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특정 배터리 타입을 고집하는 대신, 각형⋅파우치형⋅원통형을 차종별로 다양하게 채택하면서 배터리 업체들 역시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 분야서 삼성SDI가 각형을, LG화학이 파우치형을 각각 표준으로 내세웠지만, 앞으로는 한 가지 모델만 생산해서는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우디 “각형➝원통형➝호환형”



완성차 업체들 중 가장 변화무쌍한 배터리 전략을 구사하는 곳은 독일 아우디다. 


아우디는 2020년까지 모든 A시리즈(세단), Q시리즈(SUV), R시리즈(스포츠카)에 전기차 모델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플러그인하이브리드전기차(PHEV) ‘A3 스포트백 이-트론(e-tron)’을 선보였으며, 내년에 ‘R8 이-트론’, 2018년에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타입의 전기차 ‘이-트론 콰트로’를 생산한다.

 


▲아우디 A3 스포트백 이-트론(e-tron)에 장착된 각형 배터리. 높이 25cm의 배터리 셀 96개 이어 붙여 만들었다. 안정성은 높지만, 원통형에 비해 공간 활용도는 떨어진다. /자료=아우디


아우디는 A3 스포트백 이-트론에 삼성SDI가 생산한 각형 배터리를 탑재했다. 총 96개의 각형 배터리 셀을 직⋅병렬로 연결해 8.8킬로와트시(kWh)의 전력을 저장한다. 가솔린 내연엔진과 전기모터를 동시에 장착한 PHEV로, 전기모터만으로도 50km 이상은 달리 수 있다.


아우디는 첫 전기차에 각형 배터리를 장착한 것과 달리, 내년에 내놓을 R8에는 원통형 배터리를 적용할 계획이다. ‘18650’ 배터리라고도 부르는 원통형은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처음 자동차에 적용했다. 원래 노트북용 배터리로 주로 쓰이던 규격이다.


아우디가 R8 이-트론에 원통형 배터리를 적용키로 한 것은 디자인과 무게중심 때문이다. 


R8은 아우디의 최고성능 스포츠카다. 스포츠카는 빠른 속도에서 급격한 방향전환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차량의 무게 중심을 최대한 낮고 넓게 배분하는 게 중요하다. 


앞서 A3 스포트백 이-트론은 높이 25cm의 각형 배터리 셀을 12개씩 포개어 8개 모듈로 뭉쳐 놓았다. 이 배터리 팩은 차량 뒷좌석 아래에 장착해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려 있다. 배터리 시스템의 무게만 125kg에 달한다.


Audi R8 e-tron

▲아우디는 이르면 내년쯤 R8 전기차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R8 전기차에는 테슬라가 모델S에 적용한 원통형 전지가 장착될 전망이다. /자료=아우디


이에 비해 원통형 배터리는 원통 1개 지름이 18mm 밖에 되지 않는다. 차량 뒷편이 아닌 바닥에 깔아도 승차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아우디 R8 이-트론은 1개당 3.4암페어(Ah) 용량의 원통형 배터리 7488개를 차 바닥에 빼곡하게 까는 방식으로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 ‘모델S’에는 7104개의 원통형 배터리가 장착돼 있다.  R8 이-트론이 모델S 대비 항속거리가 다소 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각형과 원통형 전지를 섭렵한 아우디지만, 아직 SUV 전기차에는 어떤 배터리를 장착하게 될 지 미지수다. 아우디는 첫 SUV 전기차 이-트론 콰트로 생산을 앞두고 삼성SDI와 LG화학 두 곳을 모두 협력사로 선정했다. 그동안 중대형 배터리 분야서 삼성SDI는 각형만, LG화학은 파우치형만 생산해왔다.


통상 상용차는 단일 차종 동력계통에 한 개 기술만 적용돼 왔다는 점에서 삼성SDI가 파우치형을 생산하거나, LG화학이 각형 배터리를 처음으로 생산하게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현재로서는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


하인츠 야콥 노이셔 폴크스바겐 파워트레인 개발 담당은 지난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우리 그룹은 현재 두 개의 배터리 협력사를 가지고 있지만, 한 개 정도 추가할 필요가 있다”며 “협력사간 시너지 효과를 통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조기에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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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파나소닉이 테슬라에 공급 중인 18650 원통형 배터리. /자료=파나소닉



현대차 “파우치형➝각형” 



당초 LG화학의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사용해왔던 현대자동차의 경우 최근 각형 배터리를 병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는 최근 삼성SDI측에 중국 서안공장에서 자동차용 배터리를 공급해줄 수 있는지 여부를 타진했다. 


현재 삼성SDI 서안 공장에는 월 30만셀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라인이 가동 중이다. 30만셀은 전기차 3000대에 장착할 수 있는 배터리 양으로, 삼성SDI는 내년 4월 1개 라인을 추가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현지 고객사 물량을 맞추느라 이번 베이징현대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현대차의 경우, 배터리 충돌 안정성 때문에 각형 배터리 적용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각형 배터리는 다이캐스팅 방식으로 생산한 알루미늄 캔이 배터리를 보호하고 있어 차량 충돌 사고시에도 안전하다. 파우치형에 비해 무거운 게 단점이지만, 고급차종일수록 각형을 선호하는 추세다.


BMW는 PHEV 모델인 ‘i8’과 순수 전기차 ‘i3’에 모두 각형 배터리만 적용했다.


이처럼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전략이 다변화되다 보니 배터리 업체들의 전략도 복잡해졌다.


삼성SDI와 LG화학은 그동안 각각 각형-파우치형을 표준으로 강조해왔지만, 앞으로는 다변화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는 연말 테슬라에 원통형 전지를 자동차용으로 공급하면서 다변화의 물꼬를 틀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B3에 따르면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 생산능력은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월 5600만개, 올들어 증설을 통해 월 6900만개 수준까지 늘릴 예정이다.


원통형 전지가 주로 쓰이는 노트북 시장에 큰 수요 증가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는 테슬라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을 위한 증설로 추정된다.


LG화학의 경우 대전연구소에서 각형 배터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형 배터리 생산에 사용될 알루미늄 캔과 전극 관련 협력사를 물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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