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에 이어 패키지까지 직접 개발에 나섰다. 자사 서비스를 고도화 시키는데 필요한 기술을 직접 확보해 최적화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구글·아마존 등 소프트웨어(SW) 업체들이 직접 설계 및 패키지 기술을 확보하면서 기존 반도체 업계를 차차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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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본사에서 구글 직원들이 구글을 상징하는 'G' 글자를 만들었다. /구글 홈페이지 제공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최근 데이터센터 연구개발(R&D) 조직 내에 한국인 패키지 전문가 2명이 주축이 된 패키지 전담팀을 꾸렸다. 이들은 삼성전자, 엔비디아 등을 거쳤고, 실리콘관통전극(TSV), 웨이퍼레밸패키지(WLP) 등의 고사양 패키지 기술을 연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이 패키지에 투자하는 이유는 전력 손실을 줄이고 열 방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구글 데이터센터는 미국에서만 연간 수십억달러의 전기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기료를 줄이기 위해 자사 '딥마인드'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하고 있다. 

 

서버 속도를 높이고 크기를 줄이는데도 유리하다. 시스템인패키지(SiP), 패키지온패키지(PoP), TSV, WLP 등은 반도체와 인쇄회로기판(PCB), 반도체와 반도체를 잇는 전극 배선의 길이를 줄여 전자 이동 속도를 높이는 기술들이다. 데이터센터용 부동산 투자비용 역시 줄일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구글은 패키지 개발팀을 올해 10명 이상으로 키울 계획"이라며 "공급망도 다소 바꿔 다이를 4개 쌓은 HBM1은 공급사를 마이크론 등으로 다양화했던 것과 달리 HBM2는 신뢰성이 높은 삼성전자 제품을 우선 채택했다"고 전했다. 

 

구글이 도입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2는 반도체 다이(Die)를 최소 8장, 많게는 16장 쌓는 구조라 열 배출이 쉽지 않다. 3D 메모리 기술을 가장 많이 축적한 삼성전자와 협업하면서 노하우를 배운 다음 공급사를 다원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HW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는 측면보다는 좀 더 효율적인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측면이 크다. 하지만 앞으로 사업에 비춰봤을 때 SW와 HW를 망라한 서비스 기업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구글이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기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도 반도체 설계와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패키지 기술이다. 


모바일 산업을 보면 애플, 삼성전자는 두뇌 역할을 하는 AP를 직접 개발했다. AP는 OS에 맞춰 스마트폰 내 각종 기능을 통제한다. 여기에 더해 통신 모뎀(베이스밴드), 카메라의 이미지 시그널 프로세싱(ISP) 등 주요 기능도  AP로 통합된다. 애플과 삼성전자가 iOS,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각 스마트폰 업계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AP를 직접 개발한 측면이 크다. 공급망관리(SCM) 측면에서도 참조보드(레퍼런스보드)를 만드는 AP 업체들이 유리하다. 

 

반도체 업계, OEM화 되나


아마존은 지난해 반도체 개발사 안나푸르나 랩스를 인수했다. 올해 초부터 '알파인(Alpine)' 프로세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마존 역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쇼핑몰을 위한 거대한 데이터센터망을 구축하고 있다. 로봇, 드론 등 차세대 HW 개발을 하고 있다. 구글과 유사한 이유에서 반도체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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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데이터센터. /AWS 홈페이지 제공

 

 

그러면 앞으로 반도체 업계는 어떻게 될까. 애플은 AP를 직접 개발해 외주생산(파운드리)을 맡긴다. 파운드리 업계는 '큰손'인 애플 물량 수주전을 벌인다. TSMC의 통합 팬아웃 웨이퍼레벨패키지(InFO)처럼 반도체 업계가 애플에 제안하는 기술도 있지만 AP 핵심 기술과 협상 주도권은 애플이 보유하고 있다.

 

서버 시장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반도체 업계는 애플과 그랬던 것처럼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서비스 업계의 OEM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아마존은 직접 반도체를 판매하면서 이같은 전략을 가시화 했다. 

 

아직 인텔 'x86'을 대체할만한 ARM 기반 서버용 AP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서비스 업체들의 공급사 다변화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W와 HW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각 산업 내 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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