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간 1200Km를 여행했지만 실크로드 중앙부의 핵심도시 몇 개만 둘러보고 오는 주마간산 격의 짧은 여행이어서 아쉬움이 너무 컸다. 여행 전에 중앙아시아와 우즈베키스탄에 관련된 책과 자료를 찾아봤는데, 한국과 미국 모두 자료가 많지 않아 놀랐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기회가 된다면 몽골고원과 중국 위구르 지역, 중동까지 방문하면서 숨겨졌던 찬란한 실크로드 역사를 공부해 보고 싶다.

 

▲부하라에 있는 실크로드 지도.

보통 실크로드 하면 우리하고는 거리가 먼 서역의 땅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한반도의 우리 조상들은 실크로드와도 직간접적으로 왕성한 교역을 했고, 특히 삼국통일 이전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만주, 몽골고원 등 초원 실크로드 국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어찌 보면 한반도에서 만주, 몽골고원, 중앙아시아, 유럽에 이르는 초원 실크로드가 과거 광역생활권을 이뤘다.

 

경주 석굴암의 불상에서 그리스풍의 간다라 미술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광대한 문명교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소주 같은 증류주의 형태는 원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것을 몽골이 압바스 왕조를 점령했을 때 농사를 짓는 서아시아인들에게 배웠고, 이후 쿠빌라이칸이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고려에 머물 무렵 개경 등지에서 빚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고대 당나라의 장안부터 로마까지의 직선거리는 9,000Km이지만, 실제로는 12,000Km에 달하는 장대한 길이다. 하루에 30-40Km를 가는 낙타를 타고 1년 이상 걸리는 거리다.

 

몽골시대에는 촘촘하게 짜인 역참제를 이용해 유럽에서 북경까지 3개월에 주파했다고 한다. 과거의 동서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글로벌한 세계였다.

이 길을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간 법현과 현장법사, 왕오천축국전의 혜초 등 동양인뿐만 아니라, 마르코폴로, 이븐 바투타와 같은 이름난 여행가들이 지나갔다. 또한 이 길에는 다리우스 2세, 알렉산더, 징기스칸, 티무르 같은 영웅들의 흔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실크로드의 주요 운송수단이 된 낙타를 타고 고성을 내려오는 길.

 

실크로드는 중앙에 있는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좌우에 타클라마칸 사막과 키질쿰 사막 등 큰 사막들을 횡단하는 길이어서 낙타를 이용한 카라반 대상이 주로 활동했다. 장안에서 비단을 산 소그드 상인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을 지나 사마르칸트, 부하라에서 비단을 팔았다. 아랍상인들이 바그다드를 거쳐,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 그들이 가져간 물건은 로마 등 지중해 각지로 팔려나갔을 것이다. 

 

과거 중국 비단이 로마에 도착하면 수익률이 1만%에 이르렀다고 하니, 사막의 뜨거운 열기와 모래폭풍, 강도들로부터 목숨을 걸고 실크로드를 횡단할 가치가 있었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비단은 그 제조방법을 누설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는 국가적인 첨단산업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로마제국이 막대한 금, 은 화폐가 비단수입으로 빠져나가서 국가재정이 파탄됐다는 얘기도 있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지배한 페르시아가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비단 등의 교역을 조절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들은 3,4%의 경제성장률은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경제성장률이 높은 것은 역사상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일시적 현상이었고,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경제성장률이 0.1-0.2%에  불과했다.

 

저성장의 시대, 특히 신분 이동의 제한이 심했던 시절, 열정과 꿈이 있는 사람들은 상인이 되었을 것이다. 실크로드의 대상들은 요즘 시대로 치면 벤처기업인이었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수십 배, 수백 배 장사를 노리며 실크로드를 오가면서 문명교류를 만들어냈다.

 

보통 200-300마리의 낙타로 한 카라반이 편성되고 그 중 4분의 3 정도는 교역품을, 나머지는 식량과 물 등을 실었다. 기록에 남은 최대의 카라반은 낙타만 1만마리였다 하니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의 규모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카라반의 우두머리는 길이 없는 사막에서 별을 보고 길을 찾아야 했으며, 미세한 발자취를 찾아내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했다. 또한 여러 언어를 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우물과 오아시스의 위치도 잘 알아야 했다.

 

▲히바 천문대에서 본 히바성내 전경.

 

부하라ㆍ히바 등 사막의 오아시스 국가에서는 멀리서 카라반이 오는 것이 보이면 첨탑(칼란)에 있는 사람이 “카라반이 온다, 카라반이 온다”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환영했다. 카라반 우두머리는 오아시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왕이나 성주를 찾아가 선물, 세금, 경호비용 등을 바치고 자기가 지나온 길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부하라 전통시장에서 기념품을 파는 소녀들.

 

부하라의 전통시장은 2000년 전에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을 판매하느라 북적거리고 있었다. 고대 실크로드를 주름잡았던 소그드인들은 기원전 1세기부터 수표를 썼고, 부하라 유대인들은 고대부터 이 지역에서 환전ㆍ대금업ㆍ금자수를 했다고 한다. 원나라 시대에는 몽골의 귀족들이 이곳 상인들에게 주식회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투자를 하고, 이익을 배분 받아 원나라 때는 세금이 매우 적었다는 얘길 들었다. 

 

자본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주식회사ㆍ은행ㆍ수표 등이 베네치아부터 시작된 서양의 근대적 기업시스템에서 유래된 것으로 배웠는데 그 기본개념은 이미 기원전부터 이곳 실크로드 상인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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