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율주행차 프로젝트인 '차세대 스마트디바이스 프로젝트(Next Generation Smart Device Project)는 3차원 이미지센서를 활용해 고속으로 주변 환경을 센싱하고, 1000GOPS/W(단위 소비전력당 데이터 처리능력)급 프로세싱 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메모리도 초당 80Gb 속도의 성능을 확보해야 한다.

 

반도체 개발이 핵심이지만 주요 과제 주관기업은 덴소가 맡았다. 반도체 성능을 확보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전자제품에 비해 높은 신뢰성이 요구된다. 안전과 관련되는만큼 정확도가  0.1~1%로 항공우주산업 수준이다. 동작 가능한 온도 범위는 영하 40℃~영상 140℃다. 약 70℃ 정도에서만 견디면 되는 전자 제품과 차이가 크다. 진동(Vibration)은 25G(중력가속도), 전원공급 오차 ±50% 이상이어도 무리없이 작동해야 한다. 전자기 환경도 나쁘다. 바닷물처럼 소금기 있는 물에 닿을 수 있고, 배기가스까지 스며든다.

 

▲차량 신뢰성 평가 항목. 극한 상황에서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도요타 발표 자료

 

이 때문에 차량용 반도체는 비용절감을 위한 미세화, 경박단소화보다는 신뢰성 확보가 관건이다. 반도체 업계의 기존 문법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차량용 반도체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같은 복잡한 논리연산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여전히 90~180나노미터(nm) 공정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주류를 이룬다. 반도체 공정혁신 보다는 패키지 기술 노하우 등이 더욱 강조된다.

 

이강욱 일본 도호쿠대 교수는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주도하는 건 르네사스가 아닌 덴소"라며 "신뢰성 확보를 위한 노하우를 전장부품 업체들이 갖고 있어 반도체 업계는 협업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독일 보쉬도 전장 분야 세계 1위 기업이지만 반도체 공정이 활용되는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센서 시장도 석권하고 있다. 차량용 센서를 개발하면서 신뢰성을 확보, 오히려 고성능 스마트폰 시장에서 반도체 업체를 밀어냈다. 삼성전자 '갤럭시S7'는 보쉬 압력센서를 쓴다.

 

 

▲현대오트론이 개발한 차량용 반도체. /현대오트론 홈페이지 제공

 

따로 노는 국내 업체, 세계 벽 넘을 수 있나


업계 전문가들은 독일, 일본 사례처럼 "자동차는 전장업체가 주도하는 시장인만큼 반도체 업체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협업이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전장기업들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자동차에 맞는 반도체를 개발하는 게 빠른 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차량 전장사업 진출을 선언한 기업들은 그룹 내 자체 수직계열화를 서두르는 추세다. 현대는 지난 2012년 현대오트론을 출범시키고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업계와 협업하기 보다는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최근 자동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삼성 역시 내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지만, 인포메이션, 센서류를 제외한 관련 기술은 남은 과제가 산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전자기술력이 뛰어나지만 해외 자동차 전장업계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 보는 시각이 다수"라며 "자동차에 좀 더 적합한 개발 방식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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