 중 하나가 반도체, 즉 첨단 기술이라는 것도 불황에 한몫을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중 무역 분쟁이 심화되자 중국 충칭 후공정 공장 물량을 국내 협력사로 돌렸다. 중국 현지에서 만든 반도체를 미국에 팔기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수요도 지지부진하다. 아이폰XS, 갤럭시노트8 등 애플, 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 업체들의 하이엔드 제품은 예상보다 판매량이 저조했다.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 공급 부족 문제는 2분기가 넘어서야 해결될 전망이다. 짐 펠드한 대표는 올해도 PC와 모바일 기기 출하량이 각각 7.7%, 1.0% 줄어들 것이라 내다봤다.
메모리 시장 수요에 불을 지폈던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업계도 데이터센터 신설 대신 기존 데이터센터를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투자 방향을 바꿨다. 고성능 메모리 대신 쌓아놓은 재고를 쓰겠다는 얘기다.
메모리 제조사들도 설비 투자를 보수적으로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평택 2층에 대한 추가 투자 계획을 협력사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 투자 규모를 작년보다 40% 줄일 계획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벽을 만난 중국 메모리 업계는 2020년에서야 설비 투자를 집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불황은 언제쯤 끝날까. 인공지능(AI) 투자가 본격화되고, 5세대(5G) 이동통신과 자율주행 등의 기술이 보급화된다는 전제 아래 반도체 투자는 계속돼야 한다. 아직 이같은 기술을 현실로 옮길 수 있을 정도의 반도체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기 때문이다.(2019년 1월 23일자 KIPOST <[세미콘 2019] >참고)
일단 업계가 희망하는 건 올해 하반기다. 새로운 서버 플랫폼이 출시되고, CPU 공급 부족 문제가 해소되는 시점이 올해 중순이기 때문이다. 메모리 제조사들은 상반기 재고를 하반기 때 소진할 수 있는 제품 위주로 쌓아둘 계획이다. SEMI도 장기적으로 반도체 시장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개막식에서 아짓 마노차(Ajit Manocha) SEMI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한 해는 업계가 훌륭한 성과를 거둔 성공적인 한해였지만, 올해 시장은 조금 걱정이 된다”며 “불확실성은 상존하고, 시장 상황은 어렵겠지만 파괴적인 기술의 등장으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