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반도체 무게 중심, 설계보다 공정 쪽에...삼성전자에 유리한 시장 구도

 

시스템 반도체 성능을 끌어올리는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 기술은 설계와 공정이다. 인텔은 한 해는 설계 기술을 바꾸고, 한 해는 미세 공정 기술을 진전시키는 ‘틱톡 전략’으로 PC·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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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 코어 로드맵/ 자료=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최근 모바일 시스템 반도체 시장 구도가 설계 기술보다는 공정 쪽으로 무게 축이 옮겨가면서 삼성전자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경쟁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ARM이 코어를 기본 제공하고, 시높시스·케이던스·멘토그래픽스 등 반도체설계자동화(EDA) 업체들도 후방에서 설계 기술을 지원하면서 웬만한 팹리스는 AP를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중국 팹리스 업체들도 쉽게 AP를 설계할 수 있다.

 

TI·엔비디아·브로드컴 등 주요 팹리스 업체들이 AP 시장에서 손을 떼면서 시스템반도체가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로 바뀐 것도 삼성전자에 긍정적이다. 결국 시장이 규모의 경제로 갈수록 공정 기술이 더 중요한 경쟁력으로 부상한다.

 

 

▲반도체 사진 /삼성전자 홈페이지 캡처 

 

 

삼성전자 시스템LSI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변신

 

지난해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1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AP 시장에서는 퀄컴에 밀리고, 파운드리 공정에서는 TSMC에 밀리는 이중고를 겪은 탓이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지난해 자사 무선사업부에서 출시한 갤럭시S5 AP 물량을 대부분 퀄컴에 뺏기기도 했다. 20나노 공정에서는 TSMC에 밀리면서 애플 AP 물량을 내주는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올 들어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처음 AP에 14나노 핀펫(FinFET) 공정을 적용하는데 성공한 게 주효했다. 14나노 최첨단 공정에서 AP를 만들면서 칩 성능이 대폭 개선됐고, 퀄컴 등 팹리스 기업으로부터 파운드리 주문도 점차 늘고 있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S6에는 퀄컴을 제치고 자사 AP를 전량 공급하는 성과를 이뤘다.

 

삼성전자 실적 견인의 주역인 스마트폰은 이제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 영업이익은 지난 2013년 25조원에서 지난해 15조원으로 급락했다. 올해도 갤럭시S6가 기대 이하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스마트폰 사업 침체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퀄컴과 TSMC 합산 영업이익은 18조원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AP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진한다면 스마트폰 사업 못지않은 수익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시스템LSI 사업부는 14나노 핀펫 기술을 무기로 오는 2017년 2조5000억원~3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AP와 베이스밴드 칩 시장은 60조원에 이른다. 파운드리 시장은 50조원에 이른다. AP·베이스밴드 칩·파운드리 시장을 합하면 D램·낸드 플래시 등 메모리 시장을 훨씬 넘어선다.

 

AP 시장은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6.5%에 이른다. 몇 년 안에 메모리 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웨어러블·자동차 등으로 사용처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퀄컴은 지난해 AP와 베이스밴드 칩 시장에서 전체 이익의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 영업이익보다 많다. 삼성전자가 AP 사업을 강화해 퀄컴을 추격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매출은 24억 달러로 전체 시장의 5.1%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파운드리 시장은 연평균 12%로 성장해 2017년 667억 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10%의 점유율만 차지해도 67억 달러(약 7조원)의 매출로 지난해 대비 세 배 이상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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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개발 연혁 / 한화투자증권 리서치 센터 제공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사업 강화...삼성전자의 칼 끝은 퀄컴과 TSMC로

 

퀄컴은 모바일 AP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업이다. 지난해 AP와 베이스밴드 칩 시장을 절반 이상 차지했다. 안드로이드 진영 업체들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만들려면 퀄컴 스냅드래곤을 써야한다.

 

퀄컴도 초기 AP 시장에서는 고전했다. 퀄컴 AP 대표 브랜드 스냅드래곤의 초기 코어명은 스콜피온이었다. 스콜피온은 AP 시장에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업체들은 베이스밴드 칩을 받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퀄컴 AP를 살 수밖에 없었다. 퀄컴은 개발 노하우를 쌓으면서 인정받는 AP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코어명을 스콜피온에서 크레이트로 바꾼 이후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TI·엔비디아·브로드컴 등 경쟁사들이 모바일 AP 사업을 접으면서 퀄컴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졌다. 자사 스마트폰을 무기로 약진하던 삼성전자 시스템LSI마저 지난해 스냅드래곤에 밀려 갤럭시S5에 AP를 공급하지 못할 정도였다.

잇단 성공은 교만을 부르는 법이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는 게 역사가 알려주는 교훈이다.

 

지난 2013년 AP 시장에 중요한 변화가 일었다. 애플은 아이폰5S에 64비트 기반 AP A7를 처음 채택했다. PC에도 잘 쓰지 못하는 64비트 CPU를 굳이 스마트폰에 적용할 이유가 있냐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퀄컴도 64비트 AP에 회의적인 기업 중 한 곳이었다.

 

애플 A7 출시 이후 고가 AP 시장은 64비트 중심으로 재편됐다. 삼성전자는 발 빠르게 64비트 AP 개발에 나선 덕분에 엑시노스7420으로 갤럭시S6 물량을 독식할 수 있었다.

 

퀄컴도 뒤늦게 64비트 AP 개발에 나섰지만, 자사 최대 경쟁력인 재설계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채 ARM이 제공한 코어 그대로 써서 스냅드래곤810을 만들었다. 재설계 기술이 없는 스냅드래곤810은 힘을 쓰지 못했다. 삼성전자 엑시노스7420과 성능이 비슷했고, 발열 문제도 발생한 탓이다. 대다수 스마트폰 업체들이 스냅드래곤810을 플래그십 모델에 채택하기 꺼리는 상황이다.

 

퀄컴은 차기 스냅드래곤으로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는 이미 설계 기술 부문에서 퀄컴과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고, 미세공정에서는 14나노 핀펫 성공으로 한 발 앞서있다. 오랜 파운드리 파트너인 TSMC가 16나노 핀펫 공정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퀄컴은 숙적인 삼성전자에 파운드리 서비스를 맡겨야 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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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파운드리 점유율(2014년 기준)/ 가트너 제공

 

 

파운드리 시장의 절대 강자 TSMC도 삼성전자의 약진에 불편하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시스템반도체 미세공정에서 TSMC에 항상 한 발 뒤처졌다. 그러나 올해 판을 뒤집었다. TSMC보다 앞서 14나노 핀펫 공정을 상업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론적으로 14나노 핀펫 공정은 20나노 공정에 비해 전력소모를 30% 줄일 수 있고, 동급 성능 대비 발열 가능성도 낮다.

 

그동안 TSMC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첨단 공정에서 가장 앞섰기 때문이다. 첨단 공정을 보유한 덕분에 팹리스 업체로부터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파운드리 서비스를 수주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삼성전자에 AP 파운드리를 맡겨온 애플도 TSMC로 갈아탔다. 애플은 아이폰6용 AP A8부터 TSMC 20나노 공정을 적용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첨단 파운드리 공정은 28나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호시절은 이제 막을 내릴 조짐이다. 삼성전자가 14나노 핀펫 공정 확보에 성공함에 따라 애플 AP 물량이 다시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이미 파운드리 시장에 지각 변동은 시작됐다. 지난 1분기 TSMC 20나노 공정 비중이 전 분기 대비 줄었다. 애플 아이폰6용 AP뿐 아니라 퀄컴 스냅드래곤810 수주 물량이 줄어든 탓이다. 파운드리 업체가 신공정 비중이 감소하고 구공정 비중이 늘어난 것은 기업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 14나노 핀펫 공정이 본격화된 시점과 일치한다. 퀄컴 등 주요 팹리스 업체는 20나노 대신 14나노 핀펫으로 갈아탈 준비를 하고 있다.

 

TSMC가 미세공정에서 삼성전자를 다시 추월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14나노 핀펫 이후 공정으로 10나노 핀펫이 유력하다. 10나노 공정은 14나노 공정과 연결성이 높다. 기존 공정 장비를 그대로 쓸 수 있고, 소재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TSMC로서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가 쓰이고, 소재가 대거 바뀌는 7나노 공정이 삼성전자와의 진검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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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장 분류/ 가트너 제공

 

 

세계 반도체 시장 성장세, 메모리보다 비메모리 


지난해 기준 세계 반도체 시장은 350조원 규모다. 메모리 시장 규모는 80조원에 불과하며, 나머지 270조원은 시스템반도체·통신칩·아날로그반도체·전력반도체 등 비메모리가 차지한다. 


ST마이크로는 유럽을 대표하는 비메모리 기업이다. 차량용 반도체와 센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 르네사스와 독일 인피니언도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강자로 손꼽힌다. 대만 미디어텍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에 베이스밴드 칩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메모리 시장이 연평균 4% 성장하는 동안 비메모리 시장은 연평균 3.2% 성장하는데 그쳤다. 


단순 비교하면 메모리 시장이 비메로리 시장보다 성장성이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메모리 시장은 변동성이 커 급성장하다가 2~3년간 역성장하기도 한다. 지나친 설비투자 경쟁에 따른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이 종종 벌어진 탓이다.


그러나 비메모리 시장은 지난 2009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가격 변동폭이 크지 않고, 매년 성능이 개선되고 새로운 기능을 장착한 제품이 등장한 덕분이다. 


여러 시장조사업체들은 향후 비메모리 시장이 4년간 연평균 11%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 같은 기간 메모리 시장은 연평균 2.9% 성장률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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