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보도…세계 반도체 시장 구도 바꿀 수도
스마트폰 AP 등 칩 아키텍처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Arm이 올해 처음 자체 개발한 칩을 선보일 예정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Arm이 기존의 칩 설계에서 벗어나 자체 프로세서를 제작하는 것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권력 구도를 또 한번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가 이르면 오는 여름 자체 제작한 첫 칩을 공개할 예정”이라며 “메타를 첫 고객사로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이날 뉴욕 증시에서 Arm 주가는 전날보다 6.06% 상승한 164.8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Arm은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기업으로, 그동안 칩을 자체적으로 만들지 않고 대신 칩 설계 자산을 다른 회사에 라이선스하는 방식으로 독보적인 시장 지위를 유지해왔다. 특히 스마트폰 AP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칩의 90% 이상이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할 정도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구축하고 있다. 애플, 퀄컴, 삼성, 엔비디아 등 전 세계 유수의 반도체 기업들이 Arm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이같은 시장 지위 때문에 엔비디아가 지난 2020년 소프트뱅크로부터 Arm을 400억 달러에 인수하려다 반독점 우려로 규제 당국에 제지당했다.
Arm이 올해 내놓을 첫 작품은 인공지능(AI) 훈련과 구동에 사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아닌 대규모 데이터 센터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FT는 “ARM의 자체 칩 출시가 향후 AI 칩 생산으로 전환하려는 더 큰 계획의 한 단계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실제 Arm이 기존의 칩 설계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엔비디아를 포함해 일부 주요 고객들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지난 수십년간 설계와 생산 분야가 철저히 나눠지는 분업화 체계가 정착됐다. 한 기업이 모든 반도체 공정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역할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Arm이 모바일 칩 설계 시장의 90%를 독점하고 있지만 라이선스 비용을 크게 올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분업화 체제 때문이다.
Arm이 자체 칩 제작에 뛰어든 것은 이같은 분업체계를 깨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로이터통신은 “Arm이 스마트폰·데이터센터용 반도체 부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2024 회계연도 매출이 32억3000만달러(약4조7000억원)로 고객사들에 비해 여전히 작다”고 전했다. 이른바 피카소 프로젝트로 불린 Arm의 칩 진출 계획은 반도체 설계부터 수직계열화할 수 있다는 손정의 회장의 큰 그림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Arm을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계획의 중심에 두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손 회장은 오픈AI와 함께 미국 내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50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Arm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와 함께 주요 기술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소프트뱅크는 오라클이 투자한 Arm 기반 서버용 칩 설계업체인 앰페어(Ampere)의 인수를 추진 중이다. 거래 규모는 약 6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인수는 Arm의 자체 칩 제조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Arm이 자체 생산한 칩은 아이폰 디자이너인 조니 아이브의 AI 기반 개인 디바이스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아이브의 디자인 회사 러브프롬(LoveFrom), 오픈AI의 샘 올트먼, 소프트뱅크가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