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낸드로 경쟁사와 빠른 속도로 기술 격차를 벌리던 삼성전자가 최근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3년 메모리 셀을 수직으로 쌓은 24단 3D 낸드를 양산한 후 매년 한 세대씩 발전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32단 3D 낸드를 양산했고, 올 하반기부터 48단 제품을 대량 생산 중이다. 기존 패턴을 감안하면 내년 64단 3D 낸드를 양산할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전자 SSD 발표 행사/ 삼성투모로우 제공


 

하지만 삼성전자는 최근 64단 3D 낸드 양산 일정을 당초 계획보다 미루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경영진은 64단 3D 낸드 개발팀에 샘플 테스트 일정을 당분간 중단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32단에서 48단으로 공정을 전환하던 지난해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최근 스마트폰 수요 둔화 등 전방 시장 영향으로 D램과 낸드 플래시 가격 하락폭이 빨라진 영향이 크다. 올해 스마트폰 시장은 유례없이 저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제외하고 성과를 거둔 업체는 없는 실정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48단에 이어 내년 64단 3D 낸드 양산에 돌입한다면 비트 그로스(Bit Growth) 증가로 인해 낸드 플래시 공급량이 늘어나고, 가격 하락폭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 낸드 플래시 가격 추이

 

 

차세대 제품을 상업화한 장점이 전체 시장 하락세에 희석되는 셈이다. 모바일 D램 사례가 대표적이다. 올해 모바일 D램이 LPDDR3에서 LPDDR4로 바뀌면서 반도체 소자 업체들은 초기에 상당한 고부가가치를 누렸다.

 

그러나 전방 수요 부진에다 공급량이 갑자기 늘면서 지금은 가격 프리미엄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낸드 플래시 분야에서 경쟁사들과 2년 이상 기술 격차를 벌린 것으로 평가된다. 전방 수요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치킨게임을 주도해 전체 시장 수익성을 깎아 먹을 이유가 없다.

 

 



▲ D램, 낸드 플래시 분기별 가격 추이

 

그룹 내부적인 정치 역학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굵직한 이슈들이 부각된 데다 스마트폰·TV 등 주력 사업 부진으로 삼성전자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다.

 

경영진에 대한 인적 쇄신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임원급 인력들은 단기 실적 중심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인적 쇄신 대상에 오르내리지 않으려면 당장 실적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 타깃은 무선사업부·VD 등 세트 사업 쪽이지만, 반도체 사업부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권오현 부회장과 김기남 사장이 64단 3D 낸드 같은 차세대 제품보다는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에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한 관계자는 “회사 전체 실적이 하락하는 시기에는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사업부장 입장에서는 후임자가 거둘 과실(차세대 기술)보다는 당장 본인이 누릴 수 있는 쪽(현 주력 사업)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