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에서도 첫 등장한 양자컴퓨팅 테마
미중, 양자 기술 놓고도 패권 경쟁 격화
2025년 새해는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IYQ)’로 지정됐다. 유엔이 지난해 6월 7일 양자역학과 응용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2025년을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선포한 것이다.
지난 1925년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나 전자 등 입자를 다루는 미시세계에서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행렬역학’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같은 해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으로 물질의 상태를 설명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완성했다. 100년 전인 1925년은 양자역학의 근간이 되는 개념이 등장한 기념비적인 해인 셈이다.
실제 현대물리학의 정수로 여겨지는 양자역학 이론은 100년이 흐른 지금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기술 등으로 빠르게 발전하며 목전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기술은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는 어떤 물리적 상태가 하나로 결정되지 않고 중첩된 ‘양자 중첩’ 현상을 의미하는 정보 단위인 큐비트(qubit)를 활용해 복잡한 연산을 수행한다. 변수가 매우 많아 현존 슈퍼컴퓨터로 해결이 어려운 기후변화 예측이나 신약·신소재 후보 물질 탐색, 자원 최적화 문제 해결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아직 큐비트가 외부 환경 변화에 예민해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는 점이다. 오류를 수정하지 못하면 연산을 반복할 때 결과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는 최근 기술 측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구글은 지난달 공개한 차세대 양자 칩 ‘윌로’가 현존 최강의 수퍼컴퓨터 ‘프런티어’로는 10의 24제곱 년이 걸리는 문제를 5분 만에 해결했다고 밝혔다.
구글은 윌로를 개발하면서 큐비트를 추가할수록 오류율을 기하급수적으로 줄이는 수준에 처음으로 도달하고 그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향후 큐비트 수가 늘어난 대규모 양자컴퓨터에서 오류가 없는 양자 알고리즘을 실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양자 컴퓨터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자 AI 발전의 신기원을 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존에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과 추론을 하는 AI의 과도한 전력 소모는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하고 처리할 수 있는 양자 컴퓨팅을 활용하면 AI 학습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복잡한 확률 계산과 시뮬레이션 능력이 획기적으로 좋아지고, GPU 같은 반도체를 통하지 않고 데이터를 처리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그만큼 줄어든다. 신약 개발, 금융, 물류, 공급망 관리 등에서 전에 없던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양자통신도 현실이 되고 있다. 양자 중첩 상태의 광자(빛 입자)는 정보의 복제가 불가능해 이를 활용하면 이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양자통신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 중국은 2016년 인공위성 ‘묵자’를 발사하고 2017년 1200km 떨어진 두 지역 사이에서 무선 양자통신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에는 7600km 거리에서도 양자통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신기록을 세웠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35km 떨어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속한 보스턴과 케임브리지 사이에서 양자통신을 시연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결과를 올해 5월 네이처에 발표했다. 실제로 사용 중인 광통신망을 활용해 양자통신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양자통신 기술 상용화에 큰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다.
이 외에도 양자 광학 분야는 센서와 의료영상·진단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고온초전도체 등 기존 물질과 완전히 다른 양자물질에 대한 탐구도 이어지고 있다. 유엔은 “양자 100주년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양자과학기술은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안보 등 유엔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과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과학 분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올해 세계 기술 시장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서도 ‘양자 컴퓨팅’ 부문이 신설되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CES 주관사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의 킨제이 파브리치오 회장은 CES 2025에서 주목할 대표 프로그램으로 양자 컴퓨팅을 꼽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상용화되고 있는 양자 기술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CES 2025에서는 양자 컴퓨터와 함께 3대 양자 기술로 꼽히는 양자 통신과 양자 센서에 대한 신기술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제조업과 GPS, 의료 진단 등 다양한 영역에 쓰이는 양자 센서에 관한 강연이 열리고, 세계 양자 컴퓨터 업계를 이끄는 리더들이 양자 기술의 발전과 사업화 방안 등을 논의한다.
이처럼 양자 기술이 미래를 좌우할 핵심 자원으로 부각되자 미중간 패권 경쟁도 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양자기술을 첨단산업 육성 전략인 ‘신품질생산력’ 정책의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5년간 양자컴퓨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은 150억달러(약 22조원)로 같은 기간 미국 투자 예정액(38억달러)의 네 배에 달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 “우리는 현지 실정에 맞춰 새 질적 생산력을 육성했고 집적회로와 AI, 양자통신 등 영역에서 성과를 이룩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앞선 양자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적 자원도 쏟아붓고 있다.
한국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양자 기술 핵심 인력은 5500명으로 미국 3120명, 일본 780명을 뛰어넘는다. 나아가 중국 내 60개 이상 대학이 양자컴퓨팅 인재 양성을 위한 독자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중국신문망이 안후이성 양자컴퓨팅 공학연구센터를 인용해 지난 2일 보도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대와 중국과학기술대 등도 이같은 과정을 개설했으며 중국 교육부가 2020년 양자정보과학을 처음 대학 전공에 추가한 이후 전공을 개설한 대학도 13곳에 달한다.
중국의 추격에 위기를 느낀 미국은 제재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8월 ‘우려 국가 내 특정 국가 안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미국 투자에 관한 행정명령 시행을 위한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해당 규칙에 따르면 중국 양자 컴퓨팅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금지된다. 또 양자 컴퓨터 개발 또는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 생산, 특정 양자 감지 플랫폼의 개발 또는 생산, 특정 양자 네트워크 또는 양자 통신 시스템 개발 또는 생산 등의 거래가 금지된다. 해당 규칙은 2일 발효됐다.

