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가장 창업이 활발한 곳은 베를린이 꼽힌다. 청년들이 많이 모여들고 서구와 동구의 문화가 혼재해 있어 창의적인 발상이 가능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벤처캐피탈(VC)이 주도하는 대기업형 스타트업(VC가 CEO를 발굴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 사업이 성공하면 자금을 회수하고 스핀오프 하는 방식)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도 베를린이다.

 

하지만 창업이 활성화된 곳이 또 있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RW)주의 산업도시들이다. 독일 내 지역내총생산(GDP)이 가장 높고, 전통 제조 기업들이 몰려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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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라 프리드리히(오른쪽 첫번째) 루르 웨스트 응용과학대 컨설턴트와 학내 창업을 한 학생들. 3D 프린터와 각종 제조장비를 이용한 맞춤형 제조 서비스를 하는 업체, 전기자동차 시장조사 전문 업체 등 다양한 벤처기업이 매년 탄생한다.

 

민관협력으로 중소기업 돕는, 제니트(ZENIT)


자동차 뼈대 중 일부는 특정 파우더를 녹여 고압으로 굳히고, 나사가 들어갈 부분에 구멍을 뚫는 공정을 쓴다. 아헨에 위치한 한 업체는 직원 40명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이다. 위 공정에서 구멍을 뚫을 때 쓰는 레이저를 개발했다. 문제는 고온에서 레이저빔을 쏘면 구멍 주변에 균열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했지만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니트(ZENIT)의 도움을 받아 파우더 소재 가공 기술을 습득, 자동차 회사에 레이저 빔을 공급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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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라스 제니트(ZENIT) CEO.

뮐하임 안 데어 루르에 위치한 제니트(ZENIT)는 중소기업 지원기관으로, 지난 1984년 설립됐다. NRW연방주의 경제부처 3곳, 은행연합회가 공동 출자하고 190여개 중소기업이 후원자이자 고객사로 가입해있다. 허버트 라스(Herbert Rath) 제니트 최고경영자(CEO) "우리 회사는 공공성이 가미된 일종의 중소기업 조합(유니온)"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은 한국처럼 정부가 주도적으로 연구개발(R&D) 또는 중소기업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정책이 없다.

 

 대신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자금, 제휴사 등을 찾아 매칭해주는 역할을 하는 기관은 있다.

하는 일은 중소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돕는 것이다. 자금이 필요하면 은행이나 투자기관을 연결해주고, 기술 제휴를 할 수 있도록 파트너사를 물색해준다. NRW 연방주 내에 있는 은행, 기업, 연구소 뿐만 아니라 EU 등 글로벌 협력을 목표로 한다.

 

한 해에 수행하는 컨설팅 사업은 300~400개에 이른다. 컨설턴트는 40여명, 한 해 예산은 400만유로(약 51억원)다. 

 

라스 대표는 "EU의 기업지원 사업에 지원하거나 펀딩을 받으려면 여러가지 절차와 문서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런 세부적인 것까지 컨설팅 한다"며 "경영ㆍ기술 컨설팅 뿐만 아니라 기업 주변의 하부구조(인프라스트럭처)를 개선하는 것도 우리 일"이라고 말했다.

 

대학ㆍ정부ㆍ기업 협력해 선순환 구조 안착


뮐하임&비즈니스(M&B) 경제개발공사는 중앙정부와 NRW 연방주 지원을 받아 스타트업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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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루르 응용과학대 캠퍼스에 있는 뮐하임&비즈니스 경제개발공사 사무실.

M&B의 토마스 뮬러(Tomas Muller) 프로젝트 매니저는 이 지역 대표 공과대학인 루르웨스트 응용과학대(HWA, Hochschule Ruhr West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기업협회 CEO를 겸임한다. 덕분에 각 기관별 경제 진흥 정책이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뮬러 대표는 "정부, 기업, 대학,  지역 사회를 모두 조망하고 알맞은 지원책을 내놓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르웨스트 응용과학대(HWA, Hochschule ruhr west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는 실습에 주안점을 둔 학교다. 응용과학 전문대학 답게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친다. 신입생 때부터 뮐하임과 인근지역 기업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요아킴 프리드호프(Joachim Friedhoff) 기계공학장은 "학부생도 언제든지 실험실에서 다양한 기자재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 건물 설계 역시 학내에서 해결했다. 다니엘 윤(Daniel Jun) 도시공학장은 "새 캠퍼스 건물 역시 우리 기술을 사용해 자부심이 있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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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웨스트 응용과학대는 여러군데 흩어져 있던 캠퍼스를 한 군데로 모으고 있다. 새로 들어선 실습장에 장비들이 일부 들어와 있다. 대부분 지역 기업들이 기부한 최신 장비들이다.

M&B는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업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연구개발(R&D) 과제를 찾는다. 스타트업 투자자 물색도 한다. 기금을 학생과 스타트업에 지원하고, 네트워킹 행사도 수시로 연다. 지역 주민을 위한 세미나, 학생 지원 기금마련행사 등이 연간 운영된다.  기업협회는 지멘스, 터크처럼 본사나 사업부가 뮐하임과 근교에 있는 업체들이 가입한다. 기업들이 기금을 조성해 대학과 지역사회에 환원화는 게 설립 목적이다.

 

한국과 달리 제조업과 관련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생긴다. 대ㆍ중소기업에 공급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개발하거나 3D프린팅 등 신 공법 개발, 제조업 업그레이드를 위한 시장조사ㆍ컨설팅, 에너지 수송사업 등을 실제로 영위하는 학내 벤처 CEO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제조업 창업이 쉽지 않지만 제조기업들이 몰려 있고 기존 업체들로부터 노하우를 얻거나 수요예측을 하기 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 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한 기업들이 학생과 스타트업을 키우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돼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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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뮬러 M&B 프로젝트매니저 겸 루르웨스트 응용과학대 기업협회 CEO.

뮬러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중소기업 숫자를 늘리고, 이들이 글로벌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며 "기술력 있는 한국 기업도 뮐하임에 적극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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