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쓰이지 않는 부품을 10년, 20년씩 쌓아두고 관리하는 시대는 끝날 것이다."

 

악셀바우어 프라운호퍼 레이저 기술 연구소(Fraunhofer ILT) 마케팅 본부장은 3D 프린터가 앞으로의 제조업 생태계를 상당부분 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photo
▲악셀 바우어 프라운호퍼ILT 본부장.

 

특히 유지보수, 물류, 유통 산업에 큰 변화를 예상했다. "항공우주 분야에서 몇 안 되는 장비나 기구 때문에 부품 재고를 상당수 확보해야 하는 건 낭비"라며 "창고를 운영하고 유통망에 일정 수준의 부품을 납품해 놓는 지금 같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꿔줄 것"이라고 말했다. 

 

15년 전에 생산된 자동차 부품 재고가 없더라도 3D 프린터로 맞춤 제작을 하면 사용 연한을 더욱 늘릴 수 있다. 

 

티타늄처럼 인체 내부에 들어가는 물체들을 사람 각자 몸에 꼭 맞게 제작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사람 인체를 스캐닝 하고 인공관절을 디자인하면 3D 프린터가 며칠 안에 완제품을 만들어낸다. 수술 도중 필요한 부분을 곧바로 3D 프린터로 찍어내 몸에 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 연구소는 메탈 소재를 이용한 3D 프린팅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항공, 의료, 자동차 등이 우선 타깃이다. 아헨공대 학생을 포함한 50여명의 연구인력이 이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photo

▲프라운호퍼ILT와 기업들이 공동 개발에 참여한 항공기 엔진 부품. 각종 레이저와 3D프린팅 기술이 적용됐다.

 

3D프린터 확산 기점은 언제?


3D프린터 기술이 소개된 건 꽤 오래 전이지만 여전히 실제 산업현장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생산 방식이 변하는데는 조건이 있다. 공정시간이 단축돼 작업 단위별 생산량이 늘어나거나, 장비나 설비 가격이 종전보다 대폭 저렴해지거나, 수요 기술이 바뀌어 소재 등이 변경돼 어쩔 수 없이 기존 설비를 대체해야 하는 경우다.

 

프린팅 기술은 필름을 코팅하는 등 2D 소재에서는 큰 힘을 발휘했다. 필름이나 유리 표면에 전극이나 컬러 소재를 입힐 때는 증착을 하는 것보다 프린팅을 하는 게 시간과 비용이 절감된다.

 

부피가 있는 물체를 제조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노즐이 움직이면서 소재를 뿌려주고, 소재가 한층, 한층 덮는 프린팅 방식은 소재를 쌓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균일한 표면을 구현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그동안 자동차, 전자 등 산업계에서 쓰이는 부품들은 대부분 주조, 사출, 단조, 프레스 등 다른 방식으로 제작 돼 왔다. 3D 프린터는 금형 수십개가 한꺼번에 부품을 생산하는 기존 시스템을 여전히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품들이 점점 정교하고 작아지면서 금형으로 찍어내거나 커팅, 용접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1mm3 부피의 복잡한 금속 부품을 제조한다면 금형을 만들거나 커팅할 때 재료를 붙잡고 있는 핸들러를 제작하는 것부터가 난제다. 
 
그는 "3D프린터 성능이 개선돼 기존 일반 생산 수준의 비용과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는 게 연구소의 목표"라며 "3D 프린터에 적합한 아이템이 속속 소개되고 있고, 실제로 현장에 적용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립스, 롤스로이스 등이 참여한 항공기 엔진 부품 프로젝트는 이미 성과물을 내 실제 비행기에 적용하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3000만유로(약 390억6450만원) 예산을 조성해 15년간 디지털포토닉 기초연구에 지원한다. 지원금은 3D프린팅 프로세싱, 나노 프로세싱, IT연동 등 연관 기술에 쓰여진다. 전통 제조업이 고부가가치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기술과 신시장을 선점해 제조업4.0(인더스트리4.0)을 실현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독일 정부의 계획처럼 오는 2035년까지 인더스트리4.0을 완성한다면, 20년 내에 3D 프린팅 기술 상당수가 상용화될 전망이다. 
 

메탈 3D프린터가 바꾸는 미래는
 
프라운호퍼ILT는 주로 기업간거래(B2B) 영역의 3D프린터를 연구, 생산 혁신을 꾀하고 있다. 생산 방식 변화는 유관 산업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롤스로이스는 최근 항공기 판매 업체에서 항공기 임대(렌탈) 업체로 전향했다. 바우어 본부장은 "10년 전에는 모든 항공사가 볼트 하나하나 일일이 납품받아 수리를 했다"며 "지금은 항공기 렌탈사인 롤스로이스가 유지보수 계약을 한다"고 전했다.
 
유지보수까지 직접 담당하면서 수리를 지원하는 협력업체들도 항공사가 아닌 롤스로이스 협력사로 바뀌고 있다. 항공기 상태를 모니터링 하고 실시간 대응을 하기 때문에 항공기 수명이 길어지고 사고 위험도 낮아진다. 항공사는 소유권이 없고 협력사에 대한 영향력이 없어진 대신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항공기 제조사는 유지보수 분야로 사업 분야를 늘릴 수 있게 됐다.
 
반면 물류, 유통사 입지는 좁아진다. 창고 임대 수익이 줄어들고 재고를 어느정도 떠안으면서 유통 마진을 가져가던 사업 역시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3D 프린팅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3D프린터 제어를 위한 기계 및 전자 기술도 수요가 확대될 전망이다.
 

<프라운호퍼ILT는>
 

photo
▲독일 아헨에 위치한 프라운호퍼ILT.
 프라운호퍼ILT는 지난 1995년 레이저 기술 개발을 위해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란(NRW)주 아헨 공대 캠퍼스 내에 설립됐다. 유럽에서 가장 큰 레이저와 광학 기술 연구소다. 기술 개발 외에 중소기업을 진흥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계해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연간 예산은 (2014년 기준) 3110만유로(약 405억원)고, 기업 등에서 받은 투자금은 340만유로(약 44억원)다. 매년 1~2개 기업이 독립해 나가고 매월 평균 1개씩 특허출원을 한다.
 
목표는 산업용 맞춤형 레이저 개발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레이저 및 광학 △레이저 소재 및 프로세싱 △의료기술 및 바이오포토닉스 △레이저 측정 등이다.
 

photo
▲프라운호퍼ILT와 협업해 기술을 상용화한 업체들..
 
저작권자 © KIPOST(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