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기술 확보 총력...인피니언·로옴 이어 실리콘웍스도 JV 설립 검토

▲테슬라 모델3에는 실리콘카바이드(SiC) MOSFET이 적용됐다./테슬라

와이드밴드갭(WBG) 반도체 수요가 커지면서 반도체 업계가 일제히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인피니언·로옴 등 외국계 업체들은 인수합병(M&A)으로 제조 기술을 갖추고 양산을 시작했고, LG그룹 산하 실리콘웍스도 실리콘카바이드(SiC) 제조사와 합작법인(VC)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동차·5G·IIoT… WBG 기반 반도체 수요 증가

 

반도체는 전자가 속박돼 움직일 수 없는 가전자대 상태인 물질에 전압(에너지)을 가해 물질이 전도대에 진입, 전자가 이동하면서 작동한다. 이때 전도대의 최소 에너지 값과 가전자대의 최대 에너지 값의 차이를 ‘밴드갭’이라고 한다.

밴드갭이 좁으면 전도성은 좋다. 하지만 특정 값 이상의 전압을 받으면 저항이 급감하면서 과도한 전류가 흐르는 절연파괴 현상이 나타나 반도체에서 도체로 성질이 바뀌어버린다.`

실리콘카바이드(SiC), 갈륨나이트라이드(GaN) 등 WBG 소재는 실리콘(Si)보다 밴드갭이 넓어 고전력·고전압에 강하다.

 

▲실리콘과 실리콘카바이드, 갈륨나이트라이드 물성 비교./KIPOST
▲실리콘과 실리콘카바이드, 갈륨나이트라이드 물성 비교./KIPOST

방산, 산업용 설비 일부에 쓰이던 WBG 기반 반도체의 수요를 이끈 것은 자동차 전장화와 5세대(5G) 이동통신의 등장, 산업용 사물인터넷(IIoT)의 확산이다.

현재 대부분의 자동차는 12V, 48V 전원 시스템을 활용하는데, 전원 시스템과 각 부품이 전력 변환 장치인 컨버터와 인버터를 사이에 두고 전선으로 복잡하게 연결돼있다.

전선 무게를 줄여 연비를 높이려면 전원의 전압을 높여야한다. 기존 실리콘 기반 반도체는 고전압·고전력에 약하고, 150℃ 이상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테슬라와 도요타가 SiC 기반 전력 반도체를 전기차에 넣은 이유다.

 

▲일부 선진 업체만 써왔던 SiC 기술은 현재 합리적 수용자(Progmatists)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Yole
▲일부 선진 업체만 써왔던 SiC 기술은 현재 합리적 수용자(Progmatists)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Yole

시장조사업체 욜(Yole)에 따르면 현재 20개 이상의 완성차(OEM) 업체가 SiC 기반 쇼트키 배리어 다이오드(SBD)나 금속산화물반도체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를 탑재하기로 했다. 욜은 SiC 자동차 부품 시장이 2023년까지 연평균 44% 성장해 14억달러(약 1조5798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5G도 수요의 한 축이다. 4G까지만 해도 기지국에 들어가는 출력 증폭기(PA)는 실리콘이나 갈륨아세나이드(GaAs) 기반 반도체였지만, 초고주파를 쓰는 5G부터는 GaN 소재를 활용한다.

GaN은 저항값이 실리콘의 10분의1로, 그만큼 전력소모량이 적다. 스위칭 속도도 빠르며 고온에 강해 라이다(LiDAR)나 전력 공급 반도체용으로도 적합하다. SiC를 수천V급 고전압 시스템까지 적용할 수 있다면 GaN은 600V 정도의 중전압 시스템에 활용된다.

 

공급 늘려가는 외국계 업체… 한국도 막 시작

 

WBG 반도체는 설계와 제조 능력을 모두 갖춘 종합반도체기업(IDM)에 유리하다. 제조를 감안하고 설계를 해야하고, 업체마다 원하는 사양이 달라 다품종 소량 양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업체로는 TI에서 분사한 엑스팹(X-Fab)이 SiC를, TSMC가 GaN을 다룬다.

인피니언, 로옴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일찍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설계와 제조 기술을 확보했다. 특히 로옴은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SiC 웨이퍼 제조사까지 사들여 웨이퍼부터 패키지에 이르는 전 공정에 대한 생산 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일제히 공장 증설 및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생산량을 늘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화합물 반도체 업계 인수합병 및 제조시설 현황./KIPOST
▲화합물 반도체 업계 인수합병 및 제조시설 현황./KIPOST

LG그룹 계열사인 실리콘웍스도 일본 SiC 제조사와 합작법인(JV)을 세워 이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자 계열사를 통해 활발히 전장 사업을 펼치고 있는 LG그룹이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전력 반도체를 낙점한 뒤 논의가 본격화됐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SiC 제조 능력을 갖춘 일본 업체로는 덴소, 로옴, 후지일렉트릭 등이 있다.

 

특명, 단가를 낮춰라

 

문제는 가격이다. WBG 반도체가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비싼 가격이었다.

웨이퍼를 만드는 것부터 쉽지 않아 재료값이 만만치 않게 들고, 몇몇 특수 공정도 들어간다. GaN은 공정 비용만 Si보다 20% 높고, SiC MOSFET의 암페어(Ah) 당 가격은 Si 기반 MOSFET의 5배 이상이다. 부품 숫자나 냉각 등을 감안하면 부품비용(BOM)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화합물 반도체 업계는 설명한다.

때문에 업계는 WBG 반도체의 가격을 낮추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기술 발전은 웨이퍼단에서부터 이뤄지고 있다. SiC 웨이퍼는 벌크 결정을 승화시켜 단결정 잉곳을 만드는데 이때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구멍(micropipe)이 생기는 문제가 있었다.

업체들은 씨드(seed) 물질을 도가니에 넣어 SiC 벌크 결정에 열과 압력이 균일하게 가해지도록 하거나 화학기상증착(CVD) 기술로 웨이퍼에 박막을 증착, 결함을 줄이는 방식을 택해 이를 해결했다.

인피니언은 최근 웨이퍼 가공 기술을 가진 실텍트라도 인수했다. SiC 단결정 잉곳을 웨이퍼로 자를 때 연마(CMP)로 소모되는 부분이 많다.

실텍트라는 레이저로 잉곳 표면에 특수 처리를 하고, 희생 층과 폴리머 층을 깐 뒤 급속 냉각해 아주 얇은 층의 웨이퍼만 분리하는 ‘콜드스플릿(Cold-split)’ 기술을 가졌다. 기존 방식보다 생산량을 90% 늘릴 수 있는 기술이다.

 

▲Leti의 GaN-on-silicon 기술 로드맵. 공정은 CMOS 활용./Leti
▲Leti의 GaN-on-silicon 기술 로드맵. 공정은 CMOS 활용./Leti

GaN 반도체는 SiC 반도체보다 만들기가 더 까다롭다. GaN을 어떤 기판에 성장시키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값싼 실리콘 기판에 성장시킬 경우 서로 열팽창계수(CTE)가 달라 공정 도중에 웨이퍼가 휘거나 균열이 가는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SiC에 하면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

업계는 GaN과 Si 층 사이에 버퍼 레이어를 집어넣거나 트렌치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보완해왔지만 1000V 이상의 전압을 가하면 오히려 특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프랑스 레티(Leti) 등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전력, 고전압 전자 시스템이 늘어나면 WBG 기반 반도체의 채택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WBG 소재·공정 기술은 물론 전용 후공정(Package)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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